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진실의 이름으로 ②

지요하의 <참된 세상 꿈꾸기> 정보동의 김홍만 선생께

등록 2001.11.28 08:52수정 2001.11.2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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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화산을 오를 때는 좀전에 얘기한 '산 속의 나그네'를 좀더 명료하게 떠올리곤 합니다. 그 나그네 심정이 너무 무겁기도 해서 때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엊그제 토요일의 산행 길에서는 그런 상태가 더욱 심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단점이며 여러 가지 부정적인 속성들을 많이 떠올렸고, 우리 국민 대중의 '가치관의 부유' 상황이 너무도 첩첩산중 오리무중임을 더욱 깊이 절감하면서 한숨을 내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많은 시련과 축복을 함께 주시는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우리의 불행한 역사 속에서도 축복의 역사들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19세기 끄트머리에서나마 최초의 민중 봉기 역사로 기록되는 '동학혁명'이라는 찬란한 금자탑을 세웠고, 그것을 시발로 3·1만세운동, 4·19의거, 부마사태, 5·18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명명되는 위대한 민중의 역사를 연면히 이어왔습니다.

몰론 그 위대한 민중의 역사들은 '민족정기'라는 것과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 것이지요. 민족의 정기가 바로 설 때라야만 그 위대한 역사의 굽이들은 제대로 의미가 조망되고 가치가 자리매김될 수 있으며, 그 모든 역사적 사건들의 기본 정신이 바로 서야만 민족정기도 함께 살아나고 우리 사회에 구현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 비추어본다면 우리 민족은 아직 '역사 체험'을 현실의 삶으로 승화시키는 지혜와 능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 소중한 역사 체험을 쉽게 망각해 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네 삶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많고 소중한 역사 체험들을 우리가 오늘의 삶 안에서 승화시키지 못하는 데에는 그것을 방해하고 왜곡시키는 (저 20세기 초엽 나라를 잃던 때로부터 연유하는) 완강한 기득권 세력의 반성 없는 힘이 너무도 크고 무분별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살기 등등하게 엄존하고 있는 그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철벽같은 힘과 온갖 방해 속에서도 우리의 민주주의와 민중의 역사는 힘겹게 조금씩이나마 전진을 계속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의 보배로운 역사가 바로 저 1987년의 '6월시민항쟁'입니다.

그 보배로운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나라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선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새 헌법의 발효로 민주화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어느 분야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정치 개혁이 일단 물꼬를 트게 되었다는 말도 표현 가능한 말이겠지요.


그 후 우리는 민주화의 확실한 진전을 경험하면서 마침내는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최초의 경험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현 정권이 여러 가지 면에서 죽을 쑤며 국민에게 큰 실망과 삶의 무게를 안겨 주고 있는 것도 확실하고, 그것의 요인에 대해서는 좀더 포괄적인 관점과 분석이 필요하지만, 여하튼 간에 우리에게는 1987년의 '6월항쟁'으로부터 비롯된 참으로 소중한 여러 겹의 역사 체험들이 안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사가 계속 진전되는 한 과정에서 또 하나의 역사 체험으로 우리는 지금 매우 난분분한 곡절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언론개혁' 운동입니다. 언론개혁 운동은 김 선생들이 말하는 그런 '한풀이' 차원이 결코 아닙니다. 민중이 민중의 역사를 진전시켜 가는 한 과정이며,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소중한 역사 체험으로 자리해 가고 있는 도정인 것이지요.


내게 "시간을 내어 성경책을 '제대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보아 김 선생께서도 하느님을 믿으시는 분이신 것 같아 하는 얘기입니다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주시지 않습니다. 씨앗을 주실 뿐이고, 단초를 열어 주실 뿐이고, 물꼬를 터 주실 뿐입니다. 그 다음의 모든 일은 우리들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민주화의 실마리를 베풀어주셨고, 우리 역사는 지금 그것의 좀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진전을 위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인 것은 아니고 완성의 실체가 명확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완성의 길에 접근해 가기 위한 강력한 운동 법칙의 작용에 의해, 역사 발전의 한 과정으로 오늘의 언론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 선생께서는 물론 부정하시고 과소 평가하시겠지만, 나는 오늘의 언론개혁 운동은 처절했던 과거의 민주화 운동을 완성으로 가져가기 위한 민중의 '역사 창조' 운동으로 봅니다. 역사 창조란 늘 장엄하고도 엄숙한 것이며, 그만큼 파란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오늘의 이 운동은 저 1987년의 '6월항쟁' 에 시원을 두고 있지만, 더 멀게는 기득권 세력에 저항하여 봉기했던 최초의 민중 역사인 '동학혁명'에까지 그 숨결이 닿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최초의 민중 역사인 '동학혁명'으로부터 유래되고 1987년 '6월항쟁'에 의해 촉발된 민주화 진행 과정의 한가지 단계로서, 다시 말해 사회 개혁의 필요불가결한 과제로서 오늘의 언론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오늘의 언론 개혁 운동을 저 1987년의 '6월항쟁'과 연결시키고 있기에 오늘의 이 운동 속에서도 '최루탄 냄새'를 맡는 듯싶습니다. 이 운동의 주변과 곳곳에 최루탄 가스가 자욱해져 있는 현상을 봅니다.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갈망과 요구를 외면하고 탄압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기득권의 강고한 성채 안에 발을 붙이고 서서 언론개혁 운동을 방해하며 억누르려는 세력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6월항쟁'을 최루탄으로 진압하려 했던 자들이 족벌 언론과 결탁하고 그때처럼 똑같이 방독면을 나누어 쓴 채 온갖 감언이설과 언구럭으로 언론개혁 운동을 훼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조·중·동'의 지면을 뒤덮는 갖가지 언구럭들은 저 1987년 '6월항쟁'을 진압하려 했던―수많은 시민들에게 매운 눈물을 강요했던 최루탄 가스와 거의 동의어라고 나는 봅니다.

