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개혁 문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꽤 많이 써온 내 글들에는 지역감정 문제와 관련하는 부분적인 논급들도 간헐적으로 등장하곤 했습니다. 그럴만큼 지역감정 문제는 나의 변함 없는―내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관심 사항이기도 했습니다.
내 글들에서 지역감정 문제와 관련하는 '고뇌'들을 느낀 일부 독자들이 내게 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글을 써 보기를 권유하였는데, 그것은 일종의 '요구'이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독자들의 그런 권유와 요구가 '지역감정―그 무지와 미망의 늪'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습니다.
나로 하여금 지역감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신 (권유와 요구를 베풀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우선 감사를 드립니다.
지역감정 문제를 정면으로, 구체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난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위험 부담이 큰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 양심과 고뇌를 다 바쳐 진실하고 성실하게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나의 양심에 기반하는 '주관'을 확실하게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자니 용기를 많이 발휘한 만큼 격려 못지않은 거친 비난들도 많이 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글에 대한 몰이해와 오해, 그리고 거친 비난들은 사실 내가 헤치고 나아가야 하는 '넝쿨숲'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처음에는 내 글에 대한 모든 반론(논법이 성립되지 않는 비방과 야유까지 포함하여)들을 종합해서 그것들에 대한 내 소견을 정리하는 글을 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이트들에 오른 모든 '독자 의견'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내 홈의 게시판에 올리고 보니, 그대로 토론의 모양새가 잘 갖추어진 폭이 되었습니다.
내 글에 대한 대개의 반론들에 다른 독자들의 재반론이 이어지는 형태가 되어서, 안타까운 문제들도 어느 정도는 보기 좋게 해결이 된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굳이 별도의 구체적인 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지요.
내 글에 반론(논법이야 성립이 되든 안 되든)을 제기하신 분들께서는 내 홈에 한번 오셔서 '토론게시판'이나 '독자의견게시판'에 정리 게시되어 있는 자신의 견해뿐만 아니라 그것과 관련되는 다른 이의 의견들을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지역감정 문제에 관한 이해의 폭이 좀더 넓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늘, 지역감정 문제와 관련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간단하게나마 한마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지역감정 문제에 관해서는 온 국민이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도 엄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역감정 문제에 관한 국민적 성찰과 반성에는 종교인들이 앞장을 서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천주교 신자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인 '사랑'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도 천주교 신자들이 앞장을 섰으면 하는 마음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홈과 부산교구 홈에도 열심히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교회 홈들에서 논법이 제대로 서지 않는 반론들을 접하고 잠시 당혹감을 안기도 했습니다. 내 글이 오히려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며, 어느 정당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쓰는 글이 아니냐는 망발에 가까운 말도 교회 홈들에서 접한 말들이지요.
연세가 60이시라는 어느 어른님은 "지역감정이라는 말을 잊을 만하면 또 그것을 들고 나오는 자가 있다'는 언설을 피력하셨습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지역감정은 자연적으로 소멸이 되리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에게 과연 지역감정을 잊은 때가 있었으며, 있었다면 그때가 과연 언제였는지 묻고 싶군요. 그리고 설령 잊은 때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개인적으로 잊은 것과 없어지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것의 차이에 대한 성찰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해 보셨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자연적으로 소멸이 되리라는 그 '태평'과 '낙관'이 참 부럽기도 하면서,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게 과연 가능하고도 옳은 것이며, 그게 어느 선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행태들이 일부 종교인들에게서 발휘되고 있는 현실을 몹시 슬프게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의 일부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 지역감정과 색깔론이 횡행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교회 밖에서 대규모의 집회를 열고 지만원과 조갑제 등 대표적인 극우 인사들을 초청하여, 현 민주당 정권의 '햇볕정책'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냉전 사상 지속을 주장하는 그들의 설교(폭언)에 광적으로 호응하기도 하는데, 거기에는 영남의 지역감정이 미묘하게 껴들어 있음도 느끼게 됩니다.
일부 개신교 목회자들이 교묘하게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정책을 맹비난하는 현상에서 나는 종교 집단의 몰이성―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아집과 편견에 의한 광적인 공격성에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종교의 본질적 가치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사랑'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적(敵)의 개념에만 치중하여 개혁 세력과 평화통일 추진 세력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철저히 불신하고 증오하며 전쟁과 파괴를 주장하는 그 논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외쳐대는 현상은 심각한 가치전도와 정신분열증을 실감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신교 집회에서 북한의 김정일을 사탄으로 규정하고, "남한 사회에서 개혁과 평화통일을 주장하며 양심 세력임을 자처하는 모든 사람들은 사탄의 제자들"이라고 한 조갑제의 발언대로라면, 지난 8월 내내 '매일미사' 책에 제시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쳤던 천주교 신자들은 그대로 '사탄의 제자들'일 수도 있는 거지요.
한국천주교회에서 공식 기도문으로 제정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는 남북 분단에 대한 성찰만을 포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한 사회의 지역감정에 대한 성찰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하는 거지요.
