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는?

<미국여행기 12> 국경마을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등록 2002.02.15 04:16수정 2002.02.15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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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와 티후아나.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미국의 멕시코도시(샌디에고)와 멕시코의 미국도시(파후아나)는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두 도시는 작년 우리 나라에도 개봉된 영화 '트래픽'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교통' '왕래'라는 뜻의 '트래픽'은 마약의 유통경로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는데, 영화 '트래픽'은 미국과 멕시코의 두 국경 도시가 지니고 있는 지리적 특수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멕시코 국경 티후아나는 마약을 미국으로 공급하는 이들의 활동무대다. 이 영화에서 티후아나는 타락한 사막도시다. 그리고 미국 국경 샌디에고는 티후아나에서 건너온 마약을 미국으로 공급하는 이들이 활동하는 무대다. 마약 거래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탐욕의 도시다. 영화 '트래픽'에서 이 두 도시는 마약의 수요와 공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마약의 공동체'다.


샌디에고, 아니 캘리포니아의 어제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샌디에고 등 도시의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캘리포니아는 스페인과 멕시코의 정취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곳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우엘바 항구를 떠나 '산타마리아호'에 몸을 싣고 아메리카에 발을 디딘 이후, 아메리카의 광활한 영토는 스페인의 것이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이 본격적으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된 것은 그로부터 2백 년이 훨씬 지난 1769년의 일이다. 지금의 캘리포니아 남서쪽 끝자락 샌디에고 지역에 최초의 카톨릭 교회인 '샌디에고 알카라 선교회(Mission San Diego de Alcala)'가 세워지고, 그 주위에 스페인 정착촌이 생기면서부터다. 샌디에고는 스페인 성인의 이름(Diego)을 따서 지은 것이다.

참고로 샌프란시스코는 카톨릭 성인 '프란시스코'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탐험가로 불려지는 스페인 정복자들과 함께 미개인들에 대한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동행했던 스페인 성직자들이 신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역의 이름을 정했는데, 그 지명들이 아직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남미 전통음악이 울려나는 'Old Town'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가 독립한 이후, 캘리포니아 지역은 멕시코 영토로 편입된다. 하지만 30년도 못돼 1846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멕시코가 패하고, '과들루프 피달고 조약'에 따라 캘리포니아는 지금의 '뉴멕시코' '텍사스'와 함께 미국의 영토로 넘어가게 된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났지만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카톨릭 교회와 스페인 왕정이 식민지 건설이라는 목표를 위해 함께 움직였던 역사의 결과로 스페인어 도시 지명과 거리이름들이 뿌리내려 이어지고 있다.

샌디에고 도심에서 북쪽으로 5km정도 올라온 위치에 Old Town이 자라잡고 있다. 이 곳은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 샌디에고가 처음 형성된 지역인데, 미국으로 편입되기 이전의 캘리포니아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역사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아니라,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의 모습이다.


이곳은 1968년 주립 역사공원으로 지정된 후, 1810년부터 1870년대까지의 옛 건물들이 복원되어 있다. 스페인에서 독립한 멕시코의 영토에서 미국의 31번째 주로 주인이 바뀌고, 서부개척이라는 이름으로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시가 이뤄지기까지의 시대를 보여주는 건물들이다.

캘리포니아가 멕시코 영토였던 시대 마지막 멕시코주지사의 집과 당시 샌디에고 풍습이 복원되어 있고, 그 시대를 나타내는 몇몇 상점들이 조성되어 있는 '미국판 민속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자르 델 문도(Bazzar del Mundo)라고 적혀있는 Old Town 입구 옆 중앙 정원에 들어서자, 그곳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남미의 전통악기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스페인 지배와 멕시코의 독립, 그리고 곧바로 미국의 서부정착시대가 맞물려 있던 시대가 혼란스러워서 일까? Old Town에서의 느낌은 짜 맞춰진 역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동물원에 들어가 있는 야생동물을 보면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만끽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곳에서의 느낌이 그랬다.

가전제품을 수출하고, 생활용품 사가는 사람들

역사에서 보여지듯 캘리포니아 특히 샌디에고 지역은 멕시코와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있어서도 국경을 주변으로,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국경선을 사이에 두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이 길을 통해 미국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 그 곳에 도착했을 때 순찰을 돌고 있는 경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들의 또 다른 임무는 멕시코에서 밀려드는 밀입국자들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연방 상무부 센서스국 산하 인구분석 통계팀(DAPE)의 2000년도 센서스 조사 결과, 미국내 전체 불법체류자수 870만여 명 가운데 50.7%가 라틴계로 나타났다. 밀입국을 하는 이들에게 미국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땅이고, 높은 보수를 받는 풍요의 나라다. 자신들의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와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해, 이들이 미국으로의 밀입국을 시도하는 곳이 샌디에고에서 시작해 텍사스까지 연결된 국경지대다.

그렇다고 단지 이 국경지역에서 '마약과 밀입국'이라는 음성거래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국경을 중심으로 미국의 야심에 찬 계획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실험 중에 있다. 티후아나 지역과 주변 도시들이 자유무역지구로 선정된 이후, 티후아나 주변에는 미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삼성, LG 등 국내 업체들의 수출 전진기지가 세워져 있다. 싼값의 인건비를 통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기업들도 티후아나에 많이 진출해 있다. 미국을, 미국인을 위한 도시 '티후아나'가 멕시코에 위치한 '미국도시'로 불리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닌 듯 싶었다.

멕시코 화폐인 '페소화'를 '달러'로 교환해주는 환전소를 국경지역 곳곳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각 가게마다 환율이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나 싼값에 달러를 사고 비싼 값에 페소화를 팔고 싶을 텐데, 좁은 공간에 많은 환전소가 있음에도 환율은 천차만별이라니. 돈의 가치도 주유소의 석유가격처럼 자율 경쟁시대인가? 아무튼 아직까지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샌디에고 국경부근 지역에는 생필품 가게가 성업 중이었다. 미국 땅이지만 그들의 손님은 자전거를 타고, 혹은 만원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멕시코 사람들이다. '99센트 마켓'으로 불리는 생필품을 파는 상점에는 멕시코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건너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울렛'이라는 유명의류 상설 할인매장에도 쇼핑을 나온 멕시코 인들이 주요 고객이다. 첨단 가전제품을 조립해 미국에 수출해도, 생활에 필요한 질 좋은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분수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멕시코 경제의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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