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라시에 가면 백제관음불상이 있다

일본의 새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등록 2001.06.16 18:00수정 2001.06.1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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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나라라는 곳은 오사카 근처에 있는데 교토와는 달리 화려한 곳은 아니다. 교토는 지금도 일본의 가장 큰 도시의 하나이고 오랫동안 일본 천황의 거처로서 정치적, 문화적 중심이라는 자존심이 살아있는 곳이다. 이에 비하면 나라라는 곳은 한적한 농촌소읍과 다름 없는 한가로운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어느 수필 가운데 교토가 우리의 경주에 해당한다면 나라는 우리의 부여에 해당하리라는 취지의 글도 있었던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 절정에 이르러 그 위세가 고려와 조선에 이어진 신라의 경주와는 달리, 백제의 부여는 낙화암의 슬픈 전설을 간직한 '잊혀진' 왕조의 '잊혀진' 도읍인 것이다.

단지 그런 유사함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일본의 나라는 백제 문화의 향기가 묻어나는 곳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토다이지(東大寺)를 비롯하여 나라를 중심으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커다란 절들은 거대한 절이었던 백제 미륵사의 위용을 상상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곳의 절 어느 곳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백제관음불이 일본의 국보가 되어 소중하게 모셔져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호오류지(法隆寺)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이다. 그처럼 부드럽고 섬세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말과 숨이 막히는 순간을 경험했었다.

백제관음불의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일본국철(JR) 역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다꼬야끼를 파는 행상이었다. 당연히 일본 사람이다. 다꼬야끼란 우리식으로 말하면 문어를 썰어넣은 풀빵이라고나 할까?

그는 손님을 향해 고개를 들지도 않고 빵틀을 뒤집어 가며 부지런히 다꼬야끼를 만들어 내고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어주곤 하였다. 그 아름다움은 백제관음불의 아름다움에 비할 것이 못되었으되, 매일 일을 하여 자기 목숨을 이어가는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이 이곳 일본에, 당연히, 많이 있음을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


역사와 문화는 백제관음불이 만들어가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바로 이런 소중한 이들이 있고 이들이야말로 역사와 문화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나는 그때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 일본의 자민당과 관료지배층, 그리고 극우파와 보수적 언론이 하나로 어우러져 일본제일주의적 사고를 선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이는 일본 사회 저변에 뿌리깊은 나르시시즘, 천황사상, 패전 콤플렉스와 어울려 일본국민들을 내일 없는 국가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그 국민들 역시 그같은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하나의 절정에 이르른 것이 바로 새 역사교과서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일본국민은 그같은 일본제일주의, 범죄적인 근대사에의 몰염치와 망각에서 얻을 것이 뜻밖에도 많지 않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고이즈미(수상)와 이시하라(도쿄지사)의 일본이 과연 중국과 한국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물론 일본은 중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부시의 잠재적 동반자가 될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미국 콤플렉스를 감안하면 이조차도 현실성이 높지만은 않다.

아들딸들에게 내일의 기약 찾을 길 없는 일본제일주의를 가르치는 일이 어떻게 과거를 겸허히 반성하고 이웃나라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가르치는 일보다 나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아들딸들이야말로 일본 역사와 문화의 '이름없는' 소중한 존재로 자라날 일본의 미래인 것이다.

참으로 현해탄의 파고가 드높은 때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일본을 비판하는 일보다 긴요한 일이 있다면 이는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지혜일 것이다. 지금은 바로 우리 자신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때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 문화의 긴급한 과제임을 나는 믿는다.

덧붙이는 글 | * 다음 글은 <뻬이징 뒤로 하고 만리장성 넘어 후아하오터 가는 길-옷 파는 일보다 소중한 것은>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글은 <뻬이징 뒤로 하고 만리장성 넘어 후아하오터 가는 길-옷 파는 일보다 소중한 것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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