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입으로 훅 불어 끄듯이

등록 2002.02.09 11:02수정 2002.02.0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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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도로를 지나칠 때면 한강 덕택에 서울은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일몰의 강변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어둠은 대낮의 어느 곳엔가 자기 기운을 남몰래 비장해 두었다가는 때가 되면 마침내 위대한 힘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도시를 가득 채우던 생기는 서서히 사그라들다가 어느 순간 급속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이제 도시는 완연히 어둠의 신의 영토가 된다.

나는 이 풍경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황금빛 가신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저마다 '견고한 고독'을 형성하고 있는 여의도 빌딩들, 그들이 어울려 이루어내는 각진 어둠의 능선들, 머리를 풀어헤치고 어둠의 삼림욕에 몰입해 있는 나무들, 열지어 끝없이 운명처럼 저마다 가야 할 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차량들……. 그때 나는 이 어둠의 물상들의 하나가 되어 그들과 함께 위대한 몰락을 경영해 보는 것이다.


소설 쓰는 김형수 형이 한 말이 생각난다. 그때 그와 나를 포함한 일군의 무리들은 경기도 구리시로 나들이 갔었다. 저녁 먹고 술도 마셨는데 모두 몹시 피로해 있어서 그런지 죽는다는 것에 관한 얘기들이 나왔다. 그때 그가 조모님과 부친의 임종을 지켜 본 기억을 되살려냈다. 그에 의하면 죽는다는 것은 누군가 입으로 촛불을 훅 불어 꺼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죽음의 기운은 발끝 어딘가에서 생겨나 머리 끝까지 차오르는데, 그때 생의 기운은 알 수 없는 힘에 쫓겨 마치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당혹스럽게 꺼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죽는 이도 자기를 압도해오는 죽음의 기운을 자각하게 된다고 했다. 그 죽음의 순간을 죽어가는 이는 거대한 공포 속에서 맞이하게 된다는 것, 그 자신 죽음의 시간의 존재를 받아들이지만 그 임종의 순간을 떠올리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고민 끝에 언젠가부터 죽음의 두려움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그때 왜 나는 그런 과장을 범했을까. 비록 내 자신이 죽음을 견딜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생명체로서 내가 가진 근원적인 공포를 초월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생각한다. 생을 죽음으로부터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저렇게 열지어 끝없이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종국엔 어떤 형태로든 자기 생을 마감해야 할 한시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나는 살아 있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생각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야말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것이야말로 죽음의 위대성이다.


이제 설날 연휴가 지나면 봄 여름 가을 없는 정치의 계절이 찾아올 것 같다. 부시의 양식 없는 발언 행태를 따라 남북한 관계도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실상 만인 만국 공통의 덧없음 위에 얹혀 있음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난세를 따라 어지럽게 살아가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망각 없이 격류를 헤쳐나갈 대지혜가 필요한 때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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