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알려드립니다

최종수 신부가 전하는 미국

등록 2002.02.17 20:47수정 2002.02.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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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캐나다에 가서 '동포 사목'을 하고 계시는 전주교구 최종수(윤호요셉) 신부님의 '사순 제1주일' 강론입니다. 저는 최종수 신부님과 개인적으로 비교적 자주 메일을 주고받고 있으며, 신부님은 제게 매번 주일 강론 원고를 보내 주시곤 합니다.


최근에 받은 '사순 제1주일' 강론 속에는 제게 매우 충격적인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미주 동포 사목의 어두운 실상, 미국인들의 패권적이고 야만적인 속성 따위를 실감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부시의 방한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는 미국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 그리고 그의 방한과 관련하는 여러 가지 사항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정확한 인식의 증대를 희구하는 마음으로 최종수 신부님의 강론 원고를 <오마이뉴스>에 올려봅니다.


가해 사순 1주 2. 2. 17
마태 4,1-11

찬미 예수!
지난주 북미주 사제 회의차 로스앤젤레스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정 중에 감동과 슬픔과 분노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미묘한 것인가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주일 강론을 준비하면서 일주일 내내 어디에 중심을 둘까 고민을 했습니다. 백 명 안팎의 신자들을 상대로 강론을 하는 하찮은 저도 강론을 준비하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예수님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을까? 그래, 오죽했으면 밤을 새우시면서 기도하셨을까?

이번 북미주 사제 피정 기간 중에 지워버리고 싶은 세 가지 사건과 영원히 새겨두고 싶은 기억 하나가 있습니다.

캐나다 공항에서 미국 비자 검사를 마치고 미국 경찰에게 출입국 카드를 제출하게 되었습니다. "This is father Choi, Korean Catholic Church priest"라고 말을 했을 때 미국 경찰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I am Roman Catholic priest"라고 말하자, 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I am Roman Catholic priest"라고 말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Catholic!"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시 하얀 로만 칼라를 손으로 가리키며 "I am Roman Catholic priest"라고 말하자, 벌레를 쳐다보는 눈빛으로 출입국 카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지금 인종 차별하는 거요. 당신도 나를 '악의 축'이라 생각하는 거요!" 목청이 터지도록 고함을 지르며 백인 경찰관에게 건네준 출입국 카드를 찢어버리고 미국행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목까지 차오른 분노를 가라앉히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한국에서 동포 사목을 나온 각 교구의 신부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공항에서의 분노를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나는 선후배 신부님과 처음 만나는 신부님들과의 토론과 술자리는 그 동안 이방인으로서의 피로를 씻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대구교구 선배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 큰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 동포 사목을 온 지 2개월이 채 안 된 선배 신부님이었습니다.

미국 본당 사제관에서 생활하면서 일주일에 두 번 식사를 함께 하고, 토요일과 주일에 두 번 성당을 빌려 동포들과 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한 달에 2700달러의 엄청난 돈을 미국 성당에 지불하는 것이었습니다. 미화 400달러 정도밖에 내지 않는 저희 본당을 생각하니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돈으로 환산을 하니 더 더욱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미국 성당은 한국 동포들을 상대로 렌트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미국은 돈이면 환장하는 나라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연이어 듣게 된 사건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물 수 없는 입에서 쌍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구교구 신부님과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미국 본당 신부가 주종 관계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미국 성당의 보좌 신부로 사제관에 상주해야 하고, 언제든지 본당 신부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미국 성당 교리교사 스태프의 한 사람이고, 한인들의 사목상 필요한 사업은 사전에 협의해야 하고, 미국 본당 신부의 결재를 맡고 재정 지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계약이 파기된다."

식민지 시대의 교회도 아닌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계약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가주 사제들이 회의를 통해 강력한 항의를 제기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미주 한인 사제 회의가 있기 이틀 전에 미국 본당 신부가 대구교구 신부님을 부르더니 지난번 계약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통보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높고 낮음도 없는 그리스도 제자직, 소속이 다르고 국적이 다른 신부에게 보좌 신부만도 못한, 교리교사라고 하더라도 그런 주종 관계를 요구할 수 없는데, 몰상식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지 미국 성당의 주임 신부가 청소년을 담당하는 보좌 신부에게 청소년 분야에 대해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는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 신부는 미국 신부에게 이러한 주종 관계의 계약을 종용받아야 한단 말인가? 이것이 거룩하고 공번되고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보편교회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런데 정말 저를 분노보다 더 슬프게 한 것은 미국 경찰관도 미국 본당 신부의 황당한 계약 종용의 인종 차별이 아니었습니다. 북미주 사제 회의를 마치고 잠시 수녀원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를 공항으로 배웅할 수녀원 밴 자동차에 공으로 만든 성조기가 안테나에 꽂혀 있었습니다. 저를 배웅할 신자가 타고 온 차에도 성조기가 걸려 있었습니다.

"수녀님, 모국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603개의 시민 단체가 성명서를 내고 항의 집회를 하고 미 대사관 앞이 난리인데, 부시의 방한이 100억 달러가 넘는 생산이 중단된, 고물 전투기라고 할 수 있는 F-15 보잉사 전투기를 강매하기 위한 강경 발언이라고 난린데, 왜 성조기를 달고 다니지요?"

