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이백과 두보의 발길을 따라

<책 들고 떠나는 중국여행14> 시안과 '당시선집'

등록 2001.05.16 11:10수정 2001.05.17 15:08
0
원고료로 응원
























정식 코스로 스무살을 겪었다면 서서히 사회과학 서적에 몰입됐을 때, 나는 그런 책이 아닌 대입 참고서를 들고 있었다. 혼자 한강의 둔치에서 수천년을 묵묵히 역사를 안으며 흘렀을 강물을 보며, 상념에 젖곤 하다가 기숙(寄宿)하고 있던 서울 근교 위성도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더운 여름날에서 추위가 들던 초겨울까지 그 버스에서 주머니에 있던 문고판 '당시선집'을 꺼내어 기억에 남는 시를 차창에 써보곤 했다.

"침실로 스며드는 달 그리매/ 어찌 보면 서리가 내린 듯도 하이/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는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노라(牀前看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山月 低頭思故鄕) 정야사(靜夜思) 전부-신석정 시인 역" 이백의 시는 특히나 고향을 떠난 지 십년이 넘은 나에게 인상적인 시였다.

여전히 중국 한족들의 정신적 고향과 같은 시기인 당(唐)나라(618~907)는 300년 남짓한 시간이지만 중국 문학에 있어서 거대한 획을 그은 시기였다. 이 시기에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인으로 기록되는 이백, 두보, 왕유, 한유, 백거이 등이 활동했다. 시안(西安)은 바로 그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長安)의 지금 이름이다.

당나라보다 1000년 앞선 진시황제의 유산으로 인해 이름이 난 시안에 역사의 초라함과 문화의 유구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당시(唐詩)선집을 들고가는 것은 어떨까.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야 꿈이런가 하노라"하는 길재의 한탄처럼 데카당스한 분위기에 빠질까 두려울까. 어떻든 문화도 융성했고, 전쟁으로 인해 한탄도 많았던 당나라의 도읍 장안을 그 시대의 유산인 당시선집을 들고 돌아든다.

이백, 전란 속에 초연했던 신선

당나라는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해 아들인 당태종 이세민이 나라를 급속히 부흥시키면서 중국의 통일제국(統一帝國)으로는 한(漢)나라에 이은 최전성기를 구가한 시대다.

이세민은 왕희지(王羲之)의 글씨체를 특히 사랑했다. 이 시절을 기점으로 당시의 근간 시인들이 탄생했다. 사걸(四傑)로 불린 왕발(王勃), 양형(楊炯), 노조린(盧照), 낙빈왕(駱賓王) 등이 시의 운율을 다듬어 근체시(近體詩:絶句, 律詩)의 시형을 완성시켜, 바로 중국 한시미학의 최고봉인 성당(盛唐)시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당 태종 이세민은 좋은 후계자를 두지 못했고, 만년에 고구려를 침략해 안시성에서 양만춘의 군대에게 참패함으로써 죽은 후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역사의 흔적은 결코 쉽사리 씻기기도 어렵다. 시안의 고성터를 걸어 비림(碑林)에 가면 근 150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는 당태종의 사랑을 받았던 왕희지의 글씨 탁본을 비롯해 안진경(顔眞卿), 구양 수(歐陽修) 등의 글들이 돌 위에서 천년의 시간 동안 객을 맞는다.

하지만 시안에서 당시와의 만남은 밤에야 이루어진다. 다름 아닌 성당을 이끌 양대 산맥인 시선 이백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백은 43세경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장안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술을 좋아해 현종의 총신 고력사(高力士)의 미움을 받아 마침내 궁정을 쫓겨나 장안을 떠났다.

그후 뤄양에서 두보와, 카이펑에서는 고적(高適)과 만나는 등 중국 최대 시인들의 조우가 있었다. 하지만 55세 때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고 그는 전란 속에서 실권을 가진 황태자들의 싸움에 몰리다가 불우하게 병사했다. 시안의 야시장에서 어렵사리 이백이 즐기던 술인 쵸우지우(稠酒)를 만나서 그와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술은 이백이 "한말의 술, 시(詩)백편" 이라고 했던 그 술이다.

이백은 "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으면/어찌 하늘에 주성이 있으며/땅이 또한 술을 즐기지 않으면/어찌 주천이 있으리요/천지가 하냥 즐기었거늘/애주를 어찌 부끄러워하리/청주는 이미 성인에 비하고/탁주는 또한 현인에 비하였으니/성현도 이미 마시었던 것을 /헛되이 신선을 구하오리/석잔에 대도에 통하고/한말에 자연에 합하거니/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깨인 이에게 이르지 말아라"(월하독작(月下獨酌) 전문해석)라고 읆을 만큼 술을 즐겼다.