나는 이제 이 글을 접으면서 일부 개신교 신자들에게 (천주교 신자들에게도) 내가 1993년에 충남 서산과 태안의 지역잡지 <갯마을>에 썼던 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나는 1991년부터 94년까지 4년 동안 <갯마을>의 편집인 겸 주간으로 '봉사'하며 매호마다 '편집인의 말'이라는 고정 코너의 칼럼을 썼었지요. 오늘 소개하는 글이 여러분께 작은 '참고'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나자렛 예수'를 아십니까
지난 2월 11일 인천에서의 일이다. 연안 부두 터미널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재인서산군민회> 김의경(金義經) 회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택시의 뒷좌석에 오르니 앞좌석의 뒤쪽에 부착된 주머니에 작은 책자들이 가득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성경책과 개신교계의 신앙 서적들이었다.
필자는 일단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운전 기사에게 "기사님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신가 보죠?" 하고 말을 건네니 그는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일방적인 강요가 아닌 자연스런 방법으로 승객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물론 성과도 있으시겠지요?" 하니, 승객들 중에는 책을 가져가거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택시 기사는 말했다.
동행한 이상규 사진부장과 필자가 충남 서산에서 온 사람들임을 밝히고 필자는 인천에 관한 사항들을 물었다. 택시 기사는 인천이 여러 지방 사람들이 몰려서 뒤섞인 개성 없는 '잡탕 도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인천의 토박이·경상도·전라도·충청도·이북 실향민들의 인구 비율까지 들며 인천의 성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인천의 성격은 주로 정치적인 것으로써 지난 대통령 선거와 14대 총선 때의 '인천의 여당 지지 성향'을 더럭 강조하는 그런 것이었다.
말씨가 확연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경상도 사람임을 알게 하는 그는 전라도 사람들이 부천 쪽에 많이 살고 있어서 김대중 씨가 부천에서는 유세를 요란스럽게 했지만 인천의 본바닥 쪽으로는 오지도 못했노라고 비아냥거리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호남 사람들의 지역 감정을 크게 개탄했다. 호남에서 김대중 씨에게 90% 이상, 심지어 광주시의 어느 선거구에서는 97%의 몰표가 쏟아진 사실을 예로 들며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했다.
그것은 공산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그걸 아셔야 해요" 라는 말을 달았다. 일테면, "전라도에 가면 사람마다 '김대중 선생' 이라고 부르는데 그게 바로 개인 숭배 사상이고 이북과 마찬가지 짓이에요. 그걸 아셔야 해요" 하는 식이었다.
필자는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다.
"우리를 멍청도 핫바지로 취급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인 줄로 아시는 모양인데, 당신이 얼마나 알고 있나 좀 묻겄시다."
그리고 필자는 과거 박정희 씨가 유신 체제를 만들었을 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몇 %로 당선됐는지 아느냐, 전두환 씨가 5공을 열면서 선거인단에 의한 체육관 투표로 몇 %의 지지를 얻었는지 아느냐, 호남의 지역 감정이 언제부터 왜 생겼는지 아느냐, 영·호남의 지역 감정을 유발시키고 이용한다면 어느 쪽이 더 많이 득을 보는지 아느냐 등등의 말로 응수했다.
그러나 제대로 대화가 될 리 없었다. 호남 쪽 지역 감정의 연원을 따지는 대목에서 그가 조선 시대부터 전라도가 유배지로서 푸대접을 받은 곳이라느니, 그래서 한이 많은 곳이라느니, 동학란이 전라도에서 발생한 것만 보더라도 호남 사람들은 본래 저항 기질이 강하다느니…실로 놀라운 지식으로 열변을 토하는 바람에 필자는 다만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뿐이었다. 사람의 무지와 편견 앞에서 절망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또 한 번의 경험은 필자로 하여금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택시 기사와의 논쟁에서 패배를 한 격인 필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아직 시간이 있음을 확인하고, "예수님을 믿는 만큼 사랑하십니까?" 하고 그에게 물었다. 그가 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럼, 예수님이 그 당시에 겪었던 슬픔들을 많이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또 그렇다고 했다.
그럼, 예수님께서 골고타 산의 십자가상에서 처형될 때 예수의 머리 위에 붙여졌던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죄수 명패에, 로마 총독 빌라도가 왜 굳이 '나자렛 예수'라는 말을 썼는지 아느냐고 물으니 그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유대아에서 지역 감정에 의해 멸시받고 천대받았던 갈릴래아 지방에서도 중심지였던 나자렛―그 나자렛 예수의 죽음에는 로마의 지배에 대해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갈릴래아 사람들에 대한, 로마의 통치술과 바리사이들에 의해 더욱 조장된 지역 감정 등이 복합되어 있는데, 그런 사정과 나자렛 예수의 슬픔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고 다시 물으니 그는 왠지 필자의 말을 미심쩍어 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서 더 이상 긴 말을 나눌 수가 없었다. 필자는 택시에서 내리며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예수님은 어느 면으로는 지역 감정의 희생자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의 지역 감정보다 갈릴래야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멸시와 천대―그 지역 패권주의를 동원하여 예수를 처형했던 바리사이들을 우리는 문제 삼아야 합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호남 사람들의 지역 감정보다 당신의 지역 감정을 문제 삼아야 하고, 호남의 지역 감정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절망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런 자세가 아니고서는 당신이 기대하고 강조하는 '신한국'을 건설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도 바른 모습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필자의 그 말을 그 택시 기사가 얼마나 공감했는지 알 길이 없다.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고, '신한국 건설'이라는 구호가 한결 드높게 열창되어지는 오늘, 지난 2월 11일 인천에서의 그 택시 기사를 새삼스럽게 떠올리는 필자의 마음은 더욱 스산하면서 안타까움이 절절하다. (1993년 <갯마을> 3·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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