그래도 해당화는 피었습니다

새만금갯벌 생명살리기 바닷길 걷기 이틀째

등록 2001.05.15 17:13수정 2001.05.1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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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해당화는 피었습니다.

내초도교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전 7시가 채 못된 시각에 일어나 쌀을 부지런히 준비하여 남수라에 도착하니 문정숙, 서미영(군산 유기농산물)님이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우리 땅 찾기

남수라에서 출발하여 바닷길을 따라 걸어가자니, 왼편으로 보이는 기나긴 철조망에 바닷바람마저 굳어버리는 듯 했습니다. 분명 우리땅이건만 우리 것이라 말하지 못한 수십년의 세월..., 겨우 소파개정이라는 목소리를 내어보지만 아직까지도 갯바람마저 넘기 힘든 그 장벽은 왜 그리도 긴지..... 아침 먹고 오전 내내 걸어도 끝나지 않은 철조망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오욕의 현장에도 자연은 우리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진 인적 드문 해변은 모래펄이 펼쳐져 있고, 바닷바람은 모래를 쌓아올려 자그마하고 기다란 사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통보리사초, 갯완두 등의 사구식물은 꽃을 피우고 갯메꽃은 사구위로 가지를 쭉쭉 뻗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당화가 군락을 지어 빠알간 꽃을 활짝 피워냈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뜁니다.

만나는 반가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기기가 못내 아쉬워하는데,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불발탄을 발견하였습니다. "....SAM"


넓은 모래펄에는 어김없이 콩게와 달랑게의 흔적이 널려 있습니다. 그네들이 갯벌을 살리고 바다를 살린다 생각하니 그 위를 밟고 지나기가 왜그리도 송구스러워지는지... 갯벌에 가까이 갈수록 바다를 마음에 품을수록 작은 것들의 사는 모습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

"젤젤젤..."
예닐곱개쯤 되는 오폐수관에는 뻘건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뻘건 물이 흘러가는 곳에 생명의 기운이란 약에 쓸래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을 조금만 벗어난 곳에는 어느곳이나 움직임이 있었고, 살아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철조망과 생명의 기운을 오락가락하며 걸어가는 동안 하늘에는 해를 중심으로 쌍무지개가 둘려졌습니다. 그 시각, 새만금전시관과 해창장승벌, 계화봉수대에서 찬반으로 나뉘어 드리는 기도에 하늘도 햇갈리는지.. 아님 모든게 잘될거라는 상서로운 조짐인지....


그 분들에게 바다는 생명이자 운명인 것을...

"저기만 돌아가면, 바로 하제다"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한 바위길은 바위산의 난코스중의 난코스에 맞먹었습니다. 푸른이는 아빠등에 업혔으나 새벽이는 어른도 가기 힘든 길을 용케도 잘 통과해 하제에 무사히 도착하니, 박상술(군산참여연대)님이 곽오열님(군산 조류보호협회장)이 제공해준 점심을 가지고 우리를 맞아 주셨습니다.

하제에 유인물을 돌리며 만나본 몇 분은 모두 새만금 사업은 시작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몇 해 전부터 차오르기 시작한 죽뻘에 배조차 나가지 못하게 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막막해 하셨습니다.

"막을려면 얼른 막아버리고, 안 막으려면 다 걷어내야돼"
가슴에 한이 된 이 소리를 새겨들어야 되는 사람들은 바로 새만금 갯벌의 운명을 쥐고 있는 분들일 것입니다. 자신들의 목숨을 옥죄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목구멍의 거미줄이라도 걷어 내볼까 하는 마음에 불법어로행위를 하시는 분들... 그 분들에게 바다는 생명이자 운명인 것을...

걷기 편한 둑방길보다는 그래도 한명이라도 지나는 이가 있는 아스팔트길을 택했습니다. 하루종일 걸어 피곤한 새벽이가 도로에 주저앉아 버리고 걸음 느린 네 살 박이 푸른이도 중간중간 걸어가느라 앞선 사람들과 거리가 많이 벌어졌습니다. 보다 못한 중묵스님이 바랑을 맡기고 새벽이를 업었습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걸어 오후 5시, 드디어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어은리에 도착하였습니다. 화장실도 물도 없는 어촌계사무실에서 의자에 누워 하루의 피곤함을 달래 보는 이도 있었습니다. 쉬는 동안 잠시 나가본 갯벌에는 죽뻘이 수미터 쌓여 생명의 기운이 스러져가고 있는 것이 너무도 역력했습니다. 겨우 찾아낸 것이 말뚝망둥이 네 마리... 허연 뻘 위에 나뒹구는 고동껍질들만이 이곳도 예전에는 팔팔하게 살아있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겨우 방조제공사만 60%만 진행이 된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 눈에 띄게 변해 가는 갯벌과 바다의 모습에 그 안에 한숨만 내쉬는 주민들의 삶이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제야 왔노?"