그는 정치적으로 부침하며 적지 않은 곤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무엇에도 연연하지 않은 천상시인이었다. 그런 여유가 "산에서 내게 묻길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웃음으로 대답하니 마음도 한가하이/복사꽃 흘러흘러 멀리 자는 곳/거기 또한 딴 세상이 있나보다"(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閑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산중답속인산 山中答俗人 전문)라고 답할 여유를 만든다.

두보, 불우했던 시대인

신선과 같이 호탕했던 품을 가진 이백과 달리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는 전란의 중심에서 불우한 삶을 살아야 했다. 44세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안록산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연금된 지 1년 만에 탈출했다. 이후 관직에 올랐으나 정치계 입문 1년 만에 화저우(華州)의 지방관으로 좌천되었으며, 다시 1년만에 대기근을 만나 48세에 관직을 버리고 식량을 구하려고 처자와 함께 깐수성(甘肅省)의 친저우(秦州)·퉁구(同谷)를 거쳐 쓰촨성 청두(成都)에 정착하여 시외의 완화계(浣花溪)에다 초당을 세웠다.

그는 이곳에서 가장 편안한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안록산의 난으로 인해 이미 기본적인 생계조차 연명하기 어려운 민초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평생 동안 고향을 떠나 객수에 빠졌던 심상을 잘 드러낸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천은 있어/봄들자 옛 성터에 풀만 짙푸르다/한송이 꽃에도 눈시울이 뜨겁고/새소리 마음이 더욱 설렌다/봉화는 석 달을 연달아 오르는데/진정 그리워라 고향 소식이여/흰머리는 날로 짧아 만지고/비녀도 되려 무거웁구나"(춘망(春望)의 전문 해석)처럼 끊이지 않는 전쟁 속에 타향에서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시안의 여행에서 안록산의 난에 가장 근원에 있었던 인물인 양귀비(楊貴妃)가 목욕했다는 온천인 화칭츠(華淸池)는 빼놓을 수 없다. 리산(驪山 려산)의 산록에 있는 화칭츠는 3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온천지다. 역대 제왕이 행궁별장을 세워 휴양했던 곳이며 당나라 말엽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던 곳이다. 지금에 봐도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전에서 그들은 조용히 전쟁을 불렀다. 결국 안록산의 난으로 피난하던 중 군사들이 귀비의 처형을 요청했고, 그녀는 산사에서 자살했다. 자매들을 권력의 중앙까지 불렀다. 하지만 그녀가 누리고자 했던 권력도 이제는 역사속에 묻혔고, 자신은 당현종이 고생해서 쓴 작고 초라한 묘에 묻혔다.

이백(李白)은 그녀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白居易)는 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노래한 '장한가(長恨歌)'로 노래해, 일반의 마음 속에는 가장 오래남는 인물이 되었다. 또 화칭츠의 안에 있는 우지앤팅(五間廳 오간청)은 1936년 중국 근대사의 가장 큰 전환점인 서안사변이 일어난 것이다. 공산당과 회견을 위해 이곳에서 머물던 장쩨스는 자신의 보호자라고 믿었던 장쉐량(張學良)에게 체포당해 공산당과 협상을 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괴멸위기의 공산당은 기사회생하고, 결국 중국을 지배하게 된다.

두보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탄 이들보다는 바퀴 아래에서 숨을 죽여야 했던 수많은 이들과 같이 했다. 자기 스스로가 그 속에 갇혀 있었기에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고향은 계속해서 그를 불렀다.

"이 봄을 보내며 보면 파란 강물이라/나는 새 더욱 희고 산엔 타는 듯 사뭇 꽃이 붉어라/올 봄도 이대로 보내고 보면/어느 때 고향엘 돌아가리"(절구(絶句) 전문)라는 시처럼 편안했던 청두의 초당생활을 떠난다. 창지앙(長江)을 내려오다 쓰촨성 둥단(東端)의 쿠이저우(夔州)의 협곡에 이르러, 여기서 2년 동안 체류하다가 다시 협곡에서 나와, 이후 2년간 후베이·후난의 수상(水上)에서 방랑을 계속하였는데, 배 안에서 병을 얻어 둥팅후(洞庭湖)에서 59세를 일기로 병사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많이 따서 인간의 심리, 자연의 사실 가운데서 그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을 찾아내어 시를 지었다.

