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항상 아름다운 것일까?

영화 <첫사랑> 벚꽃... 그리고 첫사랑

등록 2001.05.16 16:52수정 2001.05.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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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벚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벚꽃이라는 우리말도 예쁘고, 사쿠라라는 일본말도, 체리 블라섬이라는 영어도 예쁘게 느껴진다. 아마도 벚꽃의 아름다움을 알게 해준 건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영화<사월 이야기>인 듯하다. 주연배우 마츠오 다카코가 옷에 떨어진 벚꽃을 털어 내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벚꽃 아래 앉거나, 벚꽃 아래를 걸어 다니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곳을 서성이면 많은 생각들이 든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과식하지 말아야겠다... 술을 덜 마셔야겠다...'라는 생각에서 '어머니 생각, 아버지 생각, 그리고 친구들 생각'...

그런데 내년에 벚꽃이 피면 사랑에 관한 생각까지 덧붙여 해야 할 것 같다. 영화<첫사랑> 때문이다.

<첫사랑>의 주인공은 17살 소녀 사토카(다나카 레나)이다. 17살이면 첫사랑을 품고 있을 나이. 그러나 영화는 사토카 어머니의 첫사랑을 추적한다. 사토카의 봄방학은 실연의 아픔과 어머니의 입원으로 시작된다.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하기 전 낡은 뮤직박스(오르골)를 사토카에게 보여주고, 사토카는 뮤직박스 속에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첫사랑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바로 첫사랑에게 보내지 못한 낡은 편지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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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직박스 안에서 편지와 사진을 발견하는 사토카
ⓒ 영화공간
편지에는 '벚꽃이 지기 전에 다시 한번만 만나주세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사연이 적혀 있고, 사진에는 벚꽃 앞에서 포즈를 취한 젊은 어머니와 첫사랑의 대상인 후지키(사나다 히로유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사토카는 어머니가 벚꽃을 좋아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된다.

사토카는 점점 건강이 나빠져가는 어머니를 위해 후지키를 찾아나서고 학업과 아버지의 존재를 등한시하면서 어머니와 후지키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집착한다. 그녀가 어머니에게 주고 싶은 선물은 사진 속에 간직되어온 벚꽃 앞에서 어머니와 후지키를 만나게 하는 멋진 재회.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벚꽃과 관련된 추억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아버지와의 추억이었다.

첫사랑은 항상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면, 첫사랑을 이루지 못했기에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은 것일까?

나에겐 어떤 것이 첫사랑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제대로 간직하고 있는 추억조차 없어 서글퍼진다. 여중, 여고를 다닌 17살의 나는 지나가는 남학생들과 몇 번 눈이라도 마주치면 어느 새 그 남학생이 좋아졌다. 그러다 학교 앞 편의점에서 일하는 잘 생긴 오빠를 좋아하기도 했고, 지하철에서 신문을 팔며 돌아다니는 남색 유니폼의 '장학생'을 좋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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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지키 역의 사나다 히로유키
ⓒ 영화공간
돌이켜보니 이 모든 감정들이 첫사랑도 아닌 순간순간의 짝사랑인 것 같아 가슴이 아파 온다. 왜 그 남자들한테 말 한마디도 걸지 못하고 눈이라도 마주칠라면 섬뜩하게 피하기만 했을까? 지금은 직업상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걸고 명함을 내미는데, 왜 그때는 그러지 못했을까. 그때 말이라도 몇 번 걸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지금쯤 언제든지 추억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첫사랑이 존재하고 있을 텐데.

그러다 문득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그때 내가 누군가를 사귀었다면, 아름다운 첫사랑이 있었다면 지금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지금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면 예전의 풋풋한 감정이 솟아오를까...

<첫사랑>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영화다. 일본의 엔리오 모리꼬네라고 불리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를 더 감미롭게 물들인다. 그러나 <4월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벚꽃으로 채색되지도 않고, <러브레터>처럼 절실하지도 않다. 새로운 건 없는 영화다. 사토카와 후지키가 만들어내는 공간 속에서 잔잔한 유머를 발견해내고,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떠올린다면 그게 바로 <첫사랑>의 감상법이다.

문득 사토카의 어머니가 영화 속에서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그 때의 그 벚꽃은... 다시는 피지 않아, 사토카..."

덧붙이는 글 | 제작 : 하라다 도시아키
감독 : 시노하라 데츠오      
각본 : 나가사와 마사히코   
촬영 : 후지사와 준이치  
음악 : 히사이시 조
미술 : 토츠키 유지
배급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등급/런타임 : 15세 이상 / 105 분 
개봉일 : 2001.05.19

덧붙이는 글 제작 : 하라다 도시아키
감독 : 시노하라 데츠오      
각본 : 나가사와 마사히코   
촬영 : 후지사와 준이치  
음악 : 히사이시 조
미술 : 토츠키 유지
배급 : 이십세기 폭스 코리아
등급/런타임 : 15세 이상 / 105 분 
개봉일 : 200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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