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연가 천국 '한국'

등록 2001.06.08 12:03수정 2001.06.0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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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막 입학할 무렵 친구들과 같이 주윤발의 '영웅본색'을 보면서 멋지게 쌍권총을 쏘아대는 모습이 아직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모 음료사의 CF광고에도 직접 주윤발이 출연했지만, 최근에 탈렌트 최모 양이 그를 패러디한 CF가 다시 나오는 등 아직도 홍콩느와르의 대명사 주윤발은 한국인들의 가슴에 많이 각인된 영화배우일 것이다.

한때 그를 따라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을 무렵, 젊은 세대 사이에선 영화속의 그의 모습을 흉내내어 성냥개비를 입에 문다던지, 또는 주윤발이 영화속에서 즐겨피던 말보르를 따라 피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말보르나 코카콜라가 영화의 스폰서로서 광고효과를 위해 각각 회사의 제품을 인위적으로 영화속 주인공과 매치시켰다는 알고 난 뒤로는 굉장히 불쾌했던 기억이 들어 그 뒤로 이제껏 두 회사 제품을 멀리하였다.

어제 미국 증시에서 나스닥이 큰 폭 상승한데 비해 다우존스가 소폭상승하는데 그쳤는데, 그 이유가 바로 필립 모리스社 때문이었다.

이유는 로스앤젤레스 법원 배심원단이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에 대해 폐암에 걸린 리처드 뵈켄(56) 씨에게 사상 최고인 30여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평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흡연피해 배상 최고액의 기록도 역시 필립 모리스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1999년 오리건주 배심원단이 제시 윌리엄스 가족에게 처벌적,보상적 피해배상 803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최고였었는데, 또다시 신기록을 갱신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송이 미국 각주에 걸쳐서 게속 있다는 것이고, 필립모리스 뿐 아니라 미국의 거대 담배회사 대부분이 개인소송과 집단소송에 걸려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비단 담배회사만의 걱정만이 아니다. 빌딩내의 흡연구역마저 폐지되고 미국의 일부주에서는 담배를 마약류로 분류하는 법을 제정하려는 등 미국의 애연가들은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유럽연합의 담배회사에 대한 조치는 예방차원에서 더욱 강력하다고 볼 수 있다. TV광고나 지면광고는 물론 옥외간판광고마저 폐지시키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잠깐 위에서 언급했듯이 담배회사들은 TV광고가 어렵기 때문에 간접광고의 하나로 영화를 자주 이용해 왔다. 하지만 이젠 유럽영화에서는 간접광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럽에서는 자동차경주인 포뮬라경기의 인기가 높은데, 이들의 스폰서 역할을 미국의 담배회사들이 많이 맡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면에선 한국은 여전히 '애연가의 천국'이다. 무슨 소리냐구 반문하는 분들도 게실 것이다. 직장내에서 흡연구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고,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이 금지된 마당에 또 뭘 바라는냐고...

하지만 미국과 유럽에서의 조치를 본다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멀지않아 한국내에서도 좀더 강력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바 애연가들의 고난의 길은 멀고먼 가시밭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은 여성은 세계흡연률 1위, 남성은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세계 최고의 골초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그런데다가 얼마전 내려진 법원판결은 담배에 대한 사회적, 법적 인식이 너무도 안이하고도 관대하다는 생각이다.

평소 천식증상을 보여온 한 20대 직장여성이 돌연 천식이 재발하여 급기야 사망에 이르자 가족은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구내용은 예상해 볼 수 있듯이 직장내에서 흡연자들로 인해 평소 지병이 재발한만큼 이를 방치한 회사에서 책임을 져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판결은 원고패소판정이 내려졌다.

1심에 이어 항소심이 이뤄질지 모르겠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법원이나 사회전반적으로 애연가들에게 관대한 분위기는 쇄신될 필요성이 느껴진다.

아이의 폐암을 비롯한 목과 기관지에 발병하는 병들의 가장 큰 원인이 부모의 흡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온 것도 얼마되지 않는다. 임신중에 여성이 흡연을 금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 앞에서 담배피는 것이나 집안내에서 담배 피는 일들이 결국 가족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가 되는 것이니 장기적 살인행위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비흡연자의 권리가 너무나도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을 내가 여전히 '애연가천국'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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