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기 우울의 시대인가

노인복지 현장에서 내가 만난 노인들 (1)

등록 2002.03.16 16:24수정 2002.03.1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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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초조해 지고 하찮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난다. 사소한 신체 변화에도 신경이 쓰이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또는 불면증·무기력증·식욕부진·고독감 등을 느끼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면 '우울증'에 걸렸는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라는 신문 기사를 가지고 어르신들과 이야기 교실 시간에 토론을 했다.


이 토론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60세에서 90세 사이의 연령대로, 뇌졸중 등으로 한쪽 신체 사용이 불편하거나 경증 치매로 자신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음을 인지하는 어르신 그룹이다.

노년 우울증을 자가진단 할 수 있는 10가지 앙케이트 문항을 풀면서 의견 교환을 했는데 첫 번째 질문이 '자신이 무기력하다고 여겨지는 때가 종종 있다'이다.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라는 질문을 하자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할아버지 한 분이 천천히 손을 들었다. 평소 무표정하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던 아버님의 의사 표시였기에 더 반가워서 이유를 여쭤봤더니 "이 자리에서 글을 읽고 싶은데 잘 보이지 않아"라고 대답하셨다. 하루 종일 꾸벅 꾸벅 졸기만 하는 줄 알았던 할아버님의 욕구 표현이었다.

무기력하지 않다라고 대답한 오른쪽 편마비 아버님은 자신있는 목소리로 "나는 꿈이 있기 때문에 무력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신다. 과거 선장이었던 아버님은 배를 선박하도록 도와주는 파일럿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젊은이의 패기로 말하는 아버님의 눈빛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인의 눈빛이 아니었다.

'밖에 나가 새로운 일을 하는 게 두렵다'라는 질문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인다'에 "예"라고 답한 어르신들은 주로 신체가 부자유하여 마음대로 활동 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신체의 부자유와 나이듦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지금 생활이 불만족스럽다'라는 질문에 항상 조용하게 걸어다니시는 경증 치매 할아버지가 손을 들더니 "나는 지금도 충분히 단순한 노동은 할 수 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을 시켜주지 않아"라고 하셨다. 역할의 상실은 젊은이에게도 나이든 사람에게도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같이 젊은이도 취직하기 힘든 이 때 나이든 사람의 일거리, 특히 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욕구는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기억력이 계속 나빠진다'라는 질문에 경증 치매 어르신들이 손을 많이 들었다. 어떤 때 그런 것을 느끼시는지 묻자 딱히 대답은 못하지만 본인들이 기억을 잃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음이 확실했다.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치매를 두고 "본인에게는 천국, 가족에게는 지옥"이라는 말도 있지만, 초기 치매일 경우 아무도 그들에게 치매임을 말하지 않지만 기억이 상실되는 불안감을 그들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인 '살아 있어도 별 수 없다고 의기소침해질 때가 잦다라고 생각되는 분"하고 물어보니 지금까지 힘차게 긍정적인 대답만 하던 왼쪽 편마비 할아버지가 손을 번쩍 드셨다. "딸이 손주 둘을 우리 마누라한테 맡기고 직장 다니는데, 아이들이 울어도 나는 안아주지를 못해"하시며 밝은 미소로 시작하셨던 대답 끝에 울음을 터트리셨다. 순간 다들 비슷한 마음들이라 숙연해졌다가 한 어르신이 "그래도 여기 나와서는 활개치잖아"라는 말에 웃음으로 바뀌었다.


1시간 동안 어르신들과 나눈 이야기였지만 그 어느 시간보다 어르신들 마음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노인은 신체적·심리적·정서적으로 젊은이보다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이유를 많이 가지고 있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우울증이 노인 정신질환의 약 25%를 차지한다고 한다.

어르신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우리들의 인생 선배로 당당한 자리 매김을 할 때 노인 우울증의 기세는 좀 수그러 들지 않을까? 판도라가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 맨 마지막에 희망을 보았듯이 난 오늘 그 희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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