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하여

내 믿음의 형제이신 김형에게

등록 2001.08.18 08:12수정 2001.08.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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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내 믿음의 형제이신 김형에게 오늘 이런 편지 형식의 글을 쓸 수 있도록 안배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립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김형은 생리적으로 '읽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직장 생활과 이런 저런 사회 생활, 그리고 신앙 생활의 분주함 때문에 읽는 일은 거의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 사정을 제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까닭에 김형께 이런 글을 쓰는 내 행위가 스스로 지레 무안스럽기는 합니다. 미안해지는 마음도 여간이 아니고요.

그러나 내가 김형께 꼭 들려 드리고 싶은 얘기이므로, 시간과 노고를 바쳐야 하는 이 일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김형이 직장에서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인테넷 상에서 이 글을 읽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내가 프린트를 해서라도 김형께 드릴 작정입니다.

시원한 맥주라도 한잔 놓고 친교를 나누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겠습니다만, 서로의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김형이 '안티 조선'이니, '언론 개혁'이니 하는 말만 나와도 '정치 얘기'로 간주해 버리고 뜨악한 표정을 지으실 테니, 그건 사실 난망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걸 생각하면, 이 일이 더욱 무안스럽고 미안스러워 지기도 합니다만, 나로서는 참으로 뜻있는 일이기도 하니, 그저 김형의 너그러운 이해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는 김형이 조선일보 구독자이긴 하되 조선일보의 그 무수한 지면의 기사들을 꼼꼼히 챙겨 읽는 차원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무례한 말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김형이 워낙 '읽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알기에…. 따라서 김형이 조선일보에 세뇌되었거나 중독이 된 상태는 아니라는 것도 잘 느끼고 있지요.

김형이 조선일보에 세뇌되었거나 중독이 된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 나로선 다행스럽긴 합니다만, 그것은 결국 조선일보를 찬찬히 살펴보지 않는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또한 그러므로 조선일보의 후안무치함을 제대로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한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 한번 무례한 얘기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김형이 조선일보를 찬찬히 꼼꼼히 살펴본다 하더라도, 조선일보 독자들의 전반적인 지적 수준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역시 조선일보의 후안무치한 작태를 알아채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매주 화요일 저녁 성당에서의 레지오 시간에 틈틈이 안티조선 운동의 이유며 언론 개혁 운동의 의의와 필요불가결함을 설명해도 김형이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요즘 맹렬히 발악적으로 벌이고 있는 후안무치한 작태―자신을 호도하고 분장하기 위해 신문을 '지라시'처럼 만들어 내고 있는 그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다는 얘기도 될 것입니다.


김형.
나는 김형이 그렇게 조선일보에 중독이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선일보의 천박성과 해독성을 느끼는 것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상태로 계속 조선일보의 구독자로 남아 있는 이유가 다소 모호하긴 합니다만, 나름 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있습니다.

우선은 김형의 외아들이면서 내 대자인 요한이가 고등학생 시절 한동안 배달소년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던―말하자면 아들과 인연이 있는 신문이라는 점이 주요 이유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지금 군에 가 있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도 많이 작용을 할 것입니다.
나는 요한이가 지난번 휴가를 왔을 때 잠시라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그에게 조선일보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줄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으로는 김형이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그 흉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형이 이곳 태안에 와서 사신 지가 벌써 2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만(이곳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고 거의 태안 사람이 된 상태이긴 합니다만), 대구 출신으로서의 생래적인 지역감정 같은 것이 김형의 심성 안에 남아 있음을 나는 지금도 간헐적으로 느끼곤 합니다.

나는 지난번 대선 때도 김형에게서 DJ에 대한 거부감과 혐오증의 그림자를 느끼고 내심 놀라워했습니다만, 묘하게도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그것이 더욱 심한 현상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하느님을 열심히 믿고 사는 김형조차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아득한 절망감을 맛보기도 했지요.

대구 출신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갖게 되거나 갖기 쉬운 그런 감정을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일 텐데…. 대구 출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런 감정을 지녀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 극복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일 텐데….

그런데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DJ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그 맹목적인 DJ혐오증으로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감정으로 말미암아 DJ가 하는 일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싫어하고 부정합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남북 대화도, 평화 통일 추구 노력도 마구 폄하하며 색깔론으로 매도를 하고 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지요.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의 '이성의 눈'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거지요.

