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정복자'?

한국언론의 호들갑, 또 다른 사대주의 아닌지

등록 2001.05.30 09:19수정 2001.06.02 16:17
0
원고료로 응원
나는 스포츠를 잘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정복자라는 말에는 역한 거부감부터 먼저 온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정복자'라고 거침없이 떠드는 언론들이 있다. 바로 한국의 언론들이다.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박찬호를 '메이저리그 정복자'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박찬호의 경기를 볼 때마다 '정복자'치고는 너무나 허술하고 위태로운 것이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 언론의 박찬호 보도는 정도문제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이런 식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정복자'가 한 승 한 승 힘겹게 얻어가는 모습도 안타깝지만 어떤 때는 터무니없이 얻어맞고 주저앉아버리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에게 붙여진 이름이 걸맞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든다.

필자는 가까운 거리에서 박찬호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또 수년전 그가 도미했던 초기 시절에 그를 인터뷰를 했던 경험을 돌이켜 보면서 '정말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눌 길이 없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잘 활약하길 바라는 것은 좋지만 그를 '메이저리그 최고급 투수'로 포장하고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의 정복자'라는 엄청난 레벨이 여과없이 보도되는 것을 보면 한국의 언론은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오늘의 박찬호는 우리 언론의 호들갑이 만든 '우상'인 측면이 강하다. 하루 하루 자신과 힘겹게 싸움하는 박찬호의 참된 모습은 사라지고 그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영웅' 박찬호가 있을 뿐이다. 자꾸만 부풀리다보니 이젠 뻥튀기처럼 늘어나 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박찬호의 등장은 스포츠 경제학의 요구일 뿐

죄송한 말씀이지만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하는 것은 박찬호가 실력이 출중해서일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박찬호의 등장은 다분히 스포츠경제학적인 배려 차원이었고 그의 선수생명은 지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처음 무명의 박찬호가 미국의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사실을 두고 의아해했던 국민들이 많으시리라. 사실은 박찬호의 '미국데뷔'는 박찬호의 'LA데뷔'로 묘사됐어야 옳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박찬호가 미국으로 온 건 단순히 LA지역 현지의 수요성 즉, 시장성 때문이었다. 결코 그의 명성때문이 아니었다.

독자들께서도 아시다시피 LA지역에는 적게는 40만에서 많게는 60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한국교민들이 거주하는 해외 최대의 교포밀집 거주지이다. LA지역에서 한인들의 입김은 '의외로' 상당하다. LA시 도시 인구가 4백만 정도인 걸 감안한다면 현지 정치인들이나 사업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코리안들의 바잉파워는 무시할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치인들도 코리안들이 투표, 즉 정치참여 안하기로 유명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코리안들은 '신기하게도' 그런 '장애'를 돈의 위력으로 뚫어나가고 있다. 대다수 후보자들에게는 표대신 정치헌금을 몰아주어서 정치력을 과시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래서 코리안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선거철만 되면 히스패닉 커뮤니티와 함께 코리안 커뮤니티로 습관처럼 다가온다. 백인들은 LA에서 이미 소수계로 전락한 지 오래라는 것은 독자들께서도 익히 들으셨을 터이다.


앞에서 남고 뒤로 밑지는 한국의 '박찬호 장사'

LA 다저스도 이런 계산을 안했을 리 만무하다. LA지역에서 그 많은 코리안들은 잠재적인 야구광들이 된다는 것을 이벤트 만드는데 '도사들'인 이들이 모를 리 없다. 웬만큼 던져주는 친구 하나를 데려다 놓으면 코리안들의 주머니돈을 다른 데로 안뺏기고 고스란히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은 중학생 정도면 할 수 있는 계산이다.

다저스 구단의 계산은 정확했다. 야구경기때마다 코리안들이 장사진을 치기 위해 구장으로 나왔고, 심지어 한때 경기 좋았던 시절에는 미국 서부 관광코스에 나선 한국인들에게 다저스 경기관람이 '필수코스'였을 정도였다. 실제로 박찬호가 나오는 홈경기때면 평균 4000~5000명의 관중이 더 동원된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또 구단은 티셔츠나 야구공 모자같은 기념품 판매 등 부대사업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맛봤다.

