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천재 바이얼리니스트 김수연양의 귀국 독주회가 지니는 특별한 의미

등록 2001.12.12 10:16수정 2001.12.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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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13일)은 우리 음악계에 뜻깊고 의미있는 날로 기록될 것 같다.

내일은 바로 지금부터 약 1년 전 독일 뮌스터에 사는 한 기자를 통해 본지에 실렸던 천재 바이얼리니스트인 김수연 양이 1년여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명실공히 유럽의 차세대 정상급 주자로 도약한 후 처음으로 귀국 연주회를 갖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까지 한국의 수많은 정상급 연주자들이 수많은 귀국 독주회를 가졌고 얼마전에는 모스크바에 사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가 세계적 권위를 지닌 콩쿨에서 상을 휩쓸기도 했는데 독일에 살고 있는 올해 13살의 한국 소녀의 귀국연주회가 무슨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호들갑이냐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의아해하실 거라 짐작된다.

그러나 김수연 양의 경우는 1년전 그 기자가 말한 것처럼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그녀가 87년 독일에서 그리 넉넉치 못한 유학생 부부의 장녀로 태어나서 자비로는 도저히 그 비싼 바이올린 악기나 수업료를 지불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피나는 노력과 일찌기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과 뮌스터 음대 교수 그리고 독일의 음악 교육 제도가 어우러져 일궈낸 빛나는 옥동자라는 사실에 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까지 대부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대한의 지원을 받으며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하여 국제적 명성을 획득했던 대다수의 정상급 한국 연주자들과는 그 출발에서부터 전혀 다른 한국 음악계로 봐서는 예외의 경우인 것이다.

얼마전 그 기자의 두번째 기사에서 그녀의 가정은 뮌스터 시청에서 지급하는 생활 보조비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생활을 꾸려간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렇다면 그녀는 한국의 서양음악 역사에서 지금까지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전형적 서민 가정 출신의 국제적 정상급 바이얼린 연주자가 되는 셈인 것이다.

서양악기 중에서도 바이얼린은 좋은 제품인 경우 그 가격이 우리 일반 서민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이 비싸서 우리나라의 경우 시청 보조금으로 사는 가정의 자녀일 경우 그 아이가 아무리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났다고 해도 수연이처럼 좋은 선생님이나 음대 교수님 밑에서 수업을 받고 세계적 연주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일 어쩌면 수연 양이 대한성공회 대성당에서 펼치는 신비의 선율을 통해 이 땅의 서양음악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들이나 정치, 경제 지도자들에게 한국에 있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에게도 저처럼 베우고 싶은 만큼 마음껏 배워서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강렬한 소망이 담긴 진한 감동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 믿는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수연 양의 귀국 독주회는 이 땅의 서양음악 교육계에 던지는 강하고 묵직한 도전인 셈인 것이다. 비록 수연양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독일의 음악 교육계 덕이었지만 제2, 제3의 수연양의 배출은 한국음악 교육계의 무거운 숙제로 남게되고 또 하루빨리 실현되어야 될 당위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수연양의 귀국독주회는 무료다. 이는 물론 한길사 창립 25주년 기념행사의 일원이라 모든 경비는 한길사에서 부담하겠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수연양 개인으로 봐서는 그녀가 거의 무료로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녀도 고국의 음악을 사랑하는 청중들이면 누구나 와서 들으라는 것이요 한길사의 의도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음악적 재능을 지닌 넉넉치 못한 가정의 아이들이 모쪼록 많이 와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그녀처럼 그들의 꿈을 키울 수 있는 감동의 계기를 제공하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국제적 거장의 연주를 직접 감상하는 것은 서양이나 우리나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면 특별한 젊은 거장 수연 양의 연주회는 이 상식마저 깨뜨리는 파격인 것이다.