그를 휘둘리게 했던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진시황제의 유적에 가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시안을 대표하는 유산인 진시황빙마용과 진시황능 거대함을 꿈꾸던 군주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낸다. 병사의 모습을 그대로 만든 빙마용이나 여전히 발굴 자체가 시도되지 못하는 진시황제능은 중국 최고의 절대군주로 평가되는 진시황제의 모습을 상상시킨다. 빙마용은 물론이고 주위 28킬로미터에 달하는 진시황제의 무덤, 또 만리장성 축조의 역사에 돌을 나르고, 벽을 쌓은 민중들은 없다.

시와 서부 여행을 떠나며

이백과 두보가 활동했던 중당(中唐)시기에는 이밖에 한유(韓愈)와 백거이(白居易), 왕유(王維)와 같은 명시인들이 많았다. 두보가 인간 심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라면 이백은 인간 행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고, 왕유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산수화를 그리듯이 자연을 자연스럽게 그랬던 시로 이름을 남겼다.

"빈 산에 비 뿌린 뒤/ 천기는 저녁 나절 짙은 가을/명월은 소나무 사이에 비치고/맑은 샘물은 돌 위를 흐른다/죽림에 수런수런 빨래터 아낙들 돌아가고/연잎이 움직인다 고깃배 내려가니/상관 없잖고 봄꽃이 스러진다 해도/ 왕손은 제 홀로 머무르려니(산거추명(山居秋暝)의 전문해석)"와 같은 시에서 보듯이 그는 만나는 자연을 그대로 그려내는 시로 유명하다.

이렇듯 시인들은 각기 세계를 갖고, 현실과 맹렬히 소통해서 시어들을 만들어냈다. 일본 한시학자 요시까와 코오지로오가 "당인(唐人)의 시는 활활 타오른다. 시는 태어나는 순간 그것은 황망하게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순간이다"라고 묘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시안의 여행은 다른 생명의 빛이 느껴지는 봄이나 진시황 무덤을 두른 석류나무가 열매를 맺는 초가을이 좋을 듯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10위안에 달하는 시안의 석류가 하나에 1위안할 만큼 저렴하다. 시큼한 석류를 입에 가득 물고 다니는 여행은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시는 우리에게 낭만의 세계이지만 당대의 시인묵객들에게 시는 곧 생명이었다. 두보도 스스로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최고의 표현을 찾아서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당시의 세계는 그 만큼 깊고, 푸르렀던 것이다.

교통의 요지답게 시안에서 나오는 기차표 사기는 힘들었다. 보조열차의 침대 하나를 겨우 얻어서 오랜만에 혼자 떠난 여행의 쓸쓸함을 달랜다.

덧붙이는 글 | 당시는 오랜 역사를 갖고 번역되어 왔다. 시인 신석정 선생도 옛스러운 문체로 당시선집을 내기도 했다. 문고판으로도 나와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쉬웠던 시집도 있고.   엄정한 노력을 통해 번역한 것도 있다. 98년에는 이병한, 이영주의 번역으로 '당시선'(唐詩選)이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민음사에서 김달진의 역으로 나온 '당시전서'(唐詩全書)도 대표적인 당시해석본이다. 현암사에서 펴낸 '당시'(唐詩)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 당시의 명인 12인의 시를 각기 소개하는 중국시인총서 당대편(민미디어 간)이 출간됐다. 
당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책도 나왔다. 일본학자 요시까와 코오지로오와 미요시 타쯔지의 책을 당시 해설서를 번역한 '당시 읽기'(창작과 비평사 간)도 당시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준다.

덧붙이는 글 당시는 오랜 역사를 갖고 번역되어 왔다. 시인 신석정 선생도 옛스러운 문체로 당시선집을 내기도 했다. 문고판으로도 나와 가지고 다니면서 읽기 쉬웠던 시집도 있고.   엄정한 노력을 통해 번역한 것도 있다. 98년에는 이병한, 이영주의 번역으로 '당시선'(唐詩選)이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되었다. 민음사에서 김달진의 역으로 나온 '당시전서'(唐詩全書)도 대표적인 당시해석본이다. 현암사에서 펴낸 '당시'(唐詩)도 있다. 
최근에는 중국 당시의 명인 12인의 시를 각기 소개하는 중국시인총서 당대편(민미디어 간)이 출간됐다. 
당시에 대한 다양한 해석책도 나왔다. 일본학자 요시까와 코오지로오와 미요시 타쯔지의 책을 당시 해설서를 번역한 '당시 읽기'(창작과 비평사 간)도 당시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도움을 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3. 3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4. 4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5. 5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