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은 석유 전쟁?

등록 2002.02.08 14:06수정 2002.02.09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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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해 인근은 중동에 버금가는 석유자원의 보고다. 확인된 매장량이 150억 배럴이고 카스피해 심해저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이 잠 자고 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우노칼 측에 따르면 확인된 천연가스 매장량만도 7조 입방미터에 달한다.

문제는 이 석유와 가스를 서방으로 실어나르는 것인데 중동처럼 항구에 유조선을 댈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송유관 건설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다. 지난 해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흑해와 터키를 경유해 지중해로 나가는 최단거리 노선 대신 굳이 먼 길을 돌아가는 제2의 노선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는 이 송유관이 러시아 영토를 통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지난 해 11월 26일 러시아 주도의 카스피해 송유관이 완공되어 하루 60만 배럴의 원유를 흑해의 노보로시스크 항으로 실어나르는 중이다.

하지만 알카에다 소탕을 명분으로 테러전쟁을 치르며 아프간을 장악한 미국은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어 보인다. 카자흐스탄의 석유를 러시아 대신 아프간을 경유해 실어 나르는 대안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쟁도 마무리 단계이고 얼마 있으면 텍사스 석유재벌 텍사코나 셰브론이 아프간 땅에 송유관 건설에 나섰다는 뉴스가 슬그머니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한국의 정유업체도 참여한 우노콜 컨소시움은 25억 달러를 투자해 카자흐스탄의 석유지대에서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경유하는 1670Km 길이의 송유관 건설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의 불안한 정정때문에 비현실적인 계획으로 보였지만 미국이 이 지역의 패권적 맹주로 자리잡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진 셈이다.

석유자원은 4~50년 후면 어차피 바닥이 나니 서둘러 대체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소리가 수십 년 전부터 계속돼 왔고 클린턴 정부 하에서는 풍력, 태양열 등 대체에너지 개발에도 열심이더니 석유재벌의 총아 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로 미국은 석유중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터진 것이 바로 '엔론게이트'다. 지난 해 전력파동 와중에 부시의 정치적 고향인 텍사스주 소재의 엔론사가 살인적인 전기값 폭리를 취하는 바람에 착취를 당해왔다고 여기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엔론사의 부패 스캔들에 특히 분개하고 있다.


산업시대 성장의 핵심동력이 석유였고 중동의 끝이 없는 분쟁도 알고 보면 석유확보라는 전략적 고려가 항상 개입되어 왔다. 아프간 전쟁이 송유관 확보 때문에 벌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만큼은 분명하다.

연초 부시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GM 등과 함께 연료전지 10개년 계획이란 것을 발표했는데 환경론자들, 특히 환경에 민감한 캘리포니아에서 분노의 목소리가 높았다. 연료전지가 실용화만 된다면 인류의 에너지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해줄 대안임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이 기술이 도대체 언제나 실현이 될지 GM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연료전지는 우주탐사선에나 쓰일 만큼 고가여서 경제성이 없는 상태다.


환경론자들은 당시 NPR라디오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당장 실용화가 가능한 에너지 절감대책이 있고 대체에너지기술 역시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기약도 없는 연료전지나 붙들고 있는 부시정부의 속셈은 결국 석유재벌의 수명을 늘려주려는 눈속임이 아니냐며 비판한 바 있다.

도요다의 프리어스나 혼다의 인사이트같은 하이브리드 차는 리터당 30킬로미터에 육박하는 엄청난 연비를 달성하고 있다. 석유재벌들의 오금이 저릴 만한 소식이다. 게다가 풍력발전이나 태양광 발전 역시 소재기술이 꾸준히 향상되면서 이제는 석유에 버금가는 경제성을 확보한 상태다.

바로 이런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대체에너지 수단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부시 정부가 언제 실현될지 기약이 없는 연료전지 타령이나 하는 것은 결국 석유업계를 측면 지원하기 위한 고단수 책략이라는 것이 환경론자들의 의심이다.

실제로 환경에 민감한 캘리포니아 주 정부 차원에서는 하이브리드 차 구입주민에게 보조금도 지원하고 태양전지판을 설치하는 주택소유자에게 파격적인 장기융자금도 제공하고 있지만 연방정부 차원의 획기적인 대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미국민은 부시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투표용지 사태로 실제로 대통령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석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걷어차 버린 셈이다. 환경문제에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지니고 있고 부통령 재임 시절 적극적인 환경정책을 펼쳐왔던 고어가 대통령이 됐다면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정세 그리고 한반도 분위기까지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인류가 이 지긋지긋한 석유의 굴레에서 벗어나 에너지 문제로 죽고 죽이는 처참한 꼴을 어서 종식시키기를 바란다. 알고 보면 석유는 수억년전에 죽은 고대 생물체의 사체다. 인류는 고대생물체의 시체나 뜯어먹은 하이에나 신세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jean

덧붙이는 글 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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