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에는 학도호국단 부활
고등학생도 전쟁에 동원된다"

정부비밀문건 [전시 학도호국단 편성지침]

등록 2001.05.21 00:24수정 2001.05.2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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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 조호진 기자
서울 = 이병한 기자


정부가 전쟁에 대비하여 비밀리에 고등학생들에게 준(準) 군사번호를 부여하고 준 군사조직으로 지면(紙面) 편성하여 '전시 학도호국단'을 운영해오고 있음이 정부 공식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정부 비밀 문건에 의하면 정부는 전시에 대비하여 학도호국단을 준 군사조직으로 지면편성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연 1회 이상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전라남도 교육청은 2001년 3월 6일이 시행일자로 찍힌 <2001년 전시 학도호국단 편성 지침 통보> 문건에서 "학교장은 전시 학도호국단을 지면 편성을 완료한 후, 편성표 1부를 2001.5.10(목)까지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A4 11페이지인 이 문서는 전시 학도호국단의 편성요령, 운영, 활동범위, 학교별 고유단명 및 학생단번 부여요령, 비상연락체계 등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전남 교육청은 이 문건을 도내 일선 고등학교로 보냈다.

교육인적자원부 비상계획과 관계자는 "이 업무는 국무총리실 산하 비상계획위원회 주도하에 평시에 전시를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밀문서가 지금 유출이 돼서 그렇지 예전부터 계속 해오던 것"이라며 "전남에서만 하는 일도 아니고, 현재 국가안보에 긴박한 상황이 있어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왜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문서대로라면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은 현재 자신과 학부형들도 모르는 사이에 '전시 학도호국단'으로 편성돼 준 군사번호와 임무 등을 부여받은 상태로 보인다. 또한 현재 평시 학도호국단은 폐지됐지만 전시를 위한 서류상의 학도호국단은 조직체계에 비상연락망까지 짜여져 운영되고 있으며 국가비상사태 발생시 자동적으로 부활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 개인의 준 군번 = 학교 고유번호 + 학번



이 문건에 의하면 고등학교의 전시 학도호국단은 학교의 규모에 따라 사단(2000명 이상), 연대(1300∼2000명), 대대(650∼1300명), 중대(160∼650명)로 분류되며 40명 내외의 소대, 9명 내외의 분대까지 현 군대체계를 따르고 있다. 최소단위인 분대는 분대장 1명, 부분대장 1명, 소총수 7명이다.

최고 책임자는 학교장이고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교련교사·군복무 경력 교직원·기타 교직원으로 임명하고 소대장급 이하 지휘관은 간부학생으로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여학생 및 심신장애자는 별도 제대로 구분해 편성토록 적고 있다.

문건은 "학도호국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개별 학생에게 "학교 고유단명(학교번호) + 학번"으로 준 군사번호(일명 '단번')을 부여하고 있다. 학교 고유번호는 별첨으로 첨부되어있다. 이 번호는 평소에는 비밀이지만 "총무3종 사태시 학생들에게 고지"한다고 문건은 밝혔다. 총무3종 사태는 국가비상사태중 한 단계로서 총무1종과 2종보다는 하위 단계로 보인다.

전시 학도호국단은 총무3종 사태가 선포되면 운영준비를 하며, 총무2종 사태가 선포되면 본격적으로 운영된다. 전시에 학도호국단은 긴급복구사업 지원, 민방공 지원, 경계지원 등의 활동을 하며 특히 실업계 학생은 "필요시 방위산업체 및 국가기간산업 등 전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산업체의 생산활동을 지원"하게 된다. 또한 여학생은 각 지역별로 구급활동, 유아보호 및 군병원 등에서 간호활동을 지원한다고 비밀문건은 적고 있다.

이 문건은 비상연락망을 구성하게 하고 있으며 전시에 비상소집을 원활히 유지하기 위해 "각급학교의 간부급 이상 소수 정예 요원"으로 '비상소집 대책반'을 구성하여 운영하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각 학교별로 무기고를 정하고 "평시에 용도를 변경했던 무기고는 총무3종 사태시에는 무기고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원상복귀"하라고 문건은 적고 있다.


우리는 왜 이 문건을 공개하는가


국무총리실 비상계획위원회와 교육인적자원부 비상계획과 관계자는 "이 문건은 단지 전쟁을 대비한 지면편성이며 평시에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면서 "다른 국가도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런 문건을 보도해서 국가의 이익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다른 곳에서는 이 문건의 유출경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있다. 국가안보에 관련된 기밀사항을 노출했다며 문건 입수 경위와 관계자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신은 전쟁이 나면 총을 들지 않을 거냐, 전쟁이 일어나면 남녀노소가 없다, 학생들이 똑바로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취재도중 "국가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 문건은 현재 '국가가 국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국가는 전시에 고등학생들을, 그들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고, 즉각 동원할 수 있도록 비밀리에 조직해놓고 있음을 문건은 말하고 있다. 이 문건에 나타난 고등학생들은, 더 나아가 국민은 전시 동원대상일 뿐이다.

물론 평시에 전시를 대비해야한다. 하지만 이는 국민적 동의에 기반해야 하며 적절한 방법을 통해야한다. 그것이 진정 평시에 전시를 대비하는 길이다.


국가에게 국민은 동원 대상인가




이 문건에 대해 전문가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 이승철 기획국장
"일선 교사들은 대부분 모르고 있는 일이다. 아마도 조직표를 작성해 올린 실무자들만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조직표를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문제로서 독재의 유물이자 구시대로의 퇴행이다. 민주화 된 시대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아직까지 이런 발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지난 80년대 자원관리법이라고 전두환 정권이 전쟁 발발시 국민을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법을 제정하려다가 반발에 부딪힌 적인 있었다.

전시에 국민이 자동적으로 군사조직에 편입된다는 것은 군국주의적이다. 게다가 학생들까지 군사적인 동원체제로 동원시킨다는 발상은 남북한 대치논리에 의한 군사주의적 발상이다. 또한 이런 중요한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됐는지도 의심스럽다. 이것은 일종의 행정명령 아닌가. 어떤 법적 근거로 이렇게 하는지 국민들에게 밝혀야한다. 비밀에 부쳐지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한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사무국장
"어떻게 아직도 그런 발상을 하고 있는지 황당하다. 세계의 많은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소년병의 징발을 막기위해 2000년 '아동의 무력분쟁 관여에 관한 선택의정서'를 채택했다. 이 선택의정서 제1조는 "당사국은 18세 미만의 군대구성원이 적대행위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실행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부 문서에 의하면 청소년들은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가에 의한 동원과 통제의 수단으로 되고 있다. 평화시에 전쟁을
대비하는 방법은 전쟁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를 가르치는 평화교육을 하는 것이다. 진정 전쟁을 막는 교육은 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전쟁을 대비한다며 이런 준비를 하는가."

정욱식 '한반도평화를 위한 평화네트워크' 대표
"전시에 생명까지 박탈당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부모를 포함한 직접적 당사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반민주적이다. 전시상황에서 민간인 신분인가 준 군사조직원인가는 위협에 노출되는 정도가 엄청나게 다르다. 또한 군사작전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과연 이런 식의 편제가 효율적인가는 의문이다. 이는 과거 지상전의 관성이다. 현대전이 과연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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