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집, 그을음 냄새의 기억들

<전원일기 2>

등록 2002.04.03 20:32수정 2002.04.0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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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시골을 찾아 나선 것도 어찌 보면 내 유년의 기억이 부르는 소리에 따른 듯합니다. 무엇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인지, 전국민의 4분의 1이 한 도시에 모여 사는 기이한 나라에서, 한번은 돌아보고 싶은 기억입니다.


나는 대학을 나올 때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내게 시골생활이란 방학 때 들르던 할아버님 댁이 전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경기도 여주는 상당한 오지였지요. 아버님과 시골에 내려갈 때면 수려선 협궤열차나, 동대문 운동장 앞에서 타던 막차 버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컴컴한 창밖으로 끝없이 스쳐 지나가는 포플러나 플라타나스가 지겹게 이어지고, 망사줄 같은 데 일렬로 넣은 사과나 찐달걀도 다 먹고 나면, 비포장 신작로를 털털거리던 버스는 한바탕 지독한 차멀미를 겪게 하고서야 차부에 닿았지요.

동차라 불리던 두량 짜리 협궤열차를 타고 갈 때도 있었는데, 아버님은 으레 차삯을 줄이기 위해, 내게 몇 번이고 학교 안다닌다고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 거짓말을 무사히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바짝 긴장을 하여야 했습니다. 막상 검표원이 다가와 이빨 뽑는 기계 같은 걸 - 열차표 천공기 - 들고 내게 몇 살이냐고 물을 때면 나는 벌벌거리며 말을 더듬었지만, 유난히 나이보다 큰 키에 검표원은 고개를 자꾸 갸웃거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내가 시골로 내려와 처음 만나는 인상은 언제나 칠흑같은 밤이었습니다. 그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신작로를 어머님이 어른들 가져다 주라고 이리저리 꾸려준 고등어 자반이며, 양말이며 하는 것들을 행여 흘릴까 손에 쥐가 나도록 쥐고 걷노라면, 멀리서 깜박이는 불빛이 보이는데, 대개는 성황당 부근인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는 "성님이세유?" 하는 작은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나는 전화도 없던 시절에 대략 언제쯤 내려가리라는 짐작으로 저녁이면 으레 차시간에 맞춰 배웅을 나와 막차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며칠을 헛걸음을 했을 숙부의 고생이 이제야 가슴에 새롭게 느껴집니다.

반갑게 맞아주는 숙부의 손을 잡고, 한참을 또 걷노라면 개 짖는 소리와 웅성거리며, 달려나오는 할아버님댁 가족들. 겨울이라도 되면 허겁지겁 달려나와 내 언 귀부터 푸근한 손으로 부벼주던 할머님의 손길. 그리고 토굴처럼 어두운 방으로 들어서면 무엇보다 다가오던 그 매캐하게 다가오던 그을음 냄새와 메주 뜨는 냄새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저녁 밥 먹을 때만 밝혀 놓던 대한등이라는 남포불을 밝힌 방안에는 하나같이 정겨운 가족들이 얼굴에 따스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반겨 주었지요.

무엇보다 시골을 느끼는 것은 창호지 문이 뿌옇게 밝아지면서 들려오던 참새소리입니다. 상쾌한 시골의 첫날을 기뻐하며 밖으로 달려나가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소죽을 먹던 외양간의 소가 그 큼지막하고 순하기만 하던 눈을 껌벅이며 목에 매단 소방울을 절렁거렸지요.


뒷동산에 있던 샘물로 가면 얼음보다 차가운 물에 낯을 씻고, 무슨 가루같은 치분이란 걸 손가락에 묻혀 이를 닦고(그나마 서울 식구들 위해 모처럼 내놓은 것이랍니다), 겻가루로 만든 비누로 얼굴을 닦습니다.

마당에는 꽤 오래된 석류나무가 있었는데, 종처럼 생긴 석류꽃들이 마당 가득 떨어져 있고, 입이 쩍 벌어진 채 홍옥처럼 붉은 열매를 맺은 석류는 다락에 보관되었습니다.


설이 지나고 나면 나는 베개를 받쳐 놓고, 그 컴컴한 다락을 뒤지곤 했는데, 그곳에는 곶감이나 윗부분만 도려낸 사과, 송화가루로 만든 다식들이 있었지요. 나는 그 다락에서 풍기던 달작지근한 냄새를 또한 기억합니다.

