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졸하면서도 극성스러운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일에 있어서는 충청도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나는 지역감정 문제에 있어서는 충청도가 더욱 치열하게 반성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충청도는 두 가지 면에서 뜨겁게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선은 괜히 부화뇌동하는 식으로 경상도 쪽에 붙어서 그릇된 편견으로 호남 사람들을 능멸해 온 죄를 호남인들에게, 아니, 민족 앞에 사죄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난 97년의 대선 때 김대중 씨에게 표를 많이 주어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해서 면죄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충청도의 표는 김종필 씨로 하여금 망상에 젖어 우쭐거리게 만든 매우 부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또 하나는 노회한 극우 수구 정치꾼인 김종필 씨의 정략의 산물이 되어 역시 부화뇌동하는 식으로 지역감정―지역주의의 화신으로 전락함으로써 충청도의 진정한 자존심을 여지없이 깔아뭉갠 그 무지와 미망에 대해서 참회를 하며 민족 앞에 사죄를 해야 합니다.
나는 그동안 충청도 사람으로서 충청도의 이른바 '황색바람'―신지역감정 바람과 맞서 싸우느라고 몹시도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호남 사람들에 대한 그릇된 인식―그 도깨비풀 같은 것들을 그들의 머리에서 퇴치해 내는 일 때문에 무던히도 고뇌를 해야 했습니다. 용감한 무식쟁이들과 언쟁을 한 일도 많았고, 완전히 고군분투를 하는 형국이었지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성당의 회의실에서 자매들 몇 명이 쏙닥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 자매가 신자가 아닌 어떤 여자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네에서 인사성도 바르고 싹싹하고 깔끔하고 이런 저런 봉사도 많이 하는 여자가 있는데, 잘하면 성당에 나올 것도 같지만 전라도 여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자매가 전라도 사람하고는 절대로 돈 거래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 말에 "그건 그려" 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자매도 있었고….
나는 주보를 보는 척하던 눈을 들고 그 자매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자매님들, 자매님들은 진실로 주님을 믿고 사랑하십니까?"
나의 이런 돌연한 질문에 그 자매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리더군요.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모를까,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매님들은 오늘 또 한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자매들 중에는 좀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자매도 있었고, 이내 내 말 뜻을 알아차리고 무안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어느 지방 사람이었는지 아십니까?"
아무도 대답을 못하더군요. 그것을 아는 자매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갈릴래아 지방이었지요.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이라는 곳이 예수님의 고향이었고요. 갈릴래아가 어떤 곳이었는지 아십니까? 이스라엘에서 천대받는 지방이었어요. 오늘 날 한국에서 우리들이 전라도 지방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그런 무지와 편견 같은 것으로 말이죠. 자매님들의 그런 잘못된 생각, 그릇된 말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아십니까? 자매님들은 오늘 또 한번 이스라엘의 무지 몽매한 군중이 되어서 예수님을 죽게 했어요. 무지도 편견도 다 죄악입니다. 자매님들은 오늘 일에 대해서 고해성사를 봐야 합니다. 그것도 충분히 고해성사 거리가 되니까요."
자매들은 좀더 무안한 표정이었고, 잠시 어색한 공기가 회의실 안에 감돌았습니다.
그때 그 자매들 중에서 가장 젊은 자매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예수님 시대에도, 이스라엘에서도 지역감정, 지역차별이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스라엘에서 천대받는 곳이었던 갈릴래아 지방 출신이신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니 참 오묘하게 느껴지네요.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우리부터 잘못된 지역감정, 지역차별을 절대로 마음에 담거나 입에 올려서는 안되겠죠."
그러자 모든 자매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외려 내가 더 고맙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기뻐하시겠네요. 허허허."
그날 나는 그 젊은 자매 덕분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요.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뒷동에서 사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뒷동 연립주택의 옥상으로 올라갔더니 붕장어 구이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옥상 한켠에다 번개탄을 피워놓고 석쇠로 붕장어를 구우며, 가동의 남자들 대여섯 명이 소주잔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출출하던 참에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끼어 앉아서 소주와 붕장어 구이를 즐기는데, 덤프 트럭 사업을 하는 친구가 거나한 음조로 흰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사람으로부터 일 주문을 받고 실컷 일을 해 주었는데 반년이 지나도록 일값을 못 받았다는 얘기였고,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전라도 사람이더라는 얘기였습니다. 그 사람이 전라도 사람인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절대로 일을 해 주지 않았을 거라는 말도 하면서 그는 '전라도 인종'들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다 듣고 나서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개인적인 일을 가지고, 거기에 전라도 사람 전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잘못이 아닐까?"
"그거야 물론 그렇지먼, 그래도 지방의 근성은 무시헐 수가 읎는 겨. 확률적으로두 그것은 틀림이 읎는 사실이니께."
그 친구는 의기 양양, 기고 만장한 기색이기도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그리고 나는 입술을 닦고 나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 신문은 좀 보구 사나?"
"신문이야 더러 보지. 테레비두 보구…."
"그럼, 얼마 전에 경찰청에서 발표헌 것을 가지구 보도를 헌 재미있는 기사 하나를 보았을 지두 물르겄는디?"
"그게 뭔디?"
"전국 각 시·도 별루 투서 사건, 투서에 의한 무고 사건, 고소 진정 사건들을 집계를 내서 발표를 헌 건디, 우리 충청남도가 단연 일등이더라구. 그리고 충남에서두 우리 서·태안 지방이 단연 일위더라구. 그러니께 믿을 수 읎는 사람들, 등뒤에서 칼질을 허는 비겁허구 치사헌 사람들이 이 충청도 양반 동네에 제일 많다는 거여. 그거에 대해서는 자네가 워치게 생각허나?"
