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두 개 아래, 단식농성의 끝은?

국회 앞 단식농성 중인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01.07.20 09:27수정 2001.07.2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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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김칠준 변호사는 국회의사당 건너편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계십니다. 레미콘 기사아저씨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이제 이것뿐이라고 하시면서 단식 7일째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아빠는 지난 목요일(12일)부터 단식농성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엄마, 언니, 저는 저번 토요일(14일)과 오늘(17일),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맨처음에 간 날은 아빠가 꽤 핼쓱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왠지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빠가 안쓰러웠습니다. 예전에는 잘 먹던 아빠가 벌써 3일째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처음으로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아빠에 관한 기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단식이 벌써 일주일이 다 되가는데 말이죠. 그리고 솔직히 말해 저는 아빠가 단식농성을 하는 게 싫었습니다. 14일, 그러니까 아빠의 단식농성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러 간 날은 제 생일이었습니다. 보통 자식의 생일 때에는 가족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요번 생일때에는 아빠를 생각하여 케잌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빨리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단식농성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텔레비전에서도 모두가 보는 9시나 8시 뉴스에서는 아빠의 농성을 방송하지 않고 다들 자고 편히 쉬고 있는 공휴일 아침 7시 30분 뉴스에 방송했다는 것에도 참 화가 납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생해가며 단식농성을 하는 데도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그것 때문에 제 생일도 우울해졌습니다.

저는 거기에 가기 전에는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데서 나오는 것과 같이 여러 명이서 단식농성을 하여 크게 눈에 띌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보니 단식농성은 아빠 혼자 초라한 텐트같은 곳에서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방문자 명단을 슬쩍 봤을 때 몇 명의 이름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아빠는 단식농성을 하기 전에도 바빠, 별로 우리와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없어서 불만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때가 그립습니다. 곤히 잠든 아빠의 얼굴을 보고 학교를 가는 것은 마음이라도 편합니다.

하지만 단식농성을 하면서 비가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됩니다. 14일날 비가 엄청 많이 왔는데 걱정이 되어도 할 수 없이 우리는 집으로 왔지만 아빠를 두고 집으로 오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화를 해보니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 차 안에서 잤다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텐트같은 것이라도 있어 마음이 놓였는데 오늘 가보니 그것도 불법이라 하여 치우고 달랑 우산 두개로 햇빛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초라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꾹 참았습니다.


저는 아빠를 믿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단식농성도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린 제가 아빠를 현실적으로 도와주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우리 아빠 얼굴이 핼쓱해지고 그을리고 기운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활기찬 얼굴로 이야기를 하는 아빠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여러분, 이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레미콘 아저씨들도, 우리 아빠도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화목한 시간은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7월 18일 김칠준 변호사의 둘째 딸, 김정인(12) 양이 다산인권센터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현재 김칠준 변호사는 레미콘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정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9일째 단식농성 중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지난 7월 18일 김칠준 변호사의 둘째 딸, 김정인(12) 양이 다산인권센터 자유게시판에 올린 것입니다. 현재 김칠준 변호사는 레미콘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정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 앞에서 9일째 단식농성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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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www.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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