어은리 어민과 계화어민이 만나고 걷기 참가자들이 함께 만났습니다.
간담회를 하기 전에 김정식님이 새만금 반대운동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자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담을 기어올라 넘어가고야 마는 "담쟁이...", 인간이 파괴를 하지 않은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는 "내가 좋아하는 것".... 담담한 노래소리에 마음은 부드러워졌으나 새만금갯벌만은 지켜내야된다는 간절함은 더해졌습니다.

간담회에서 걷기의 목적을 간단히 설명하고 바로 지금이 어민의 목소리를 내주어야 됨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한평생을 바다에서만 살아오신 분들인지라, 누구보다도 그 어떤 전문가보다도 바다에 대해서만큼은 더 잘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배를 가지고 있어서 보상을 받긴 받았다. 그러나 1년벌이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
"막막해서 미치겠다. 아직 물막이공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배가 나가지 못할 지경이다."
"아침에 눈뜨기가 싫다. 나가면 얼마라도 벌수 있어야 일찍 일어나는데..."
"30년 동안 바다일만 했다. 논을 주지도 않겠지만 준다해도 농사지을 맘 없다."
"시라시(실뱀장어)작업도 못한다."
"방조제 폭파시켜 바위덩어리가 갯벌에 흩어져도 바다에 별 피해 없다. 일부러 돈들여 인공어초도 뿌린다. 오히여 바다생태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뱃사람들이 순진해서 보상금 몇 푼에 평생직장을 홀딱 넘겨 줘버렸다"
"진즉에 오지 왜 이제야 왔느냐?"
"방조제만 다 걷어낸다면 내 보상금 다 내주겠다."
"바로 지금이 우리 어민들이 목소리를 내야될 때다."
"그동안 어민의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어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는 외롭지 않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도와줄때 우리 어민들이 뭉쳐야 한다."
"새만금사업 중단되더라도 보상금환수조치는 없을 것이다."
"양만장 보상이 소송에 들어갔다고 하나, 절대 법으로는 승산이 없다. 어민도 농민들처럼 목소리를 내어 생존권을 쟁취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인지라 반대의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뻔히 죽어가는 바다를 바라보며 체념만을 학습해버린 어은리 어민들의 한이 왜 그리도 깊은지 내내 가슴만 답답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어민들이 속으로만 가슴앓이를 한 채 어떻게 자기목소리를 내야될지도 모른채 그렇게 지나버린 시간들이 야속해서일까요?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자꾸만 되뇌어집니다. "왜 이제야 왔노? 진즉에 와서 중단시켰어야지....."


새만금갯벌 생명살리기 바닷길 걷기 참가자들

5월 15일(화)은 만경강을 따라 걸어 군산 어은리에서 출발하여 월연리를 거쳐 김제 청하에 도착합니다.

덧붙이는 글 | 새만금 갯벌과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계화주민, 내초주민, 각 종교계 성직자, 부안사람들, 군산사람들, 전북사람들이 2001년 5월 13일(월)부터 19일(토)까지 군산에서 부안까지 바닷길을 걷고 있습니다. 

19일(토) 1시 새만금 전시관에 도착하여 '생존권 쟁취와 새만금 간척 반대 어민 결의대회'를 끝으로 두번째 바닷길 걷기를 마칩니다.

덧붙이는 글 새만금 갯벌과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계화주민, 내초주민, 각 종교계 성직자, 부안사람들, 군산사람들, 전북사람들이 2001년 5월 13일(월)부터 19일(토)까지 군산에서 부안까지 바닷길을 걷고 있습니다. 

19일(토) 1시 새만금 전시관에 도착하여 '생존권 쟁취와 새만금 간척 반대 어민 결의대회'를 끝으로 두번째 바닷길 걷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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