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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 문인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인 이문열 씨에 대해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 크고도 무겁습니다. 내가 우리나라의 가장 난험한 현실 문제의 하나로 파악하고 있는 지역감정을 결부시키면 정말로 유감이 많습니다.
참으로 망국병이 아닐 수 없는 지역주의를 순화시키고 타파하는 일에는 지성인이 앞장을 서야 한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신념이자 소망입니다.
이문열 씨 같은 작가가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일에 발벗고 나선다면 현실적이고 상징적인 효과는 크게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 하나만으로 참되게 시대 정신을 열어가는 진정 위대한 작가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바라고 소원하였습니다. 이문열 씨가 자기 고향인 경상도 땅에서부터 지역감정의 덫을 해체해 나가는 작업을 펼쳐주기를 간절히 기대하였습니다. 평소 우리나라 지역감정의 골을 메워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경상도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지론을 견지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문열 씨의 또 다른 위대한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물론 지역감정 문제와 관련해서는 호남 출신 지식인들의 반성도 중요함을 인정합니다만…).
나는 충청도 땅에서 충청도 토박이로 살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김종필 씨의 자유민주연합에 의한) 충청도의 신지역감정 바람과 맞서 싸우느라고 여러 가지로 고달프게 살았습니다. 충청도의 지역주의가 충청도의 진정한 자존심은 결코 아님을 지역신문들의 지면을 통해 수없이 설파해 왔습니다. 그 덕분에 전화 폭력에 무수히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나같이 영향력이 거의 0에 가까운 작가도, 더구나 충청도 땅에서도 고향의 지역주의와 싸우는 일이 처절하리만큼 힘들었거늘, 이문열 씨 같은 대작가야 오죽하겠습니까. 아니, 어쩌면 반대로 한결 수월한 일일지도 모르죠. 아무튼 그가 자기 고향의 지역주의와 용감히 맞서 싸운다면 그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다시 없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문열 씨는 나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하였습니다. 오히려 경상도 지방의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행보를 취했고, 마침내는 '이문열 책 반환 행사'를 기획 추진하는 '이문열돕기운동본부'의 부산 사람인 화덕헌 씨에게 "당신 전라도 사람 아니냐?"고 묻는 후안무치한 망발을 감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화덕헌 씨의 부모는 전라도 사람일 것이라는 말까지 함으로써 타락한 지성의 천박한 속바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문열 씨가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다시 말해 직·간접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행보를 보임으로써 이문열 씨와 언론개혁 운동 세력간의 대치와 교전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또 그로 말미암아 우리나라 지역감정의 뻘밭 수렁은 더욱 참담한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 사실이 참으로 가슴 아픕니다. 생각하면 너무도 암담해서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이문열 씨의 현재의 태도로 볼 때 그에게 반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난망한 일일 것 같습니다. 그는 계속적으로 개혁 세력을 자극하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럭비공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를 럭비공의 속성을 체감하고 불안감과 경계심을 곧추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젓번의 글 「이름을 감췄던 내 비겁함을 고백하며」라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내가 '이문열돕기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부산의 화덕헌 씨로부터 '이문열 책 반환 행사' 때 낭송할 시를 부탁 받았을 때는 잠시 난감하였습니다. 그 전대미문의 행사에 대한 내 관심이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 행사를 거든다는 것은 야릇한 흥분과 중압감을 갖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행사에 내가 직접 참여하지는 않고 '조시' 형식의 시만 써서 메일로 보내주기로 일단 약속을 했지만, 그날부터 4일 동안 나는 남몰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라고 했던 화덕헌 씨의 말이 내 뇌리에서 길래 떠나지 않았습니다. 계속 망설이며 뭉그적거리다가 행사 전날 저녁에서야 겨우 시 짓는 일을 시작했고 밤 11시경에야 가까스로 완성해서 메일 송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차례의 고민 끝에 내 이름을 밝히지 않는 쪽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동안 몇 차례 내 실명으로 이문열 씨를 비판하고 공박하는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 중의 하나인 「내 동갑네 이문열 선생께」는 누군지 모를 사람이 이문열 씨의 홈피에 퍼다가 올려놓은 사실을 내 홈피 방문자로부터 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마음이 별로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있기에 가능한 그런 글들은 내가 실명으로 자유스럽게 행위할 수 있는 최선의 양심적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학 형식의 하나인 시를 빌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한 특정인을 비판하고 공박하는 일을, 그 언어들을 시의 형식으로 형상화한다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라는 의문도 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문인이 시를 짓는다는 것은 작품을 쓴다는 것일 터였습니다. 