이것뿐인가. 인천방송으로 시작된 한국 방송사들의 야구방송 중계권 쟁탈전은 다저스측에 엄청난 노다지를 안겨다주고 있다. 중계권료는 매해 눈덩이처럼 늘어나 문화방송(MBC)이 박찬호메이저리그 야구 국내 독점 중계권(내년부터 4년간)을 3200만달러(약 368억원)에 구입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박찬호가 한해 벌어들이는 돈이 보통 월급쟁이 몇 명이 벌어야 하는 금액이라느니 하면서 손꼽기에만 바쁘지 정작 한쪽으로 남고 한쪽으로는 밑지는 장사의 역학에는 안중도 없다.

올해에 와서 대폭으로 오른 박찬호의 연봉인 990만달러는 사실은 국민의 눈이 두려워 공개못하는 의혹의 방송중계권료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저런 계산을 하면 한국은 결코 득보는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국내의 스포츠 비즈니스가 퇴화하는 '악영향' 등을 따진다면 한국의 야구팬들은 거액을 주면서 메이저리그에 입장하고 있는 셈이다. 박찬호를 써주는 다저스에게 우리가 감지덕지할 것이 아니라 단물을 쏙쏙 빼먹고마는 메이저 리그의 상술에 혀를 내둘러야 할 일인 것이다.


자기비하감의 발로, 서글픈 한국언론들의 호들갑

한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동양인 투수가 미국인들 틈에 끼여 '광속구'를 뿌리며 제압하는 것이 그렇게 신기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는 꼭 그래야만 할까? 나는 이것은 결코 아니라고 본다. 다저스에서 경기하는 박찬호의 모습이 국민적인 영웅으로 그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대주의의 발로라고 본다. 백인들을 상대로 '동등하게' 공을 뿌리는 박찬호를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 '못다 이룬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미국인들과 맞수를 두었다는 열등의식의 발로, 더 나아가 양키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다는 후련함, 뭐 이런 것들이 박찬호에게 광분하는 국민들의 정서뒤에 배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보면 결국 미국과 미국인들에 대한 자기비하감이 박찬호라는 '영웅'을 만들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찬호 신화'는 호들갑 언론과 상업성에 절인 선정언론이 만들어낸 합작품 성격이 강한 것이다.

그렇다고 박찬호가 아무 것도 아니라거나 별볼일 없는 친구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영웅도 정복자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으로 국민들의 응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또 그 덕에 한몫 톡톡히 보고 있는 '행운아'일 뿐이다. 엄밀히 따져 박찬호는 1승 1승 겨우 올리는 위태로운 투수일 뿐이다. 굳이 평가한다면 아직도 노련한 대형 메이저 리그 투수들에 비하면 2류급 투수가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이제 다저스는 그를 내보낼래야 내보낼 수가 없는 볼모상태가 된 것이다. 코리안들로부터 돈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어떻게 감히 이에 저항할수가 있다는 말인가.

필자가 현지에서 보는 한국언론들의 메이저리그에 대한 극성과 짝사랑은 정말 창피할 정도이다. 선수 한 명에 게임이 있을 때마다 수십 수백명의 보도진이 벌떼처럼 매달려서 극성을 부리는 것은 아마 메이저리그 사상에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언론들은 지나치다. 오죽하면 다저스 감독들이 박찬호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국언론 기자들과 따로 인터뷰를 하는 것을 고정코스로 만들어 자기네들끼리 전수해주고 있을까.

정말이지 창피할 지경이고, 이건 어떻게 보면 민족의 자존심 문제이다. 미국에 대한 자기비하감이 없으면 이건 불가능한 현상이다. 얼마나 자랑거리가 없으면 아무리 '메이저리그'라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팔려가' 운동하는 야구선수 한 명에게 그렇게 매달리고 울고 웃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서글프기 짝이 없다.

미국에서 영웅 박찬호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박찬호 신드롬의 상당 부분은 언론이 만들어낸 가상일 뿐이다. 한국언론들은 이제 그만 잠꼬대에서 깨어나서 국내의 소외된 스포츠와 스포츠인들에 대해 박찬호에게 기울이는 관심의 10분의 1이라도 보여주기 바란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