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을 받은 후 떠오르는 것들

5공때 학교서 한 명씩 정화대상자로 쫓아내던 생각이

등록 2001.10.06 04:58수정 2001.10.08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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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성과급을 받았다. 나는 중위에 해당되는 점수를 받아서 47만원 가량의 돈을 받았다. 나는 교장에게 딴지를 여러 번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위의 성적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긴 교장도 평소에 나를 열심히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어느 정도 대립관계이긴 했지만 내가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아서 은행에서 돌아오면서 갑작스레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다. 이 세상에 크리스마스 캐럴처럼 기분좋은 노래가 어디 있는가.

첫번째 단상 - 대학 시절 시험볼 때의 기분

처음 내게 떠오르는 것은 대학교 다니면서 시험을 치를 때의 불안, 그리고 성적표를 받기 전에 떨리는 느낌 그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제 시험의 불안에 시달려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시험이 없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다고 기뻐했던 기억이 났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이제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시험의 불안이 없는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것은 이 시대 봉급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이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종의 운명이 되어 버렸다.

에릭 프롬은 현대사회가 병적인 사회라고 진단을 했는데 요즈음의 세상은 더욱 더 병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미래를 위해 즐거움과 놀이를 포기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쳐야 하는 게 현대인의 모습이다. 걱정없이 뛰어놀았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은 이제 어디 가서도 찾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어른이 된 후에도 효율성을 창조하기 위해 불안과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게 현대인들의 갇힌 삶이다. 걱정으로 가득 찬 삶이다.

두번째 단상 - 전두환과 정화대상자 축출

전두환은 쿠데타에 성공하자마자 모든 경찰과 교육계의 충성도를 실험하기 위해 각 경찰서에서 몇 명씩 정화대상자를 선정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게 이른바 악명높은 삼청교육대였다. 여기에 경찰서장들은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누구나 정해진 인원을 삼청교육대에 보내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여기에 억울한 사람들이 단순히 몸에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기도 했다. 진짜로 끌려가야 할 사람들은 결코 끌려갈 수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교육계에서도 학교에 1명씩 정화대상자를 선정해서 교단에서 쫓아내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 당시 거기에 걸려든 사람들을 보면, 남편이 없는 과부교사, 평소에 남편이 돈많이 번다고 떠들고 다니던 여교사, 그리고 교장에게 반대를 하는 교사 등이 있다. 내가 아는 친구 아버지는 그 때 파면을 당해 아직도 택시기사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갑자기 그 때의 일이 떠오르는 것은 이번 성과급이 하위 30%를 무조건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학교의 모든 교사들이 열심히 일을 해도 30%는 하위 등급을 맞아야 하고, 아무리 개판을 치는 교사들만 모여 있어도 30%는 상위 등급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없어도 만들어서 올려야 한다는 점에서 성과급은 마치 군부독재때나 실시할 수 있는 획일성과 강제성이 느껴진다.

세번째 단상 - 보상과 강화에 대한 스키너의 이론

1950년대 심리학자인 스키너는 쥐의 실험을 통해 그의 독창적이고 정교하며 응용가치가 놓은 강화이론을 제시했는데 그게 소위 말하는 조작적 조건화이다. 그가 심리학에 불러일으킨 충격은 매우 큰 것이었으며 그는 적어도 심리학자들의 우상이었다. 그의 이론은 세계로 전파되었으며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제자들은 도저히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할 수 없다고 반기를 들고 있었으며 그를 반대하는 심리학이 생길 정도였다. 한 때 타임지에 그의 손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사진이 표지에 실린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스키너의 최후를 알리는 상징적인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러한 스키너의 이론은 기업과 정부 사이에서 고도의 효율성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집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성과급은 열심히 일하면 돈을 더 준다고 하여 타발적 방법으로 성실한 노동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대기업에서야 성과를 많이 내서 이윤획득에 기여했으니 좀더 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공무원들에게서는 그러한 의미를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보상과 강화이론에서 어떤 보상이나 강화를 주는 것이 행동의 빈도를 늘릴 수는 있지만 그게 어떤 본질적인 학습이 될 수 없다고 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행동의 활성화에 불과하지 어떤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행동주의자들은 체벌에 대해서도 비슷한 입장이다. 체벌이 어떤 행동을 잠시 못하게는 할 수 있지만 그게 바람직한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본질적으로 강화나 체벌은 잠시 동작의 횟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며 행동의 질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네번째 단상 - 보상이 부르는 부작용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보상을 통한 교육의 문제점을 더욱 더 많이 발견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은 보상이 <자발적인 동기>를 빼앗아감으로 해서 상이 제시 않는 동안 인간을 더 게으르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실험이 있다. 퍼즐놀이를 좋아하는 원숭이에게 퍼즐놀이를 더 잘하라고 바나나를 보상한다. 원숭이는 바나나를 먹고 더 열심히 퍼즐놀이를 한다. 그러나 바나나가 사라지면 더 이상 퍼즐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상을 받지 않은 원숭이는 계속 퍼즐놀이를 즐기는 반면 보상을 받은 원숭이는 보상을 받지 않으면 퍼즐놀이를 하지 않는 매우 타락한 상태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험에 의해서 <내재적인 동기>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것은 반드시 보상을 주면 나아진다는 일반적인 개념이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보상에 관해 중요한 사실은 어떤 보상은 한두 번은 먹혀들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약효를 잃어버린다는 점이다. 처음엔 사탕 하나로 아이들을 꾀어낼 수 있지만 갈수록 그 보상의 효과는 약해진다는 점이다. 특히 고등동물일수록 그런 보상에 잘 움직이지 않는다.

다섯번째 단상 - 상이란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어렸을 때 상을 많이 받아본 사람들은 상이라는 것을 매우 좋은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때로 교사가 잘하는 아동에게 상을 주거나 칭찬을 함으로 해서 아동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상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질투를 가질 수도 있고, 절망을 할 수도 있다. 질투란 우울의 다른 모습이라고 정의된다.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아도 그렇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초기에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칭찬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말기에 힘겹게 공부를 하는데 누가 성적이 많이 올랐다는 칭찬을 할 때 갑자기 맥이 풀려서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3 때라면 누구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할 시기이다.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대놓고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칭찬을 해대던 그 선생님이 오히려 학습의욕을 사라지게 했다. 그래서 고3 말기에는 오히려 공부할 의욕을 잃고 말았다.

마지막 단상 -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강한 편견

꼭 성과급을 주고 그리고 칭찬을 해야만 일이 잘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시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선입견이다. 성과급은 약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단순히 제도를 실시하면 단순히 일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경험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범하기 쉬운 잘못이다. 세상이란 그렇게 정치인들의 생각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제도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보다 파행 운영되거나 부작용을 갖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 점을 알고 어렵더라도 복잡한 과정과 치밀한 준비를 통해 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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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원 공간에서 3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면서 4차원적 사고를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3차원 공간 속에서 4차원적인 문제발견력과 문제해결력으로 수학적인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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