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으로 한 해 액운을 막아내자

동지, 소한, 대한의 의미와 풍습

등록 2001.12.21 23:29수정 2001.12.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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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은 팥죽을 쑤어 먹고 달력을 나눠가지는 동지이다. 조계사는 작년 12월22일 동지를 맞아 서울 인사동과 영등포역 일대에서 행인과 실직, 노숙자 4천여 명에게 한 해의 액운을 막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자는 의미를 담아 동지팥죽을 나눠줬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름처럼 드디어 겨울에 이르렀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해야 한다. 동지, 소한, 대한은 어떤 의미이며, 풍습은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자.

동지(冬至 / 12월 22일)


24절기의 스물두 번째이고, 해가 적도 이남 23.5도의 동지선(冬至線, 남회귀선 : 南回歸線)과 황경(黃經) 270 도에 도달하며, 양력 12월 22일 또는 23일에 온다. 올해는 22일이고, 대설과 소한의 중간에 있다. 24절기 중 가장 큰 명절로 즐겼다.

해가 남회귀선, 즉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선에 도달한 때로 밤이 제일 길다. 반대로 남반부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다. 동지 이후부터는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중근동(북아프리카, 서아시아) 지방,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이 동짓날을 설날로 지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작은설, 즉 다음 해가 되는 날이란 의미로 ‘아세 (亞歲)’라 했다.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 정도로 11월은 동지가 중심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성탄절은 신약성서에 써있지 않아서 옛날에는 1월 6일이나 3월 21일을 성탄절로 지내기도 했지만 4세기 중엽이 되어서 로마 교황청이 성탄절을 동지설날과 같은 날로 정했다.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다. 동짓날에는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단자는 새알만큼한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새알심’이라 부른다. 팥죽에는 자기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었다고 한다.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낸 다음 방과 장독, 헛간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붉은 팥죽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다.

그러고 나서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데 마음을 깨끗이 씻고, 새로운 한해를 맞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하고,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동지팥죽은 이웃에 돌려가며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는데 절에서도 죽을 쑤어 중생들에게 나누어준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에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귀신을 쫒는다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동짓달에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지만 지금은 상관없이 쑤어먹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서 찾는다.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전염병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이야기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또 고려와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옛날 왕실에서는 동짓날부터 점점 날이 길어지므로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다. 궁중에서는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임금의 도장(어새:御璽)을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매년 동지 때는 제주목사가 특산물인 귤을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궁에서는 진상 받은 귤을 종묘(宗廟)에 올린 다음에 여러 신하에게 나누어주었고, 멀리에서 바다를 건너 귤을 가지고 상경한 섬사람에게는 음식과 비단 등을 하사하였다. 또 귤을 진상한 것을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했다.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또 동짓날 날씨가 따뜻하면 다음해에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하고,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속담에는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동지 때 개딸기'란 말도 있는데 추운 동지 때에 개딸기가 있을 리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시어머니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해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지는데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했다.

동지 때는 보통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는데 이 추위가 닥치기 전 서릿발로 인해 보리 뿌리가 떠오르는 것을 막고, 보리의 웃자람을 방지하기 위해 보리밟기를 한다.

동짓날 한겨울 기나긴 밤에는 새해를 대비해 복조리와 복주머니를 만들었다. 복조리는 쌀에 든 돌 등을 가려낼 때 사용하는 것인데 새해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복 조리 사려"를 외치며 다녔다. 복조리를 부뚜막(아궁이 위에 솥을 걸어놓은 언저리)이나 벽에 걸어두고 한해의 복이 가득 들어오기를 빌었다.

음력 십일월부터는 농한기다. 하지만 이때 아녀자들이 할 일은 더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들기 위한 메주쑤기와 무말랭이 등 각종 마른나물 말리고 거두기에 바쁜 철이다.

겨울밤이면 농부들은 동네 사랑방에 모여 내년 농사에 쓸 새끼를 꼬고, 짚신이며 망태기를 삼기도 했다. 윷놀이와 곡식을 말릴 때 쓰는 멍석, 재를 밭에 뿌릴 때 쓰는 삼태기, 풀을 베어 담는 꼴망태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했다.

