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물렀거라, 황제폐하 납신다"

리에의 좌우지간 중국이야기(22)

등록 2001.07.27 09:53수정 2001.08.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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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96년 2월 2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중국 여행기이다. 필자와 10여명의 일행(교수, 시인, 화가, 사진작가, 학생 등등)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 위해(威海)에 내려 장보고의 얼이 서려있는 적산(赤山) 법화원(法化院)을 거쳐 공자의 생가와 공묘가 있는 곡부를 거쳐 태산(泰山)이 있는 태안(泰安), 연대(烟台)를 거쳐 기차로 북경에 도착해 둘러본 후 프로펠러 쌍발기를 타고 연변에 들렸다가 다시 북경으로 나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10박 11일의 일정을 적은 글이다. 편집자 주)

지난번에 태산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렸다.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날아서 가는 것이다. 날아서 간다고? 그럼 헬기타고 가는 건가? 아님 태산에 가면 누구나 공중부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 굳이 말하자면 공중부양이라 해도 될 듯하다.


산을 오르다보니 대나무로 만든 들 것 혹은 가마 비슷한 것을 길가에 세워두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뭐라뭐라 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 계단이 하도 가파라서 오르다가 넘어지거나 미끄러져서 다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서 곳곳에 구조대원들이 지키고 있구나." 필자는 내심 '관광객들을 위해 이렇게 세심한 배려를 하다니' 하며 놀라워했다. 보통은 산 어귀나 중간부분 또는 정상 부분의 일정한 장소에 구조대원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태산에는 여기저기에 구조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자주 사고가 나나보다는 생각이 들어 발걸음이 약간은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자세히 보니 멀쩡한 사람이 두런두런 얘기를 하더니 가마에 턱 올라타는 것이었다. 얼핏 보기에 신혼부부 같아 보였는데 남자는 좀 뚱뚱했고 여자는 보통 체구였다. 가마는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서 기다란 대나무 장대를 양 어깨에 걸쳐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가마 하나에 한 명씩 타게 되어 있었는데 여자가 탄 가마는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지만 뚱뚱한 남자가 탄 가마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휘청휘청하는 것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때마다 가마를 맨 사람들의 가냘픈 어깨가 더욱 약해 보여 보기가 안쓰러웠다.

"뭐지? 구조대원이 아닌가보네. 뭐하는 사람들이지?" 옆에 있던 가이드가 그제서야 피식 웃으며 설명해주었다. 말인즉슨 저렇게 가마를 태워주고 돈을 받는단다.
"사회주의 국가라더니 이건 자본주의보다 더하잖아. 아무리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저런 짓을…"

"아니 저렇게 약해보이는 사람들에게 저런 뚱뚱한 사람이…. 너무하잖아.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저 아저씨들 너무 불쌍하다. 저 뚱뚱한 아저씨는 양심도 없는 것 같아."
저마다 마치 무슨 엽기적인 사건을 목격한 듯한 표정으로 한마디씩 거들었다.

"아니지요. 저 사람은 저게 일인데. 일 안하고 어떻게 먹고 살아요. 손님이 없다가 한 사람이라도 타주면 고마운 일이지요."
가이드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우리가 보기에는 불쌍해보여도 그게 저 사람들의 일이 아닌가?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데 나처럼 어줍잖은 동정심으로 불쌍하다고 혀만 내두르는 사람보다는 제값을 지불하고 가마에 올라타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가마꾼들에게는 더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값을 물어보았다. 특별히 정해진 가격은 없지만 맨 아래에서부터 맨 위까지는 약 300위엔 정도라고 했다. 당시(96년) 중국 노동자들의 한달 평균 임금이 400위엔 정도였다고 하니까 하루에 그런 손님 한 사람만 받아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여름철 성수기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릴 때의 얘기고 겨울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흥정하기에 따라서 가격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또 구간, 구간을 태워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그때그때 흥정해서 값을 결정한다고 했다.

필자가 천천히 걸어서 태산 정상까지 가는데 약 2시간이 조금 더 걸렸으니 가마로 정상까지 가는 데는 그보다도 좀더 시간이 소요될 듯했다. 몸만 걸어서 가는데도 지치고 힘들었는데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니 노동의 대가보다 오히려 값이 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이런 게 문화적 차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문화상대주의라고 생각하고 큰 맘 먹고 끝까지는 가마타고 못가더라도 짧은 거리라도 한 번 올라타 "쉬이. 물러거라. 황제폐하 납신다" 큰소리 치며 기분 좀 내볼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뭐랄까 차마 가마에 올라탈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은 포기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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