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2년 전 어느 날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태안초등학교의 특기적성교육 논술반 지도 교사로 일주일에 두 번씩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대략 몇 명쯤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필요했겠는지를 계산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 중에서 자신이 그 집안의 몇대 손이라는 것을 들어 알고 있는 아이들은 그 족보상의 단순 계열 대로 얼른 계산을 해서 손쉽게 대답을 하기도 하더군요.
재미있는 것은 거의 모든 아이들이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로 올라가는 부계 쪽의 단순 계보만을 생각하고 계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태어나기 위해서 필요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들의 머리 속에서 기껏해야 몇 백 명 정도가 될 수밖에 없었지요.
나는 그것을 한번 그림으로 알아보자고 했습니다.
칠판의 맨밑에다가 '나'라는 글자를 썼습니다. 그리고 한옆에는 '아버지'를 다른 한옆에는 '어머니'를 썼습니다. 먼저 아버지 쪽부터 칠판의 한쪽 모서리를 향하도록 대각선 형태로 짧게짧게 작대기 두 개씩을 그려 나갔습니다. 즉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런 식으로 사람을 표시하는 작대기 하나에 작대기 두 개씩을 계속 추가해 나가니, 작대기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리하여 칠판에는 금세 펑퍼짐한 다복솔 같은 형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솔잎 같은 잎파리가 무수히 서로 엉킨 것 같은 형태의 나무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 작대기들은 도저히 셀 수조차 없이 많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10대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올라가기도 전에 만들어진 그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이었고 감탄하는 기색이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지요?"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창 밖의 소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습니다.
"저 나무들의 잎파리들을 모두 셀 수 있을까요?"
"아니요."
나는 아이들의 한결 진지해진 눈망울을 느끼며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시대에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저 나무들의 잎파리들처럼 셀 수조차 없는 무수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필요했답니다. 수억만 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 칠판의 그림처럼 서로 엉키듯이 관계를 맺고 연결되어서 오늘 내가 태어나게 된 거지요."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이 칠판에 그려진 무수히 많은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성씨는, 내 성을 빼고는 대개 어떤 성씨들일까요?"
그러자 아이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한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성씨가 다 들어 있을 것 같아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지요. 물론 우리 나라에서는 김씨,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으니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중에도 김씨와 이씨들이 가장 많겠지만, 보미의 말처럼 우리 조상님들―이 그림 속에는 우리 나라의 모든 성씨가 다 들어 있을 거예요."
그러자 또 한 아이가 실로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그럼, 우리 나라 사람 모두를 한 그루의 나무로 표시할 수도 있겠네요?"
"그럼요. 그렇구 말구요!"
나는 속으로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이 그림 속에는 우리 나라의 어떤 고장들이, 그리고 몇 개 정도의 고을들이 들어 있을까요?"
이번에도 아이들은 잠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기색이더니,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조선 팔도가 다 들어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조선 팔도'라는 그 어른스러운 표현에 또 속으로 탄복을 하는데, 다른 아이가 또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고을이 다 들어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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