또 깊어가는 겨울밤 화롯불에 추위를 녹이며, 고구마를 찌거나 구워 동치미와 함께 먹기도 했는가 하면 달디 단 홍시감을 먹기도 했다.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지만 한밤중엔 “찹쌀떡 사~려, 메밀묵 사~려”하는 정겨운 소리를 들으면 잠들기도 했다.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레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의 시조)

소한(小寒 / 1월 5,6일)

24절기 중 스물세 번째로 양력으로는 1월 5일, 6일 경이다. 해의 황경(黃經)이 285도일 때이며, 동지와 대한 사이에 있으면서 한겨울의 추위가 매섭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간을 5일씩 나누어 초후에는 기러기가 북쪽으로 돌아가고, 중후에는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며, 말후에는 꿩이 운다고 하였다.

소한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처음 오는 절기다. 절후의 이름으로 보면 대한(大寒) 이 가장 추운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는 소한(小寒) 때가 1년 중 가장 추운데 절기의 기준이 중국이기 때문에 맞지 않게 되었다. "대한이 소한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든가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 ‘소한 추위는 꾸어다가도 한다.’고 할 정도로 추웠다.

"눈은 보리 이불이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눈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 "함박눈 내리면 풍년 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또 "첫눈 먹으면 감기에 안 걸린다.", "장사 지낼 때 눈 오면 좋다.", "첫눈에 넘어지면 재수 좋다."며 눈을 좋은 조짐으로 보았다.

대한(大寒 / 1월 20,21일)

24절기의 마지막이며, 양력으로는 1월 20일, 21일 경이다. 소한(小寒)과 입춘(立春) 사이에 있는 절기로, 해의 황경은 300도가 된다. 음력 섣달로 한 해를 매듭짓는 절후이다. 대한의 마지막 날은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한 해의 마지막날로 여겼다.

절분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초가 된다.

이 때 세끼 중에 한 끼는 꼭 죽을 먹었다. 크게 힘쓸 일도 없고 나무나 한두 짐씩 하는 것 말고는 대부분 쉬는 때이므로 삼시 세 끼 밥 먹기가 죄스러워 그랬다고 전한다. 일을 하지 않고는 밥을 먹지 않는다는 정신일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간에 하는 것이 풍습이다. 이때 신구간이란 말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1월 25일∼2월 1일)로 보통 1주일 정도이다.

이제부터는 한해에 가장 추운 계절이다. 우리 주변에는 연탄불도 제대로 피우지 못하여 냉골인 방에서 혹한을 견뎌야 하는 어려운 이들이 있다. 나 한 사람의 등이 따뜻하면 남의 고통에 눈을 감는 이기심보다는 어려운 이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우리 겨레문화가 요구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 모두 팥죽을 쑤어 이웃과 나누며, 올 한해 더러워졌던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

덧붙이는 글 | 참고

함께하는 우리 : www.koreartnet.com/wOOrII/etc/24julki/24julki_21.html 
뿌리넷 : www.poori.net
이야기 한자여행 : www.hanja.pe.kr/8-han/8-han1.htm
디지털한국학 : www.koreandb.net/holiday/heritage/cult_day03.html 
우리가 알아야 할 국경일과 기념일 : myhome.shinbiro.com/~leens84/index.htm
민속대사전,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의 민속, 김성배, 집문당, 1980

덧붙이는 글 참고

함께하는 우리 : www.koreartnet.com/wOOrII/etc/24julki/24julki_21.html 
뿌리넷 : www.poori.net
이야기 한자여행 : www.hanja.pe.kr/8-han/8-han1.htm
디지털한국학 : www.koreandb.net/holiday/heritage/cult_day03.html 
우리가 알아야 할 국경일과 기념일 : myhome.shinbiro.com/~leens84/index.htm
민속대사전,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의 민속, 김성배, 집문당,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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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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