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의 '사탄의 무리'론을 아십니까?

이 안토니오 대자님에게

등록 2001.08.20 14:51수정 2001.08.2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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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안토니오 대자님.
20여 분이나 되는 모든 성인 대자님들에게 일괄적인 서신을 드려본 적은 여러 번이지만, 이렇게 이 안토니오 대자님 한 분께 별도의 서신을 드리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나 같은 불초한 사람을 대부로 택하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그동안 대부 대접을 잘해 주신 대자님께 우선 내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현재 우리 성당에 적을 두고 있는 20여 분 성인 대자님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소공동체 '다님'이 1년에 두세 번씩이나마 친교 모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안토니오 대자님의 열성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는 진실로 안토니오 대자님의 열심한 신앙 생활을 고맙고 대견스럽게 생각합니다. 대자님이 레지오 활동에도 열심을 다하고, 전례 봉사에도 참여를 하면서 수시로 내게 여러 가지를 묻고 배우고 하는 그 태도를 보면서 나는 참 미더운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아쉬움과 염려 같은 게 전혀 없지는 않았지요. 대자님의 바쁜 직장 생활, 이런 저런 친목 모임, 매일 아침의 테니스 운동, 그리고 교회 활동의 틈바구니가 너무 비좁아서, 책 한권 들어갈 틈새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였지요. 참으로 우리네 삶에는, 더욱이 장년기를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삶속에는 책이 존재하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개안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응고된 고정 관념에 사로잡혀 사는 것 같습니다. 그 사실조차도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로….

나는 내 대자님들만큼은 탄력적이고 폭넓은 사유를 하며 살아가기를 바랐지요. 그래서 톱니바퀴처럼 꽉 짜여 돌아가는 그 일상 생활의 틈바구니에 책을 끼어넣어주는 일도 꽤 많이 했지요. 그 책이 과연 그에게 소용 가치를 지니는 것일지는 둘째로 치고….

그동안 책에 관한, 또는 내 글에 대한 말이 누구에게서도 참 쉽지가 않은 현실에서, 내가 가지는 고독과 비애 또한 십자가와 같은 것임을 깨닫기도 했지요. 그래도 나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내색 한번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벌써 한 달 전인가요, 대자님과의 그날의 통화는 피차 참으로 진지하지 못했던 듯싶습니다. 대자님이 주일 전례 봉사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내게 걸어온 전화였는데, 고맙게도 대자님이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묻길래, 나는 좋은 기회다 생각하고 '언론 개혁 운동'에 관한 말을 했지요.

나는 나름껏 열심히 언론 개혁의 의의를 설명하려고 했는데, 대자님은 곧바로 그것을 '정치 문제'로 간주해 버리더군요. 완전히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싸움으로 치부해 버리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무척 많이 하더군요.


나는 참 무안한 심정이었습니다. 서로 질이 다른 무엇을,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고….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대자님에게 나는 인터넷 세상에 올리고 있는 요즘의 내 언론 개혁 관련 글들을 대자님이 직장에서 동료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한번 읽어보기를 간곡히 부탁했지요. 그러나 대자님이 내 부탁을 받아들여 내 글을 하나라도 읽었는지는 알 수 없군요.

나는 주일이나 화요일 저녁에 성당에서 대자님을 볼 때마다 대자님이 인터넷 세상에서 내 글을 읽은 얘기를 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를 하곤 했습니다만, 아직까지 대자님에게서는 아무런 말이 없군요.

생각하면 좀 섭섭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 바쁜 세상에 한가하게 앉아 내 글을 읽어달라고 다시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나로서는 속수무책인 심정이었습니다. 대자님이 이제는 조선일보와 거의 비슷하게 가고 있는 동아일보를 구독한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기에, 대자님과 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간극 같은 게 형성되어 있는 듯한 느낌도 실은 좀 불편했지만, 정말이지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바로 어제였습니다.
성모몽소승천대축일에다가 제56회 8·15광복절이었던 어제, 장엄미사의 전례 봉사에 참여한 대자님은 '제1 독서'를 하고, 또 두 번째로 '보편지향기도'를 했지요.

나는 성가대석에 앉아서 눈을 감고 대자님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대자님이 기도의 첫마디로 "우리 나라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하는 순간, 오늘이 '광복절'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적이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자님의 기도에는 "광복절을 맞은 우리 나라가…"라는 말도 있었지요. 그리고 대자님은 "하루빨리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라는 말로 기도를 마무리했지요.

안토니오 대자님.
나는 대자님의 그 기도에서 '평화 통일'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가슴을 훑고 지나는 야릇한 통증도 느꼈습니다.
일단은 '평화 통일'이라는 말 때문이었을 테지만, 오로지 전적으로 그 말 한마디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대자님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내 가슴에서 순간적으로 어떤 감격 같은 것이 증폭되었던 듯싶습니다.

