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런티어'와 아메리카 원주민

<미국여행기9>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흔적을 찾아

등록 2002.01.28 04:05수정 2002.01.2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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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은 그 웅장한 자연경관뿐 아니라 흔히 우리가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 미국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바로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 주변에 위치한 보호구역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랜드 캐년의 콜로라도강 부근 단구에는 '하바수파이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으며, 그랜드 캐년 주변 코코니노 고원에는 나바호·카이바브·후알라파이 등의 원주민 보호구역이 있습니다. 과거 광활한 아메리카 영토를 누비고 다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이제는 미 연방정부에서 지정한 좁은 범위의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프런티어'에 감춰진 진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금까지 이들을 아메리카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콜럼버스의 탐험정신과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다소 서구 지향적인 인식으로 인해, 그전부터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을 콜럼버스의 시각인 '인디언'으로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신대륙의 발견이 아니라, 아메리카 침략이 되는데도 말입니다. '원주민'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인식의 차이는 단지 그것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근본정신을 나타내는 '프런티어'에서도 이러한 상대적인 의미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류기업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은 '프런티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영역에 뛰어들어 "최고가 되겠다는 의지를 '프런티어'로 표현했다"는 CF광고가 몇 년 전 TV에 방영되기도 했습니다.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딛었던 그 순간, 70년대 한국에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그 시대 여성들에게 당찬 여성의 표상으로 불려지던 어느 여가수 모습. 이들은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뛰어든 '프런티어' 정신을 보여줬다고 설명하곤 합니다. 이러한 미개척 분야에 대한 개척자의 의미를 나타내는 '프런티어' 정신의 뿌리는 바로 미국 서부를 개척하던 청교도인들의 개척정신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 꿈을 잡아주는 부적
불행을 잡아주고 행운을 머물게 해주는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부적. 하지만 정작 그들의 꿈은 잡아주지 못한듯 했다. ⓒ 최용선
제가 요즘 읽고 있는 'The American Way'라는 책에는 "이러한 프론티어 정신과 프로테스탄트 정신이야말로 미국발전을 이해하는 키워드를 제공해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아메리카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에서부터 미국의 서부개척과 발전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1850년대 지금의 캘리포니아주도인 세크라멘토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캘리포니아 드림을 한아름 안은 서부개척이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흔히들 '프런티어'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기회의 평등'이라는 근대 미국의 정신(헤리티지)이 살아 숨쉰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야에 뛰어들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그 속에서 자립심을 키웠다는 것이지요.


또한 누구나 서부를 개척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 주어졌다는 점도 강조됩니다. 법이 필요 없는 지역에 카우보이와 무법자들만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새로운 법을 스스로 만들고 도시를 형성했던 정신이 지금의 미합중국을 만든 배경이라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프런티어'

하지만 이런 개척정신에는 원래 아메리카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과 마찰이 뒤따랐습니다. 원래의 땅주인들을 몰아내고 약탈하면서, 반항하는 원주민들과의 전쟁을 통해 미지의 땅을 개척해 갔으니 말입니다. 청교도들이 봤을 때야 황야이지만 원주민들에게 아메리카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추장이 미국의 대추장(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글에는 '프런티어'의 숨겨진 진실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줍니다.
▲ 원주민들의 현재
기념품 가게에는 보호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이 관광객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 최용선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버려 놓은 것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랜드 캐년 동쪽 끝 'desert view' 전망대에서 원주민이 만든 기념품을 하나 구입했습니다. '꿈을 잡아주는 부적'이라는 뜻의 이 작은 기념품은 "잠자는 방 안에 걸어두면 미래에 제게 닥칠 위험한 것을 걸러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용했을 이 부적은, 그들의 꿈은 미처 잡아주지 못했나 봅니다.

이제 아메리카 원주민의 체취는 그랜드 캐년에 있는 박물관이나 기념품가게, 야생동물 보호구역처럼 연방정부에서 지정해 놓은 원주민(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도 정식명칭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되어 있습니다) 보호구역 내에만 만끽할 수 있는 현실이니 말입니다.

뒤집혀진 아메리카 역사

최근에는 미 연방정부가 1800년대 초반 로키산맥 너머 미지의 땅(지금의 서부 캘리포니아지역)을 탐험가에게 소개해준 원주민 여성을 2000년에 새로 만든 1달러 동전 뒷면에 새겨 넣기도 하고, 십 수 년 전부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 거주지에 카지노사업권을 줘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끔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흔적을 동전 속이나, 보호구역 내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속에서만 느끼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직도 미국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본다는 것은, '프런티어'에 숨겨진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황야의 땅을 개척했다'는 백인 시각의 역사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프런티어'에 숨겨진 침략의 역사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슴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의 현재진행형의 모습입니다. 황야를 개척하는 그 정신으로 자유주의와 그들만의 신념을 이식시키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또 다른 개척을 세계 곳곳에서 펼쳐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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