"신부님, 부시가 '전쟁의 해'를 선포하고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한 것에 대해 미국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요. 진보적인 단체와 소수의 학자들이 개미 소리 정도로 반응을 보일 뿐이에요. 미국 사람들 95%가 미국이 얼마나 '악의 축'인지 몰라요.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9. 11테러 이후 소수 민족인 우리 한인들이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한국 사람들이 성조기를 더 많이 달고 다녀요."

"수녀님, 아마 지난 L.A 폭동 때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은 피해를 당했기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몰라요. 그런데 사실 백인들의 인종 차별로 야기된 폭동과 방화를 경찰과 연방정부가 방관하다시피했고, 교묘한 언론 플레이로 한국 동포들에게 화살을 돌리게 했었잖아요.

또한 수녀님,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전쟁을 선포한 것은 바로 남한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논리지요. 미국이 북한에 폐기 처분할 포탄 한 발이라도 쏜다면 북한이 가만히 있겠어요. 북한은 모든 기지와 무기가 지하 벙커에 있는데 미국의 융탄 폭격이라고 하더라도 북한의 화력을 무기력하게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모든 신무기를 동원해서 아프가니스탄처럼 초토화시킨다면 북한이야말로 이판사판으로 나가겠지요. 동족을 향해 미사일 발사는 하지 않더라도 미군들이 주둔한 용산, 파주, 군산 등에 폭격을 하겠지요. 그러면 결국 남한도 북한도 초토화가 되겠지요. 미국 본토까지는 사정 거리에 들지 않겠지만 하와이 일본도 불바다가 되겠지요. 그러면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중국과 소련은 북한에 전쟁이 발발하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럼 미국이 그런 전쟁을 안 하겠네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는 소련이나 중국이 자동으로 개입된다는 조약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된 것이네요?"

"그래요. 북한을 쉽사리 공격할 수 없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미국 사람들에게만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소수 5%에게 독점된 자본주의이지요. 즉, 미국은 소수 몇 나라 강대국들을 제외한 다수의 나라에 제국자본주의입니다. 말하자면 돈이라면 악도 선이고 전쟁도 평화입니다.

북한을 응징하는 것이 미국 자본가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가 전쟁의 관건이지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북한을 응징하는 전쟁이 자본가들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엿장수처럼 자기 마음대로 가위를 칠 수 없는 거지요.

현재 남한에 투자된 외국 자본이 2,000억 달러가 넘고, 미국 자본이 6-70%이고 유럽과 일본 자본이 3-40%인데 어떻게 전쟁을 일으키겠어요. 자본이라면 환장하는 미국 자본가들이 가만히 두겠어요.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확률은 1%이지만 지금 이성을 잃은 부시라면, 이에 동조하는 미국 사람들이라면 그 1%가 100%가 될 수도 있겠지요. 미친개를 몽둥이로 잡지 않는 한 누굴 물지 아무도 알 수 없겠지요. 이번 방한 때 모국에서 전국민적인 강력한 항의가 있어야 해요. 김대중 대통령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대통령답게 당당하게 정상 회담에 임해야 합니다."

"신부님,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이라며 선전포고성 발언을 했다지만, 신부님 말씀대로 무기 장수인 부시라고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엿장수처럼 가위를 칠 수 없겠네요. 그런데 왜 그런 악마적인 발언을 했지요?"

"그것은 너무도 단순하지요.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보다 엄청난 게이트에 휘말려 정권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게이트의 해결책일 수는 없지만 유일한 돌파구는 햇볕 정책과 남북 정상회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햇볕 정책을 뒤흔드는 초긴장 상태를 만들어야지요. 그래야 생산이 중단된, 고물 전투기라고 할 수 있는 F-15 전투기 100대, 자그마치 100억 달러의 무기 수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번 피정 중에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씁쓸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두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캘리포니아는 멕시코 땅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멕시코 사람들이 많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인들은 대부분 미국성당을 빌려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멕시코 신자들이 많은 본당은 '재의 수요일'에 본당 신부 보좌 신부가 하루종일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를 얹기 위해 성당 밖에까지 꼬불꼬불 줄을 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많은 멕시코 엄마들은 평소에도 줄줄이 아이들을 성당에 데리고 오지만 재의 수요일 날은 꼭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에 재를 얹지 않으면 일년 내내 재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마에 재를 얻는 예식이 복을 받기 위한 기복적인 신심 행위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재를 얹지 않으면 재수가 없다고 할 정도로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멕시코 사람들의 신앙심의 깊이를 볼 수 있는 단적인 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재를 얻기 위해 자녀들을 모두 데리고 서양 성당에 갔는지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기복적이라고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재의 수요일'에 하지 못한 '재의 예식'을 할 것입니다. 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재는 태워버림, 죽음을 통한 회개와 정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태움과 죽음이 회개와 정화로 승화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바로 전쟁은 모든 것을 재로 만들지만 회개나 정화로 승화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쟁은 악의 잔치, 악마들의 축제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머리에 재를 얹으며 회개해야 할 것이 단지 나의 삶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폭격에 숨져간 무고한 어린이의 죽음이 내 자식의 죽음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머리에 재를 얻는 것은 단지 더러운 재로 머리를 더럽히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악과 선, 전쟁과 평화는 동전의 앞뒷면일 수 있습니다. 선과 평화가 드러날 수 있도록 악과 전쟁을 뒤집는 행동이 필요한 것입니다. '악의 축'은 우리가 악을 악으로 고발하지 않는 우리들의 행동이 없는 양심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사람아, 하느님은 평화이시니 하느님의 평화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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