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콘 노조'에 목숨 건 한 변호사

참여연대 김칠준 변호사 무기한 단식 농성

등록 2001.07.12 21:58수정 2001.07.13 20:57
0
원고료로 응원
여의도 국회의사당 길 건너편 현대캐피탈 건물 앞.
1평도 채 안되는 공간에는 샘물과 침낭이 놓여 있었다. 7월 12일 오전 9시 30분 이곳에 와서 ‘노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바로 김칠준(43.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장) 변호사. 그가 앉아 있는 뒤편에는 ‘레미콘 노동자, 노동조합 인정을 위한 단식농성 1일째. 변호사 김칠준’ 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변호사의 노숙 생활

12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김칠준 변호사. 그는 "법적으로 더 이상 도와줄 게 없어서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레미콘 노동자도 아니고 변호사가 왜 이들의 노조 인정을 요구하며 삼복더위에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일까.

김 변호사와 레미콘 노동자들과의 인연은 작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변호사는 노비문서나 다름 없는 도급 계약서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아주 레미콘> 운전사들과 함께 70여 일간의 긴 싸움 끝에 부당한 계약 조건을 없애고 상조회가 회사와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상조회는 법적 구속력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지역에 있는 노동자들과 노동3권이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노조 설립을 준비했다.

“작년 9월에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 노조를 설립했고, 11월에는 민주노총 건설연맹에서 이전부터 준비했던 팀들과 함께 건설운송노조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빠른 시간에 2500명의 레미콘 노동자들이 모였지요. 그들 요구가 그만큼 절박했다는 증거였죠. 거의 대부분 레미콘 노동자들이 회사와 일방적으로 도급 계약을 맺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순식간에 모인 레미콘 노동자들은 회사에 ‘너무 빨리’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노조 탈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식대도 주지 않았고, 물량 공급도 중단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조를 인정한 회사는 레미콘협회의 탄압을 받아야 했다.

“유진레미콘 회장이자 레미콘 협회 유재필 회장이 이번에는 시멘트협회에 압력을 행사해 노조를 인정하는 회사에 시멘트를 공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어요. 그래서 개별 사업장 문제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해 결국 건설운송노조 조합원들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그게 벌써 3개월 전 일입니다.”

레미콘협회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방노동위원회와 법원은 결국 레미콘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적으로도 ‘적법한’ 노조임이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레미콘협회는 대법원 결정이 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버티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려면 1년 이상 걸립니다. 3개월 싸우면서 레미콘 기사들과 가족들의 생존권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어요. 적어도 법치국가라면 지방노동위원회나 법원의 판단을 인정해야 합니다.”

김 변호사는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 사용자들이 용역업체를 고용해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을 포함해 여러 건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고발했다. 이뿐 아니다. 부실공사를 초래하는 불량레미콘 사용문제와 폐레미콘을 함부로 버리는 환경오염에 대해 레미콘 회사를 고발조치했지만 검찰은 묵묵부답이다.


“노동부가 레미콘협회 회장이었던 유재필 씨를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검찰에 요구했다고 하는데 아직 검찰은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인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습니까.”

경찰은 지난 6월 19일 불법주정차 차량 단속을 이유로 여의도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운송노조 조합원들을 강제로 연행했다.ⓒ 오마이뉴스 이종호


"법적으로 더 이상 할 게 없어요, 거리로 나올 수밖에..."

김칠준 변호사는 94일째 파업을 하고 있는 레미콘 노동자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그는 지금까지 살면서 노동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묵묵히 레미콘차량을 몰고 건설현장을 누볐던 나이든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노숙하며 경찰에 쫓기는 모습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여의도 공원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노조 인정하라고 외쳤지만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의 해머와 쇠파이프였어요. 지금은 여의도에서 쫓겨나 한강변 철교 아래서 노숙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긴다’고 제가 말했는데 가장 어려울 때 힘이 돼야 할 것 같아서 결국 거리로 나오게 됐습니다.”

그는 8월까지 다른 일 아무 것도 안하고 여기에 전념할 생각이다. 시민사회단체들과 접촉을 시작으로 국회의원들을 만나 “말로만 도와주지 말고 행동으로 뭔가 보여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김칠준 변호사 옆에는 그를 지켜주는 보디가드 3명이 있다. 바로 레미콘 노동자들. 처음에 1300여명이 시작한 파업대오가 이제는 450명밖에 남지 않았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거나 아예 차를 팔고 떠난 사람들을 생각할 때 김 변호사도 그렇고 남아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도 그렇고 마음이 아프다.

김칠준 변호사에 옆에 있던 레미콘 노동자 최정호(39) 씨는 남아 있는 450명의 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은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갖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로 싸우고 있습니다. 김 변호사 님처럼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면 결국 지는 것 아닙니까.”

450여명의 레미콘 노동자들은 한강변 철교 아래서 천막을 치고 혹은 차 안에서 잠을 청한다. 김칠준 변호사도 이제 그들처럼 여의도 국회 앞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단식이라 걱정도 되고, 담배 못 피우는 것도 참기 힘들겠지만 어쨌든 몸으로 뭔가 보여줄 생각입니다.”

법적으로 도와줄 게 더 이상 없어 거리로 나섰다는 김칠준 변호사. 그는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앉아 이 나라가 합법과 불법이 구분되는 진정한 법치국가인지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