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조기 게양, 이유도 가지가지

등록 2001.10.06 08:49수정 2001.10.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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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으로 만들어 가슴에 차고, 배지로 만들어 양복 깃에 달고, 자동차 안테나 올려 달고, 프린터로 뽑아 창문에 붙이고, 대문 앞 깃대에 달고, 결국 매진되자 남의 집에 게양된 것 훔쳐 달고..

9.11 테러 이후 온통 성조기로 뒤덮이다시피 한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테러 공격을 받은 9월 11일, 폐허더미 속에서 생존자를 찾아 헤매던 뉴욕의 소방관들은 무너진 안테나 탑에 성조기를 게양해 테러로 목숨을 잃은 수천의 생명을 애도했다. 참사 직후 폐허더미 위에 솟아오른 성조기는 커다란 상처를 입은 미국인을 위로하고 단결을 호소하는 상징적 이미지로 각인됐다.

하지만 곧 보복과 응징을 외치는 주전론의 목소리가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나라를 뒤덮다시피 한 성조기에서 갑자기 서늘한 호전적 이미지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특히 베트남전 당시 반전 운동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의 주민들은 혹시나 성조기 물결이 맹목적인 국가주의의 부활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하기도 했다.

아랍인에 대한 희롱과 린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 백악관에서 전쟁과 응징의 목소리가 높아지던 때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던 시크 교도가 무슬림으로 오인받아 총격을 받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아랍인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했다. 아랍인들은 등교하는 아들 딸의 안전을 위해 대문 앞에 그리고 자동차 안테나에 허겁지겁 성조기를 게양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성조기는 악귀와 횡액을 막기위한 강요된 부적이나 다름 없었던 셈이다.

세계무역센터의 폐허더미 위에 게양돼 있던 성조기는 공습을 위해 인도양으로 출항한 항공모함 키티호크로 옮겨졌다고 한다. 위로와 단결에서 복수와 응징으로 선회한 미국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특별한 성조기인 셈이다.


적-청-백 삼색으로 이루어진 성조기처럼 미국내의 여론도 다행히 맹목적인 주전론 일색만은 아니다. 더구나 10여년 전의 걸프전 때와 비교하면 이슬람에 대한 미국내의 반감과 증오범죄는 실제로 대폭 줄었다고 한다. 그동안 미국내 진보세력의 꾸준한 노력으로 미국사회의 똘레랑스 수준이 높아진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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