시대적 대명제인 언론개혁 운동에 맞서는 족벌 언론들의 구차스런 언구럭들을,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하는 정치 세력의 패악을 저 민주화 운동 시절의 최루탄과 연결시키는 나의 연상법이 김 선생께는 전혀 이해되지도 공감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김 선생께서는 나의 이런 발상에 심한 반감을 가질 지도 모릅니다. 삼류 소설가의 엉뚱한 상상력 발휘라고 폄하할 지도 모르겠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강고한 기득권 세력의, 옛날의 최루탄 가스와 오늘의 온갖 언구럭들을 동질의 성분으로 파악하는 나의 발상을 김 선생께서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것으로 보신다면, 이문열 씨가 언론개혁 운동 세력에게 퍼부은 독설들은 과연 사리에 맞는 것인지요?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계획 발표를 생중계 하는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를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대국민 세뇌 홍보에 비유하는 이문열의 발상법과 도발적인 발언은 과연 타당한 것이겠는지요? 정부의 세무조사 단행이 시민들의 언론개혁 운동을 증폭시켰다고 해서 언론개혁 운동에 나선 사람들을 '홍위병'으로 매도해 버린 이문열의 그 물불을 가리지 않은 폭탄적인 발언들은 과연 온당한 것이겠는지요?

물론 김 선생께서는 이문열의 그 방약무인한 발언들을 여전히 두둔하고 옹호하실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자세에 기반하여 내 글에 대한 김 선생의 비판이 가능했을 테니까요.

나는 이문열의 그런 발언들을 교활하고 야비한 '언어 테러'라고 봅니다. 더할 수 없는 '언어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께서는 이해하실 수 없겠지만, 이문열 씨로부터 그런 욕설을 듣는 나로서는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참담하였습니다. 그런 말들이 언어를 갈고 닦으며 언어로써 자신의 정신 세계를 구현하는 소설가, 그것도 한국의 한 시대를 대표한다는 문인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과민한 것이었을까요? 그런 의문을 나 자신에게도 해 보며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비록 문단 말석이지만, 나 역시 작가로서의 의무와 심성으로 우리 나라의 현실 문제들에 대해 무던히도 고뇌하며 사는 사람이기에, 이문열 씨의 그런 말들은 씹을수록 내 가슴이 아팠습니다. 언론개혁 운동에 동참한 죄로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유석춘으로부터 '악령'으로도 매도당한 처지였습니다. 50여 년을 살고 있는 이 나이에 남에게서 악령 소리를 들어보기는 정말 내 생전 처음입니다. 그것도 대학교수요, 지성인이라는 사람한테서….

언어를 가장한 이문열의 독화살은 내 가슴에도 꽂혔습니다. 나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엄살이 아니올시다. 내 상처는 깊습니다. 무시로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의 부하에다가 홍위병 무리에다가 악령까지 되고 말았으니, 여차했다가는 영영 그 매도와 저주의 진구렁에서 헤어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상황에 따라서는 평생 동안 나치와 홍위병과 악령의 딱지를 내 몸에 붙이고 살아야 하고, 죽어서도 그 낙인을 내 혼백에 달고 구천을 헤매야 할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이문열과 유석춘으로부터 선사 받은 명예스럽지 못한(어떤 국면에서는 오히려 명예가 될지도 모를 역설이 함유되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 딱지들을 스스로 떼어내는 일을 시도해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들에게 그 딱지들을 되돌려 주고, 대명천지에 내가 그런 저주스런 무리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함을―그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문열과 유석춘 등으로부터 받은, 내 등에 독화살로 꽂혀 있는 그 딱지들을 애써 떼어내어 그들에게 당당하게 되돌려 주는 일이야말로 언론개혁 운동의 중요하고도 확실한 한 갈래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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