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레미콘 노동자들의 하이킹 투쟁

등록 2001.07.16 11:46수정 2001.07.17 12:41
0
원고료로 응원
7월 15일, 경원대학교 정문에서 까맣게 탄 몸과 낙서 가득한 티셔츠를 입고 줄맞추어 쉬고있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그들의 옆에 있는 자전거를 보아서야 어떤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다. 민주노총 건설 산업 연맹 레미콘 노동자들의 하이킹 대오였다.

얼음물 한 통 사들고 찾아간 한 노동자분은 오히려 우리를 반기며 관련 유인물과 하이킹 과정을 알려주었다. 지난 10일부터 부산과 목포에서 출발한 레미콘 노조원들은 자전거로 전국을 돌며 이번 레미콘 노조 파업과 경찰의 여의도 도끼 진압 만행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우리는 힘이 없잖아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으니. 많이 알리지 못한 것 같아 이렇게라도 알리려고 합니다."

선한 웃음가에는 장기간의 투쟁과 하이킹으로 인해 피곤에 지친 주름이 보였다. 그리고 하얀 티셔츠에는 '동지들, 힘내십시오' 등의 격려 구호들이 가득 쓰여 있다.

지난 6월 19일 여의도 레미콘 시위중 경찰에 의해 도끼와 해머로 차가 다 부서진 채 진압당한 그 때 그 노동자분들이라고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모두들 의지가 충만해 있었다. 기자에게는 아버지뻘 되는 노동자분들이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실고 전국을 돌며 자신들의 정당함을 알리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유진 레미콘에서 일한지 18년이 되었는데, 88년도 이후 임금 한번 오른 적 없고, 휴일이라고 아내와 자식들과 야외에서 고기 한번 구워 먹어본 적 없다. 이게 인간다운 삶인가. 가진 것 없는 노동자들만 당하며 살고 있다" - 박동구 씨(48세)

80된 노모 모시며 대학생 된 두 자식을 둔 48세의 박동구 씨는 지난 6월 19일 여의도에서의 현장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 전 파업시위 현장에서 강제진압 당하고, 여의도에서 농성하고 있던 레미콘 노조원들은 다시 도끼와 해머로 강제 진압당하고 연행, 구속되었다.

이미 그 전에 레미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를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회사측에서는 일당 20만원의 용역깡패와 전기봉 등으로 무장한 경비원들을 동원해 노조원들을 탄압하고, 구속했다.


"저도 곧 수배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일요일만은 쉬게 해달라는 요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힘없는 사람들을 그렇게 구속해가면서 사업주는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은 일당 20만원의 깡패를 고용하고, 부당 노동 행위로 고발되어도 단 한번도 사법처리 되지 않았습니다.

회사에 '도급 계약서'라는 게 있습니다. 일하겠다고 들어가면 무조건 사인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잘 읽어보면 우리에게 이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 사업주의 이익에 맞게 구성된 '노비문서'입니다. 그렇다고 사인을 거부하면 일은 당연히 할 수 없게 되지요. 그 노비문서에 사인하고 일한 지 18년이 되었습니다. 회사명의의 차로 6,7년간 일하면 회사에서 강제로 2000만원이 넘는 레미콘 차를 사게 합니다. 차를 사지 않으면 또 일은 할 수 없게되어 다 낡아버린 차와 유지비 등을 모두 부담한 채 일을 합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깐.

경기도 일대에서 일을 주로 하는데, 레미콘이라는 것이 90분이 넘으면 자체내에서 굳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폐레미콘이 되는 것인데 최근 경기도 지역에 학교들이 많이 세워지는 현장에 가서 이 폐레미콘을 쓰는 경우를 봅니다. 회사에서는 이 불량 레미콘을 다시 다른 현장에 투입하여 어쩌면 내 후대 아이들이 다닐지도 모르는 학교를 짓는데 쓰게 합니다. 사무실 가서 너무 한 것 아니냐라고 주장하기만 해도 곧 잘려 나갑니다."


양심을 지키려는 노동자들은 불량 레미콘으로 부실공사를 막고자 하였고, 그러한 업주들을 고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난 가뭄 때에는 레미콘차로 가뭄지원활동을 해서 농성장 침탈 위기도 감수한 채 10만평이 넘는 죽은 논을 살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연행, 구속 위기의 노조원들이 있고, 회사에서는 타협안으로 '일요일 휴무를 인정하겠다. 하지만 노조는 안된다'라는 타협안만으로 사태를 해결하려고 한다.
"앞으로 어떻게 싸울 계획이십니까"

"현재 고소,고발 건에 대해 김칠준 변호사가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중이고, 노조위원장이 단식농성중입니다. 현재는 여의도에서 쫓겨나 당산철교 밑에서 농성중인데, 우선 이 고소,고발건에 대해 싸우면서 우리의 요구안을 관철하여 투쟁할 것입니다.

막막한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우리의 요구는 노조를 인정해 달라는 것 뿐입니다. 8,9월에 판례가 대부분 난다고 하니 그것을 기다리며 이렇게 하이킹 투쟁 등을 하면서 요구안을 관철해 나갈 것입니다. "

60이 넘는 늙은 레미콘 노동자가 거리로 나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외치던 그 장면이 기억난다. 그리고 오늘 40,50대 노동자들이 페달을 밟으며 전국의 도로를 누비는 모습을 보았다. 단 한가지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것을 위해 미라 분장을 하고 일인 시위를 벌이다 무참히 끌려가는 한 노동자의 모습도 떠오른다.

부산에서 올라온 나머지 하이킹 팀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가뭄에 단 비를 맞는 마음처럼 매우 반긴다. 얼싸안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에서 함께 달리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야기 나눈 박동구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끝까지 싸운다면 이길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뜨거운 여름에 바다에서, 강에서 피서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시민들로 부터 음료수와 응원의 편지를 받으며 하이킹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 아주대에서 현장취재 동아리 르뽀게릴라 활동중입니다. 민중의 삶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아주대에서 현장취재 동아리 르뽀게릴라 활동중입니다. 민중의 삶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2. 2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28년 만에 김장 독립 선언, 시어머니 반응은?
  3. 3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4. 4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마을에서 먹을 걸 못 삽니다, '식품 사막' 아십니까
  5. 5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계엄은 정말 망상일까? 아무도 몰랐던 '청와대 보고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