"그건 우리 충청도에 들어와서 사는 타지방 눔덜이 저질르는 짓일 테지, 설마 우리 충청도 사람들이…."
"충청도에서 사는 타지방 사람들이? 그럼, 그 사람들은 대개 전라도 사람들이겄구먼?"
"충청도루 와서 사는 전라도 사람들이 굉쟁히 많으니께…."
"그런디 말여, 그 투서질이며 무고며 고소 진정 사건이 지일 즉은 디가 전라남·북도더라구. 그거는 워치게 생각허나?"
"그거는 즈이덜끼리 사니께…."
"자네두 양반은 뭇 되느먼. 충청도 땅이서 살긴 헤두 양반이 되기는 다 글렀어."
"뭔 소리라나, 그게?"
"충청도 사람은 원래 그러질 않어. 충청도 양반은 괜히 아무 근거도 읎이 넘을 비방허지도 않구, 다른 지방 사람들에 대해서 능멸을 허거나 모욕적인 말을 함부로 허질 않는다구. 그러는 위인들은 충청도 양반이 아니란 말여.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어듣겄남?"
"내가 아무 근거두 읎이 전라도 사람들 욕을 허는 게 아녀."
"그럼, 그 근거라는 게 도대체 뭐여?"
"나만 이런 소리 허는 게 아니라구. 전라도를 많이 댕겨본 우리 같은 기름쟁이들은 누구나 다 허는 소리여."
"그러니께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 있겄느냐는 그런 소리겄구먼?"
"척허면 삼천 리지."
"그런 것보구 부화뇌동이라구 허는 거여."
"부화뇌동?"
"확실헌 주관이나 견식도 읎이 넘의 말을 무조건 받어들이구 따러서 행동허는 것을 보구 부화뇌동이라구 허는디, 부화뇌동을 잘허는 사람들은 대개 넘의 옳고 좋은 말은 잘 받어들이지를 않구, 글르구 못된 말에만 귀가 솔깃헤지거든. 그게 대표적인 특징이여."
"그러니께 나두 그렇다는 소리여?"
"자네, 내가 지금 엄청난 빚구럭에 빠져서 죽을 고생을 다 허구 살구 있다는 건 들어서 알구 있지?"
"그려. 그런디 그 얘기가 지금 왜 필요허다나?"
"이 보증빚의 최초 원인이야 매제눔헌티 있지먼, 원체는 보증빚 덩어리가 크구 사연이 복잡허다 보니께, 수많은 사람들이 그 사연과 관련이 되어 있지. 나쁜 눔들이 참 많어. 그런디 그 나쁜 눔들이 하나같이 충청도 사람들이여. 다른 지방이서 온 사람들두 아닌…. 그러니께 내 말은, 나쁜 눔들은 어디나 다 있다는 거여. 그리구, 나쁜 눔들이 있으면 좋은 사람들두 있는 벱이구…."
"그거야 그렇겄지…."
"자네, 경상도와 전라도를 놓구 볼 때 어느 쪽이 더 쎄다구 생각허나?"
"그거야 경상도가 월등 쎄지. 뭘루 보나…."
"그러니께 전라도가 경상도에 비해서 여러 모루다가 약자인 건 틀림읎다는 소리지?"
"그런디 왜 갑자기 그런 얘기가 나온다나?"
"자네, 좀전에 테레비두 더러 보구 산다구 혔는디, 그럼, '동물의 왕국' 같은 것두 좀 보남?"
"그건 왜 묻는디야?"
"동물의 세계를 보면, 동물의 공격 본능 중에 이런 게 있지. 같은 종족, 같은 무리 안에서두 약헌 눔을 집단으루 공격허구 뭇살게 구는 것…. 그건 동물이 본능만 있지 이성이 읎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여."
"………?"
"사람헌티두 그런 심리가 있지. 강헌 쪽에 붙어서 약헌 쪽을 공격허구 따돌리려는 짓…. 그것을 갖다가 유식헌 말루 표현허자면 '강자동일시(强者同一視)라구 헌다네."
"그러니께 내가 지금 강헌 쪽인 경상도에 붙어 있다는 소린감?"
"자네헌티 알게 물르게 그런 게 작용을 해서 자네가 지금두 전라도를 나쁘게 말허는 겨. 생각해 보라구. 우리 나라에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생기지 않었다면 자네가 그렇게 전라도를 공격허구 비방허구 모욕허는 말을 허구 댕기겄남…?"
"………."
"사람은 강자동일시 심리를 갖구 살어서는 안되는 겨. 그건 동물의 수준배끼 안 되는 겨.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약자동일시 심리를 갖구 살어야 허는 겨."
"그러니께 내가 지금 동물의 수준배끼 안 된다는 건감?"
"자네헌티 강자동일시 심리가 작용허구 있다면 말일세."
"난 절대루 경상도 쪽에 붙구 싶어서 전라도 사람들을 욕허는 게 아닌디…."
"그렇다면 다행일세. 그것을 증명허기 위헤서라두 앞으로 다시는 전라도 사람들을 욕허구 댕기지 말게. 전라도 사람들을 욕허는 말들이 절대루 옳은 소리두 아닌 이상…."
"그려. 알었어. 잘 알었으니께 우리 그런 얘길랑 그만 허구 쐬주나 마시세. 아나고 괴기가 울고 있네."
"아나고라는 말은 일본말이여. 그말을 자꾸 쓰면 붕장어라는 우리말이 울어."
"갈수록 태산이구먼. 허허허."
그 친구는 웃었습니다.
나도 웃었고, 한 자리에 둘러앉은 모든 이웃들이 같이 웃었습니다.
그 날은 그렇게 그런 대로 다행스런 국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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