그후 나는 미사를 지내면서도, 성가대원으로서 4부 성가에 혼신의 열을 기울이면서도 문득 문득 대자님의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평화 통일'이라는 말이 줄곧 내 뇌리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가지 야릇한 의문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안토니오 대자가 진정으로 우리 나라의 '평화 통일'을 원하는 것일까? 전례분과위원으로서 8월 15일 대축일 미사에 전례 봉사를 하게 되어서 그냥 별 생각 없이 의례적으로 그런 기도문을 지어가지고 와서 기도를 바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것은 다만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나로서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안토니오 대자님의 그 기도가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기도였는지, 아니면 대자님이 진정으로 우리 나라의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마음으로―절절한 심정으로 바친 기도였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고, 함부로 속단할 수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어제 미사 중에 가졌던 그 야릇한 의문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마음속에 하냥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오 대자님의 목소리로 들었던 그 '평화 통일'이라는 말이 내 귓전에서 지금도 계속적으로 맴돌고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기도를 할 때는, 더욱이 미사 중에 제대 앞에 나아가 마이크 앞에서 기도를 할 때는 참으로 나의 진심을 다 바쳐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금 내 마음속에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문을 지을 때는 단어 하나하나에 나의 진심을 실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깊이 내 가슴속에 아로새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으로 진솔하고도 절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참으로 진실한 자세―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지요.

이 안토니오 대자님.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고도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대자님의 그런 기도 때문에, 즉 대자님이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것 때문에, 대자님은 이제 그만 '사탄의 무리' 속의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설명을 드리지요.
조갑제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그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대자님이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겁니다. '반공'을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극우 수구 덩어리 조선일보의 주요 인사 중의 한 사람이지요. 지금은 조선일보의 자매지인 <월간조선>의 사장 겸 편집장이고요.

그 사람은 일찍이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면서 대한민국 국군의 탱크가 평양의 주석궁에 진주를 해야 통일이 된다는 주장을 열렬하게 펼쳐온 사람이지요. 그래서 나는 그의 이름만 들어도 몸이 오싹하면서 소름이 끼친답니다. 그의 이름 석자에서 화약 냄새며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듯한 느낌 때문에….

그런데 그 사람이 요즘 되게 바쁜 일을 만났습니다. 일부 개신교회들의 집회에 단골 강사로 초빙되어 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마구 자행되는 그 이상한 난장판 속에서 궤변들을 늘어놓고 있답니다.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마구 퍼뜨리는 궤변들의 내용이 뭔지 아십니까?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을 포함한 일련의 사회 개혁을 위한 노력들을 '사탄의 사업'이라고 선동하는 것이지요.

그는 일단 김정일을 팝니다. 우선적으로 김정일을 사탄으로 설정해 놓고, 그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제자들이 한국에 많다는 내용의 변설을 폅니다. 그 사탄의 제자들이 민주투사, 개혁주의자, 민족주의자, 통일주의자, 양심가로 행세하면서 사탄의 이익을 위해 수많은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거지요.

진짜 사탄이 그 사탄의 입으로 사탄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현상일 뿐입니다만, 하여간 나는 그로 말미암아 사탄의 제자가 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지금 언론 개혁 운동에 나름껏 열정을 다 바치고 있는 나는 그 일로 말미암아 조갑제에 의해 사탄의 무리가 되어 있는 거지요. 재미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안토니오 대자님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대자님은 어제 대축일의 장엄미사에서 '평화 통일'을 하느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대자님은 사탄의 무리일 수 있습니다. 아니, 분명 확실하게 대자님은 사탄의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조선일보의 저 유명한 조갑제에 의해….

'평화 통일'을 바라는 것 때문에 사탄의 무리로 매도된 기분이 어떠신지요? 일부 개신교회들의 물질적 탐욕과 예수의 이름으로 마구 자행되는 미치광이식 난장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므로, 안토니오 대자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조선일보의 아들 조갑제의 이런 짓은 제대로 몰랐을 것입니다.

이 안토니오 대자님.
이제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인 이상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 가치인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되새기며, 하느님 앞에 좀더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짜 사탄이 사탄의 입으로 사탄의 노래를 마구 짖어대는 현실 앞에서 냉철한 분별의 눈으로 언론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그것의 장엄한 당위를 절절히 통감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을 간절히 기도했던 2001년 8월 15일 대축일 장엄미사 때의 이 안토니오 대자님의 그 기도를 나는 평생 동안 기억하며 살 것입니다. *


2001년 8월 16일
충남 태안의 반딧불이 작가 지요하 적음

덧붙이는 글 | (다음은 1972년 유신헌법 국민투표에 관한 이야기를 3∼4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다음은 1972년 유신헌법 국민투표에 관한 이야기를 3∼4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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