여기에서 다시 조선일보 문제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형이 고향을 떠나서도, 2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버리지 못하는 지역 감정을 교묘히 부추겨 온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였지요. 그리고 거의 맹목적인 DJ혐오증을 확산시키고, DJ가 하는 일이라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고 부정하고 매도하게 만든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였지요.

그러니, 조선일보는 일단 김형의 마음에 맞는 신문일 법합니다. 조선일보의 신조를 따라 외우듯 반복 주장하고 강변할 정도로 김형이 세뇌되고 중독된 것은 아닐지라도, 김형의 심성 안에 내재되어 있는 그 생래적인 감정들을 김형이 극복하지 못하는 한, 조선일보와 김형은 계속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로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형.
매주 화요일 저녁 레지오 모임을 할 때마다 내가 쁘레시디움 단장의 권한으로 자꾸 언론 개혁에 관한 얘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김형의 불편함을 잘 알기에 나는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론 개혁을 결코 '정치적인 문제'로만 생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전혀 관계 없는 별개의 문제로 인식하지도 않습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언론 개혁 문제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당연히 추구해야 할 진실과 정의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를 잘 따르려는 일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이 세상을 참되게 만들려는 일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나는 레지오 모임을 순수하게 이끌어 가기를 희망하는 김형의 태도도 인정합니다. 그저 레지오의 교본 안에서 그 교본 대로만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향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방법론의 차이일 것입니다. 김형의 생각과 내 생각을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신앙을 우리 생활에 적용시키는 범위, 즉 그리스도를 충실히 따르는 데 있어서 신앙적 관심의 범위나 각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 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는 전통적이고 고정적인 형식이나 방식에서 일탈하기를 싫어하는 김형의 신앙 태도 역시 꼭 필요한 것으로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를 좀더 폭넓게 바라보려는 나의 적극적인 자세 또한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신앙 속에서 정의감과 의분(義憤), 그리고 사회 개혁에 대한 열망이 매우 중요한 미덕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그런 융통성과 탄력성이 내 신앙을 더욱 옹골차게 만들어 갈 수 있음도 확신합니다.

김형은 느끼지 못하신 것 같습니다만 나는 '전례 봉사'를 할 때마다 미사 전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기를 좋아합니다. 8월호 <매일미사> 책의 후미에 그 기도문이 올라 있는 것을 보고 대뜸 8·15광복절을 생각했지요. 8월 한중간에 있는 광복절 때문에 8월호 <매일미사> 책의 후미에 그 기도문이 올려졌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거지요.
나는 교회의 그런 의도에 감사하면서 8월 들어서는 더욱 열심히, 내가 전례 봉사를 하는 날은 꼭꼭 미사 전에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곤 했던 겁니다.

내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주송할 때, 내 목소리가 떨리기도 하는 어떤 절절함 같은 것을 김형은 느끼지 못하셨나요?

나는 다른 모든 전례 봉사자들이 한결같이 전례 봉사를 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외면하는 현상을 보며 참으로 가슴이 아팠답니다. 정말이지 한 사람도 미사 전에 그 기도를 바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현상 속에서도 한량 없는 고독감과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요.

엊그제, 광복절 하루 전인 14일(화요일) 저녁 미사의 전례 봉사자는 김형이었지요. 나는 광복절 하루 전날이고 해서 김형이 미사 전에 그 기도를 바치자고 하기를 내심 기대하며 긴장을 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역시 김형도 그 기도를 하지 않더군요.
나는 참 슬펐습니다. 평소 민족 통일에 대한 꿈을 뜨겁게 안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일까?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정말 그 차이 같은데, 이렇게 말한다면 나의 지나친 독선일까요?

그날 저녁 미사 후 레지오 쁘레시디움 모임을 할 때였지요. 나는 '훈화' 시간에 단장 자격으로 조금 긴 얘기를 했지요. 우리의 8·15광복절이 진정한 민족 해방이기보다는 친일파들의 해방이었다는 말을 한 끝에 우리 '샛별' 쁘레시디움에 속한 전례 봉사자들만이라도, 그리고 8월 동안만이라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에 신경을 쓰자는 말을 했지요. 8월호 <매일미사> 책의 후미에 그 기도문을 올려놓은 교회의 의도를 강조하면서….