시골에서의 겨울은 대개 아침, 저녁만 불을 때지요. 낮에 집에서 연기가 오를 때면 무언가 특별한 날입니다. 손님을 맞는 특식을 차린다거나, 아니면 농한기에 어른들이 얼러 마을의 오래된 웅덩이를 퍼서 미꾸라지를 잡아 온 날입니다.

얼어붙은 웅덩이를 도끼로 깨고, 줄을 매단 통으로 물을 퍼내면 진득거리는 진흙 속에는 배가 노란 미꾸라지들이 얼음판으로 던져졌지요. 그걸 주워 담는 게 내 몫이었는데, 참 재미있고 신나는 일이었지요. 그걸 잡아다 마당에 솥을 걸고 장작불에 끓이는데 요즘과 달리 저희 시골에서는 고추장에 끓이고 달걀을 풀더군요. 나는 그 매큼하면서도 후추냄새가 강한 그 추어탕 맛을 또한 기억합니다.

봄은 참 조용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멀리서 뻐꾸기 소리만 나른히 들려오고 볕 바른 울타리 밑에 파릇한 미나리들이 돋아날 때면 노간주 울타리 밑에서 햇빛에 반짝이던 사금파리 조각들과 마루밑에서 볕을 쪼이는 강아지,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뒷동산 솔밭에서 들려오던 솨아솨아 하던 솔바람 소리. 그리고 그때마다 뽀얗게 퍼져 나오던 송홧가루들과 아지랑이가 가물거리는 산 능선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장날이면 모처럼 한가롭던 신작로에 흰 두루마기에 중절모를 쓴 어른들이 소를 끌고 가거나, 석유를 담을 막소주 댓병들을 전선줄로 엮어 만든 장바구니에 담은 채 으레 우리 집에 들르곤 했는데, 길가에 자리잡았던 할아버님댁은 그런 손님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할아버님께 불려가 그분들께 절을 해야 했는데, 이름을 물을 때마다 나는 할아버님이 몇 번이고 이른대로 <전주 이씨 영응대군파>라는 소개를 해야 했지요. 나는 그때마다 장손이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그게 무언지 그때는 알지도 못했지요.

할아버님 댁은 초가 치고는 참 규모가 컸는데, 나는 민속촌에서도 그런 큰 규모의 초가를 본 적이 없습니다. 경복궁 궁궐의 보석처럼 상석만한 돌들을 세켜쯤 쌓고, 돌계단을 너댓개 쯤 오르면 사람이 오고다닐 수 있는 통로를 두고, 댓돌을 딛고 대청마루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마당에서 보자면 아마 어른 키로 한두 길은 될 높이였지요. 뒷곁에는 집을 둘러싸고 이어진 툇마루 같은 게 있는데, 그 밑에는 옻칠을 한 제기나 사발들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가까이 살던 친척들도 서울로 떠나고나자 혼자 남게 된 숙부께서는 그 집을 형사를 오래했다는 읍내 사람에게 팔고 안마을로 들어갔지요. 내가 지금도 안타까와하는 것은 적어도 내 유년의 기억과 집안 어른들의 모든 추억이 깃든 그 집을 남의 손에 넘기는 일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며, 나 또한 도심의 현란한 불빛에 취해 지내느라 시골의 일 같은 건 까맣게 잊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무관심 속에 외양간은 사라지고, 그 맑은 소방울 소리도 이제 들을 수가 없고, 백여년을 넘었을 법한 아름드리 석류나무도 베어져 땅에 묻혀 버리고, 초가의 댓돌들도 함부로 포크레인에 밀려 어딘가로 치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라진 것은 그런 외형적인 사물들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던 매캐한 그을음 냄새와 그 희미한 등불 아래 환하게 웃음짓던 친지들과 노간주나무 너머 마실 다니던 이들의 마음마저 사라져 갔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나는 그곳을 별로 찾지 않았고, 이따금 성묘 때 들러도 더 이상 내 마음에서 아무런 감흥도 되살아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묻혀 버린 기억들입니다.

이제 어줍잖은 시골살이라고 찾아든 물골에서, 나는 어쩌면 자꾸 희미해져가는 내 유년의 후각들, 그 그을음 냄새나는 기억들을 되살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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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면 광대울에서, 텃밭을 일구며 틈이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http://sig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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