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의도인가 단순 해프닝인가

20일 대구경기장 개막기념식에서 있었던 일

등록 2001.05.21 20:23수정 2001.05.2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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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규모의 축구경기장 개장 기념식 도중 여당 대표가 기념 연설하는 장면이 전광판에 나오지 않자, 민주당 대구시지부 등이 반발하고 대구시가 의도적으로 '여당 대표 깎아 내리기'를 했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일 대구종합경기장(대구 수성구 내환동 소재) 개장기념식과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6만여 명의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 김중권 민주당 대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등이 자리했다.

문제는 오후 4시 30분부터 시작된 이날 행사의 1부 순서인 개장기념식에서 발생했다. 이날 개장 기념식은 국민의례, 개장선언, 그리고 문희갑 대구시장의 식사, 문화관광부 장관의 격려사 등으로 이어졌다.

이날 개장기념식은 종합경기장 내에 마련된 대형전광판 두 대를 통해 관중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나 정몽준 월드컵조직위원장, 한나라당 이총재의 축사로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전광판 생중계는 민주당 김대표의 축사가 시작되고 나서는 연설을 하는 김대표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고, 헬기에서 촬영한 경기장 전경과 각종 자료 화면만이 나타났을 뿐이다.

결국 이날 행사장을 찾은 관중들은 정치인들의 연설 중 김중권 대표가 연설하는 모습만을 전광판으로 볼 수 없었던 셈이 됐다.

이날 행사를 진행했던 대구시 월드컵지원반 관계자에 따르면 "행사 자체가 예정시간보다 늦어졌기 때문에 김중권 대표의 연설 장면이 전광판을 통해서 보여질 수 없었던 것일 뿐이며 고의적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자세한 내용은 생중계를 맡은 쪽에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광판 생중계는 대구시의 협조 요청에 따라 한국방송공사(KBS)쪽에서 행사 협조 차원에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식후 개막전을 생중계할 예정이었던 KBS쪽이 기념식 행사가 늦어짐에 따라 생중계가 시작될 오후 4시 55분에 불가피하게 기념식 장면을 전광판에 내보내는 것을 중단한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개장 기념경기 생중계를 맡은 KBS 김아무개 피디(PD)는 "KBS는 기념경기만을 중계할 계획이었고, 기념식 장면은 대구시의 협조 요청으로 전광판 중계용으로만 제공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사전에 중계방송 시간을 고려해 대구시에 행사 진행 시간을 잘 지켜 달라고 당부를 했지만 행사가 늦어져 방송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서 김대표의 연설장면은 전광판 방송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김 PD는 "개장 기념식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협조한 것인데 대구시나 행사 관계자들이 문제가 터지자 KBS쪽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아 곤혹스럽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민주당, "여당 대표 깎아 내리는 교묘한 정치적인 술수"
대구시, "단순한 해프닝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

결국 이날 김대표 연설장면 전광판 중계 '불발'은 시간을 지켜야 하는 방송상 이유로 마무리 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특히 이회창 총재의 연설이 끝날 무렵에 전광판 중계가 되지 않았던 것도 정치적 의도를 불식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 기념식 순서로 예정된 문희갑 시장의 축사가 계획된 '4분'에서 당일엔 '8분'으로까지 늘어나 기념식 자체가 늦어진 것을 두고 '문희갑 시장의 교묘한 정치적인 술수'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불이 지펴졌다. 또 6만여 명이라는 대규모 관중이 관람하는 상황에서 여야 대표의 '차별적인' 대우는 민주당 관계자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행사 당일 김중권 대표가 대응을 자제하라고 요청한 것에 반해, 민주당 대구시지부와 경북도지부는 기념식 다음날인 오늘(21일) <문시장은 한나라당 시장인가. 대구시민의 시장인가>라는 논평을 내고 "문시장은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기 위해 국민통합의 계기가 되어야 할 월드컵마저 정치적으로 오염시키는 작태를 즉각 중단하고 밀실에서의 반성이 아닌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대구시지부 한 관계자는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시장이 미리 약속한 4분 연설시간을 지키지 못한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애초 대구시에서 행사가 늦어지면 문제가 있다는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면서 "한 당의 대표를 이렇게 홀대하는 것에 이회창 총재와 김중권 대표를 차별화시키려는 저의가 있는 것 같다"면서 강하게 의혹을 제기했다.

ⓒ이승욱
또 민주당 장태완 대구시지부장은 21일 대구시청을 항의방문하고 시장의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문시장은 "행사 진행상 여러 가지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해 사과의 뜻을 비쳤고 "김대표에게는 이후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희광 대구시 문화체육국장 역시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식사는 시장님이 직접 4분짜리 원고를 작성했던 것이고 오히려 기념행사 당일 시장님은 일부 생략해 시간을 줄이려고 애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큰 규모의 행사인 만큼 행사 진행이 늦어졌다"고 주장했다.

여국장은 또 "단순한 해프닝을 불미스럽게 해석을 하면 끝이 없는 것 아니냐"면서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30일 대륙간컵 등 큰 행사를 준비해야 하는 대구시의 입장도 난처하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청 인터넷 홈페이지(www.metro.taegu.kr) 시민게시판에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각종 의견이 개진되는 등 당분간 이번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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