그때 김형은 조금 무안해하고 미안해하면서 내 말에 동의를 표했지요. 다음 전례 봉사 때는 미사 전에 그 기도를 꼭 하겠노라는 약속도 하면서….
나는 내심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그 고마운 마음 옆으로 김형께 바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간절하였습니다.

김형.
우리가 그 기도를 바칠 때는 절대로 형식적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우리 한국교회의 공식 기도문으로 제정한 교회의 의지와 하느님의 뜻을 잘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바칠 때는 참으로 간절하고도 절절한 마음으로 바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것과 더불어 우리의 정신과 마음 자세를 정화하고 정제(整齊)해야만 합니다. 진정으로 뜨겁게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나 자신부터 통일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애국 애족하는 마음을 훼방하고 통일 역량을 방해하는 것들―치졸한 지역감정 따위를 스스로 극복해야 합니다. 민족의 화합을 방해하는 지역감정 따위에 얽매어 살아왔던 자신에 대해 치열하게 반성하고 참회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것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의 하나로 조선일보의 구독을 중지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오로지 반공밖에 모르는 신문입니다. 친일과 친독재와 사대주의의 바탕 위에서 무시로 지역감정과 색깔론과 흑백논리를 조장하고, 이분법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려 드는 조선일보의 해악을 이제라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조선일보를 끊어야 합니다.

김형.
나는 김형이 책이라는 것을 거의 읽지 않고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가 만드는 <태안문학>이며 <소설충청>이며 <대전가톨릭문우회>의 문집이며…내가 김형께 선물한 책이 수십 권에 달하지만, 김형이 내 글을 단 하나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김형으로부터 <태안문학회>의 '후원회비'를 받을 때마다 조금은 곤혹스러움을 감내해야 했지요. 책을 선물하는 내 쪽이나 후원회비를 주시는 김형 쪽이나 무의미한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야 한량없지만, 나는 이제부터는 김형께서 내 글을 읽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대신 조선일보 구독을 끊기를 바라는 마음을 우선적으로 갖고자 합니다. 김형이 과감히 조선일보를 끊을 수만 있다면, 내가 더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김형이 내 글 정도는 읽지 않아도 됩니다.

조선일보 구독 가정 하나를 줄이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냐고요?
물론이지요. 하나 하나가 모여서 열이 되고 백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조선일보를 저 오만방자함과 후안무치함과 분별없음의 가시덤불―진구렁 속에서 건져낼 수 있는 방법에서 구독 가정을 줄이는 일은 제외될 수 없습니다.

김형.
내가 오늘 본의 아니게 또 한번 우리의 고질적인 지역감정 문제를 거론했군요. 물론 이것은 불유쾌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역감정이라는 사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진지하고도 뜨거운 성찰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영·호남의 지역감정 문제를 논할 때 경상도 쪽의 지역감정을 더 많이 문제 삼는 나의 태도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만, 충청도 사람인 나는 호남에 대해 '약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지역감정에 의한 피해가 (우선은 정신적으로) 가장 큰 지역이 전라도니까요.

지역감정의 구도에서는 누가 뭐래도 경상도 쪽이 강자입니다. 그것은 김형도 부인할 수 없는 사항일 것입니다. 우리가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의 가시덤불밭을 화합의 꽃밭으로 일구기 위해서는 인력과 연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경상도 쪽에서 우선 겸허한 성찰과 함께 아량을 발휘해야 합니다. 앞장서서 힘껏 새밭을 갈아야 합니다.

그것은 남북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조건이 좋은 우리 쪽에서 아량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으로 평화 통일을 원한다면 말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동포애에 의한 아량을 베푼다고 해서 곧바로 우리의 안보가 잘못 되는 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무슨 작은 일 하나에도 마치 죽을 일이라도 생긴 듯이 조선일보 식으로 오도방정을 다 떨며 물고 찢고 딴지 거는 일만 생기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진중함과 의연함을 잃지만 않는다면 우리 민족에게 화해·화합·통일·일치라는 이름의 꽃밭이 결코 공상의 세계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와 있고,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굳게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 신앙심의 바탕 위에서…. *


2001년 8월 16일
충남 태안의 반딧불이 작가 지요하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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