물론 나는 한 줄의 잡문도 진실과 양심에 입각해서 써야 함을 늘 가슴에 새기고 또 그런 자세로 살고 있지만, 아무래도 잡문성의 글들보다 시 형식은 내게 한결 두려움과 비장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특별한(?) 행사를 위해 짓는 '목적시'지만 이왕 쓸 바에는 '작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나를 강제하였습니다. 어차피 그 일은 내 인생에 있어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 일천한 문명(文名)과도 비례하여 그것은 어느 쪽으로도 그다지 비중 있는 일이 아닐 테지만, 내 개인으로서는 매우 각별한 일임을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럼에도 내가 내 이름을 감추는 쪽을 택한 것은, 대략 서너 가지 정도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문단 분위기와 관련하는 것이지요. 우리 한국 문단은 의외로 보수적인 기운이 팽배해 있는 듯싶습니다. 그것을 나는 아프게 감지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한국소설가협회' 홈 게시판에 언론 개혁 관련 글들을 올렸다가 삭제 당한 경험도 있는 데다가, 일부 문인들로부터 너무 앞으로 내닫는 것 아니냐는 충고도 듣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문단 말석이나마 공손하게 지키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문단인들에게 거부감과 부담을 갖게 만드는 것은, 그리고 같은 문인으로서 그럴 수 있느냐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는 것은 사실 나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이문열 씨에 대해 가질 수밖에 없는 개인적인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작가 위상의 격차 때문에 서로 쉽게 만날 일은 많지 않겠지만, 이문열 씨도 나도 같은 '한국소설가협회' 회원이었습니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어디에서든 서로 만날 날이 있을 터였습니다. 그것이 괜히 나로 하여금 이상한 '걱정'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남에게 미안한 짓을 잘 하지 못하는 나는 그런 면으로는 무척 소심한 사람입니다. 군대 시절 네 번이나 지원을 거듭하여 파월을 달성했고, 운동 선수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승부 근성으로 투혼을 발휘했던, 어떤 면으로는 악바리 근성을 지닌 사람이기도 하지만, 평상시에는 매사에 겁이 많은 사람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문열 씨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며 이상한 주눅이 내게는 참으로 분명했습니다.
또 하나는 내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사랑'과 결부시켜 많은 사람이 내 신앙을 의심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김홍만 선생의 예처럼 신앙의 최고 미덕인 사랑을 상기시키며 "용서나 관용이 무엇인지를 숙고하여 보기를 권"하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는 내 신앙을 의심받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나는 일상 생활에서부터 오로지 하느님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므로, 어떤 사안이나 타인에 대해서 비판을 할 때는 반드시 '정의'에 입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개인적인 분노와 공적인 분노나 '의분'을 명확히 구분하려고 애를 쓰지만, 의로운 분노도 때로는 파괴성을 수반하는 것이니, 천주교 신자로서의 신앙과 관련하는 이런 저런 생각들도 나를 주눅들게 만들더군요. 정말이지 천주교 신자라는 사람이 뒤에서 남을 음해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는 바, 그것은 내게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 작가 명색의 초라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의 미약한 작가 위상을 거론하며 "네까짓게 감히…"라고 퍼붓는 독설을 이미 숱하게 들어오고 있는 터였습니다. 그들의 지적처럼 이문열 씨와 나는 모든 면에서 하늘과 땅 차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 문단의 1등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꼴등임을 자인합니다. 그러니 여기에서부터 너무 어색한 풍경이 연출되는 것 같습니다. 꼴등이 일등을 공격한다는 것은 진풍경이기도 하면서 얼마든지 어불성설일 수도 있는 거지요. "꼴등이고 무명 작가인 주제에 네까짓 게 감히…"라는 비난과 욕설을 또 다시 바지게로 들어먹을 일이 겁이 났습니다. 정말이지 그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나는 이문열 씨를 비판하게 되면서 약간의 치기를 무릅쓰고 스스로 나를 '반딧불이 작가'로 칭하게 되었습니다. 이문열 씨의 작가적 위상을 다시 살피니, 그는 실로 '태양'이었습니다. 너무도 휘황한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를 비판하는 나는 뭔가? 절로 그런 의문이 들었고, 태양 같은 이문열 씨의 위상과 대비시켜 나는 뭔가?라는 의문의 길을 추적해 보니, '반딧불이'라는 답이 쉽게 나오더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반딧불이이고, 반딧불이 작가입니다.
그러나 반딧불이 작가라는 이 지칭은 결코 자기비하적이고 자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미약하고 초라한 작가적 위상만이 결부되어 있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내가 겸손이나 겸양을 가장하기 위한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것에는 끊임없이 진실의 세계를 추구하고 순수의 세계를 동경하고자 하는 동화적이기조차 한 나의 희원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반딧불이 작가가 태양 같은 작가를 비판하고 공격한다는 것은 정말 나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주변의 험악한 사시(斜視)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인식이 나를 더욱 비겁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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