내일 이후 수연양은 한국에서 유명세를 지닐 것이다. 매스컴도 주목할 것이고 또 어쩌면 수많은 후원자들이 순수한 의도든 상업적 의도든 그녀에게 물질적 지원을 제공하여 그녀나 그녀 가족이 지금까지 만져보지 못한 큰 돈을 지원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유럽이 지목하는 젊은 거장이며 14살이 되는 내년부터는 장학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바라건대 그녀의 진정한 성공을 기원한다면 그녀를 지금 그대로 편하게 놔두고 애정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후원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지원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오늘이 있게 한 순수한 심성과 거기서 우러나오는 감동의 선율을 오염시킬 수 있는 상업주의가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십여년전 일이지만 대우 문화재단에서 젊은 음악인을 지원한다고 하고 처음 수혜를 받는 음악인으로 정명훈을 선정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부와 명예를 획득한 정명훈 같은 거장에게 또 무슨 금전적 지원이 필요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던 기억이 있다. 이제 후원금은 자기같은 정상급 연주자가 아니라 이 땅의 넉넉치 못한 꿈나무들을 위해 의미있게 쓰여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수연 양은 이번에 고국 땅을 밟으면서 당당하게 깨우쳐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다.

수연 양에 대한 이러한 나의 관심은 내 개인적 입장에서 연유한다. 왜냐하면 나도 수연양 부모처럼 독일에서 장시간 유학하면서 플룻을 배우는 14살 된 딸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1년전 나는 우리 딸도 수연 양처럼 독일 청소년 콩쿨 전국 대회에 참여했지만 입상은 못했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 1년 동안 우리 딸에게도 수연 양만은 못하지만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우리 딸이 플룻을 시작한 것은 우선 시립 음악학교에서 무료로 배울 수 있었고 또 조그만 기숙사에서 다른 악기는 소리가 크고 덩치가 커서 배울 입장이 못되고 그나마 플룻이 적당했기 때문이다.

시작할 때는 정말 가볍게 시작했는 데, 벌써 8년 동안 배우면서 이제는 그녀의 삶의 중요한 의미가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딸도 내년 2월에 수연이가 다니는 뮌스터 음대에 입학 시험을 치르게 된다. 얼마전 딸과 함께 뮌스터 음대 플룻 담당교수를 만나서 연주를 한 후 그녀로부터 구두 승락을 받았으니 내년 4월이면 수연이처럼 뮌스터 음대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 딸도 현재 김나지움 학생이라 학교를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그 교수에게 사사를 받는 혜택을 입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교수는 수업료는 무료라고 말하면서 자기 밑에 불가리아 학생이 젊은 대학생(나이는 어리지만 재능이 있는 경우 음대에 입학하는 경우)으로 사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중년의 그녀는 너무나 수수하고 검소한 옷차림이라 길에서 보면 도저히 음대교수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우리 딸은 지금 다니는 김나지움에서 무료로 플룻 선생을 불러 사사를 받는 혜택을 입고 있는데 그 선생이 뮌스터음대 출신으로 자기 교수에게 우리 딸을 추천하여 소개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딸은 약간의 재능 덕에 자기가 다니는 학교와 대학에서 훌륭한 연주자와 그 교수로부터 무료로 사사를 받으니 한국적 상황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생각에 우리 딸 선생이나 교수의 수입은 같은 수준의 한국 연주자나 교수들에 비해 훨씬 적지 싶다. 그들은 우리 악기 교육자들처럼 시간당 엄청난 액수의 렛슨비를 받는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 사람들의 이런 교육 장려 시스템이 오랜 세월 유지되는 이 사회에 대해 그렇게 시샘이 나고 얄미울 정도로 부아가 치밀었다.

우리 음악계에 그동안 독일의 이런 시스템 속에서 공부하고 돌아가 대학이나 음악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리라 짐작되는데 우리의 경우는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딸이 음악을 해서 그런지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하나같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플룻은 독일에 있을 때나 시키세요, 안그러면 시원찮은 살림에 거덜날 테니까요"라고들 이구동성으로 충고들을 한다.

그러면서 우스개 소리로 그 집안을 망하게 하려면 "당신 자식이 음악에 재능이 있다"고 부추켜 악기를 배우게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다. 대부분 대학에 근무하시는 그 분들로부터 대학 강사급 시간당 렛슨비가 이곳 악기 선생들 서너달 보수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체계가 그 오랜 세월 지탱될 수 있는 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니 말이다.

바로 이러한 서양악기 교육자 귀족들, 서양악기 판매 귀족들이 여전히 활개치는 왜곡된 이 땅의 서양악기 교육계에 수연 양의 귀국독주회가 강렬하고 청명한 자극제가 되어 바로잡음의 단초가 되기를 이 기회에 간절히 소망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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