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이문열의 홍위병인가?

책반납행사를 보도하는 조선일보의 행태를 보며

등록 2001.11.06 12:46수정 2001.11.07 16:54
0
원고료로 응원
11월 3일 '이문열돕기운동본부'가 이천에 있는 이문열 씨의 부악문원에서 책반납행사를 예정대로 치른 것은 이미 여러 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이 행사와 관련한 각 언론의 보도를 보면 유독 조선일보만이 특이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11월 5일 이 신문 문화면에서는 "국민작가의 책을 독극물이라니..."라는 제목으로 거의 한 지면을 통털어 다루었으며, 11월 6일에도 이어 '이문열 책의 '장례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고, 같은 날 오피니언면의 조선데스크에도 '책장례식'과 동네법이라는 제목의 김광일 기자의 글을 비교적 장황하게 싣고 있다.

전혀 보도하지 않았거나, 간단히 행사내용을 보도한 다른 언론사에 비해 이틀간에 걸쳐 사설까지 동원한 조선일보의 보도내용을 보면 어떤 집착과 신경질적 반응이 느껴진다.

물론 큰 의미를 가진 하나의 행사내용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고 논평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최다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가 이렇듯 대대적으로 기사와 사설에 실어주니, '이문열돕기운동본부'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신문이 이 행사를 지면에 싣는 행태가 사실보도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자사의 시각만을 채워서 행사단체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에 있다.

11월 5일 문화면의 기사에서는 '그것은 전대미문의 문화적 참사였다'고 시작하여, '이날따라 깊고 무심한 하늘엔 한국 문화의 장래를 절망케 하는 검은 만장 같은 징후가 떠돌고 있었다. 피킷 든 자만 남고 펜과 붓을 쥔 자는 이땅을 떠날 것 같은'이라는 한껏 비장하고 암울한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축제와 같은 행사로 치른 행사당사자에 비하면 너무나 대조적이 아닌가?

11월 6일자 사설에서는 '엊그제 작가 이문열(李文烈)씨의 경기도 이천 집 어귀에서 벌어진 ‘이문열 책 반환 장례식 ’은 작가의 책을 장례 치렀다기보다 우리 문단과 문인 전체의 붓과 펜을 장례 치른, 우리 문단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라고 행사의 의미를 왜곡하고 자의적으로 판정한다.


또 같은 날 조선데스크 칼럼에서는 현장에 갔다온 기자가 이 행사를 독자의 입을 빌어 '언론 플레이로 끝난 장례식', '홍위병의 나팔수들', '지식인 테러', '한국판 분서갱유'라고 표현하며 몸서리를 쳤다고까지 한다.

그런데 참 흥미로운 것은 상복행렬을 막았다는 마을 이장님이 위대해 보인다며, 뜬금없이 동네 이장님을 칭찬하고 나섰다. 요컨대, 동네에는 동네법을 지키는 이장님이 있어 해괴한 상복행렬을 막았는데, 우리 문화계에는 '문화법'도 없고, '문학동네'를 지키는 이장님도 없으니 그 동네 이장님이 새삼 위대해 보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김광일 기자는 상복행렬을 제지한 장암리의 이장같은 분이 '문화동네'에 없어 '그저 성역과 금기를 넘겠다는 수십 명 ‘시민’들만이 ‘단체’를 급조, 자기들의 ‘정의’를 휘두르는'것이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다. 그런데 그 기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런 '문화동네'의 이장님이 정말이지 아쉽다.

그런 이장님이 있어서 그의 말마따나 면면히 이어지는 정신과 사상을 담은 '문화법'을 만들고, '문화동네'를 든든히 지켰다면, 오늘날 이문열 씨가 하듯 문학과 문화를 빙자하여 정치적 행위와 발언을 일삼고,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하고 그의 행위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홍위병'이니 '전라도 사람'일 것이라느니 하면서 매도하는 비문화적, 비문학적 꼴을 그 이장님은 결코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11월 3일 부악문원 앞의 행사에 대해 비슷비슷한 내용을 기사, 사설, 칼럼을 다 동원해서까지 나름대로 논평하고 비판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다. 오늘날 이문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홍위병'발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틀간에 연이은 책 반납행사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글을 보면서 조선일보야 말로 바로 이문열의 홍위병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유력한 대선후보조차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면에서 무시하는 행태가 일상화되어있는 조선일보에서 기껏(?) 수십명 모여서 모의 장례식이라는 행사를 벌인 것을 일개 문학인의 입지를 위해(외견상 우리 문학이나 문화라는 상징성을 내세우지만 과대망상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심혈을 다해 비판하고 호도하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것은 조선일보 한 부, 한 부가 홍위병이 되어 이문열이라는 문화권력을 지키기 위해 집집마다 침입하는 형국이다.

비문화적인 권력을 지키기위해 '문화'라는 이름을 내세운 조선일보의 홍위병적 행태, 이것이야말로 '문화혁명'의 모습을 보는 듯하지 않는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아버지 금목걸이 실수로 버렸는데..." 청소업체 직원들이 한 일
  2. 2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깜짝 등장한 김성태 측근, '대북송금' 위증 논란
  3. 3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4. 4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명품백 불기소'에 '조국 딸 장학금' 끌어온 검찰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