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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전의 한 작은 출판사(한빛, 042-282-9685)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습니다. 고종순이라는 여자 분이 쓰신 '수기'를 엮은 책입니다. 책의 이름은 <하늘나라 여보에게 띄우는 사연>.
그 책의 '서평'을 제가 썼습니다. 유명 출판사에서 규모 있게 만들어서 전국 서점에 널리 퍼뜨리며 광고도 하는 책이라면 가만히 있어야 하겠지만, 지방의 작은 출판사에서 어렵게 만든 책이라서, 그 책의 내용을 좀 알려 드릴 겸 제가 쓴 서평을 여기에 소개할까 합니다.
충청도 금산 땅에 하늘의 천사가 하강하셨거나 환생하신 게 분명한 한 여자 분이 살고 계십니다. 예쁘고 가문 좋고 똑똑하신 분이신데 1970년에 결혼을 하셨지요. 신랑은 교통 사고로 척추를 다쳐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그래서 휠체어에 의지하고 사시는 분이었지요.
신랑이 다치기 전에 만난 사이가 아니랍니다. 반신불수 중증 장애자를 만나 갖고 평생을 그를 돕고 수발하며 살기로 결심했던 거죠. 멀쩡한 여자가 휠체어를 탄 사람과 결혼을 하기로 했으니, 친정의 반대는 얼마나 극심했겠으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아이를 낳지 못하는 대신 조카들을 자식처럼 키웠는데, 그 조카들은 큰 아빠와 큰 엄마를 그냥 아빠로 엄마로 부르니, 그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둘씩인 셈이었지요.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없어서 이 부부는 살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했답니다. 그리고 남편 되는 분은 병치레를 많이 했지요. 방광 수술에, 신장 수술에, 다리 골절 수술에…. 그러다가 1993년 경남 산청 나환자촌을 방문하러 가는 길에 당한 교통 사고의 후유증으로 오래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결국 1995년 58세를 일기로 운명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다가 운명하신 그 분이 보통 분이 아니랍니다. 중증 장애인의 처지에서도 천주교 신자로서, 사회인으로서 참으로 큰 일들을 많이 하신 분이시지요. 그분이 하신 훌륭한 일들과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의 착한 모습들을 여기에서 다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내 되는 분의 기록 정신입니다. 장애인 남편의 갖가지 삶의 모습을―신자 생활과 봉사 활동과 희생 정신이며, 그리고 남편의 오랜 병상 생활을 수발하면서 겪은 만난 고초들을 알뜰히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남편이 별세한 후로는 남편과의 갖가지 추억이며 혼자가 된 자신의 슬픈 마음과 생활을 하늘 나라의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록하였고….
그 기록들을 모으니 책 한 권 분량이 되었습니다. 병상 생활을 하는 분들과 의료인들이 읽으면 좋을 듯한 내용들도 있고, 여러 가지로 가치가 있는 이야기여서 주변 사람들이 책을 내 보라고 권유를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출판사와도 연결이 되었고….
원고를 입수하여 검토한 출판사는 출판을 결정하고 전문 작가인 내게 먼저 읽어보기를 부탁한 거지요. 그리고 다소의 도움을 청한 겁니다.
나는 원고를 읽다가 종반쯤에는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결국엔 눈물 속에서 그 글을 읽은 거지요.
원고를 쓴 고종순이라는 분이 참으로 거룩하고 훌륭하고 아름다운 분으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그분의 글을 남들보다 먼저 읽고 다소나마 도움을 드린다는 것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느님께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이렇게 아름답고 훌륭하고 고통스러운 삶도 있구나! 이런 일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구나! 라는 감동을 얻은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을 느낍니다.
고종순 씨의 수기를 읽은 지가 벌써 한참 되었지만, 아직도 내 가슴엔 감동이 생생합니다. 고종순 씨의 남다른 삶에서 느꼈던 일종의 불가사의함―신비로운 감정은 지금도 내 가슴을 정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는 듯싶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는데, 라는 생각도 하게 하며….
우선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었으면 싶습니다. 철저히 하느님께 자신을 내맡기는 삶, 오로지 하느님께 매달리고 애원하면서도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승복하는 삶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기복(祈福)의 그림자는 얼씬도 하지 않기에, 잠시 동안 고통이 가라앉은 것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능하게 되는 것 아닐까? 고종순 씨의 그것은 진정한 신앙의 표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을 접하게 된다면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의 신앙 상태를 비추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병상 생활을 하시는 분들과 그 가족들이 읽는다면 고통 속에서도 병상의 의미를 곱씹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심한 병고 속에서도 궁극의 희망을 놓지 않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환자의 병상 곁을 떠나지 못하는 그 영일 없는 수발과 헌신의 고통 속에서도 환자의 고통을 대신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마음―그 사랑의 근원은 무엇일까? 결국 그 모든 것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비롯되고 귀결된다는 것을 곰곰이 반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의료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참고 삼아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얘기지만 의료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귀중한 존재들인가! 의사의 친절한 말 한마디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가! 그 평범하면서도 참으로 소중한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 줄 것입니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불가의 말이 아니더라도, 산다는 일은 참으로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세상살이 고통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험한 고생을 겪지 않아도 될 좋은 조건을 타고난 사람이 남의 고통을 나누거나 대신 져주기 위해 고생길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온갖 고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그 모든 고통들을 하느님의 은혜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흔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서 이 세상엔 진정한 희망이 존재할 수 있노라는 생각이 듭니다.
착한 성품 때문에 고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노라면 다시금 하느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오로지 하느님뿐입니다. 바로 하느님에 대한 그 믿음 때문에 그들은 고난 속에서, 고난을 헤치며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는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고통의 선물을 주신다'는 말씀도 우리의 삶 안에 있는 거지요.
고종순 씨의 수기를 읽으면서 위에 적은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각성이었고, 새롭게 나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이런 기회를 다른 많은 이들이 함께 나누었으면 싶습니다.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랍니다.
내게 내 신앙 상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와 함께 그것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고종순 씨께도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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