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미화 심사가 가까워지자, 교무실이 온통 화보와 하드보드지, 색상지로 난리다. 비는 시간마다 담임들이 화보를 오려 붙이고 비닐을 씌우고, 컴퓨터로 찍어낸 시간표와 학급회의 조직표를 만드느라 마치 시장터 같다.
"환경 미화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거예요. 자기들이 생활할 공간을 자신이 꾸며보자는 것이 환경미화의 목적인데 왜 선생들이 더 난린지 몰라."
박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학교에서 제공한 색상지와 하드보드지, 기타 몇 가지 도구들을 학급 임원에게 주고 알아서 환경미화를 해보라고 했단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생들은 직접 나서서 환경미화에 힘쓴다.
"심사는 심사니까 기왕이면 일등 하는 게 좋잖아요."
그렇게 자기 변명까지 하면서. 몇몇 학교에서는 환경미화 심사를 없애고, 반마다 알아서 환경 구성을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지만, 우리 학교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부장과 비담임들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항목별 심사를 하고, 잘 한 학급을 학년별로 등수를 매겨 시상한다. 상품이라야 겨우 학생 한 명당 공책 한 권이지만, 상품이 문제가 아니라 교사들끼리 환경미화 시상에 대한 경쟁의식이 생겨 더 열을 올린다.
어떤 학급은 교실 뒤에 수십 개의 화분을 갖다 놓기도 한다. 그것도 영산홍이나 군자란 같은 커다란 화분들이다. 그런 교실에 들어가면 교실이 화원 같다. 삭막하기만 한 교실에 풀과 나무들이 가득하니 보기에는 좋다. 물론 저 화분들 모두가 학부모 주머니를 통해 교실 뒤에 자리 잡게 되었겠지만 말이다.
퇴근 시간이 가까운데, 건너편 이 선생은 집에 갈 생각도 않고 환경미화에 정신이 없다. 보아하니 다른 것들은 다 완성이 되었는데, 급훈이 문젠가보다. 기왕이면 붓글씨로 멋지게 써 달고 싶은데, 아무래도 붓글씨에는 자신이 없나보다.
아침 조회시간, 교무부장인 말뚝이가 사회를 보면서 자신만만하게 한 마디 했었다.
"급훈이나 교훈을 쓰기 힘든 선생님은 제게 가져오십시오. 못쓰는 글씨지만 제가 써드리겠습니다."
온갖 재주는 다 가지고 있는 그는, 붓글씨 또한 웬만큼 쓴다는 소문이다. 그 좋은 재주를 올바른 데 쓰면 좀 좋을까 하는 생각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올랐다.
이 선생, 아직 퇴근 전인 말뚝이에게 급훈을 쓸 종이를 들고 다가간다.
"부장님, 우리 반 급훈 좀 써주실래요?"
말뚝이 그 말을 듣고 반색을 한다.
"그러지요. 허 또 이 명필을 한 번 자랑해 봐?"
말뚝이, 책상 서랍에서 붓과 먹물을 꺼내더니 이 선생에게 묻는다.
"급훈이 뭡니까?"
"더불어 사는 우리입니다."
"더불어 사는 우리라, 거 좋군. 자, 그럼 써 볼까."
그러더니 말뚝이는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자신만만하게 써내려간다. 그런데 말뚝이가 쓰는 글씨를 보던 이 선생이 뭐라고 말은 못하고 안절부절 한다.
그런 이 선생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뚝이는 금방 다 쓰고 붓을 내려놓으며 한 마디 한다.
"더불어 사는 우리, 다 됐습니다. 잘 거세요."
그 말에 이 선생, 더 대꾸도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떡 인사를 하며 제 자리도 돌아간다.
내가 건네다 보니, 이 선생이 슬쩍 말뚝이가 쓴 급훈을 들어 보인다. 거기에는 <더부러 사는 우리>라고 써있다. 나도 그만 킥킥 웃고 만다. 아마도 말뚝이는 요즘 유행하는 더부러라는 과자를 생각했나보다.
다음날 오후 환경미화 심사가 끝나고, 말뚝이 투덜대며 교무실로 들어선다.
"써달래서 기껏 써줬으면 달아야 될 거 아냐. 써달라고 해놓고 달지도 않는 심보는 뭐야. 바꿔 단 글씨가 더 엉망이더구만."
아마도 이 선생이 어제의 맞춤법 틀린 급훈 대신 다른 것을 달았나보다.
어쨌거나 환경미화 심사가 끝나고, 화분이 많은 반과 부장들 마음에 드는 담임 반 몇이 등수에 드는 것으로 소란하고 혼잡한 환경미화 심사 주간이 끝난다. 어떤 선생은 귀찮으니까 아예 커다란 액자만 몇 개 해 달았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르고, 어떤 학교 선생은 학교를 옮길 때마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환경미화 판넬을 가지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선생들 사이에 떠돈다.
그리고 몇 주, 일 등을 한 반의 그 수많은 화분들이 하나 둘 시들어 간다. 영산홍은 잎이 비실비실 말라 목이 마르다고 아우성이고, 군자란은 아직은 견딜 만 하지만, 조금만 더 물이 없으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잎을 늘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이다. 어떤 화분은 벌써 장난스러운 아이들의 발길에 채여 박살이 나 뿌리가 허옇게 드러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미 시상은 끝났고, 게시판의 환경미화 판넬들은 비닐이 벗겨지고, 화보가 떨어져나간 채 뒹군다. 잠시의 심사를 위해 자리를 잡았던 형식적인 환경미화는 그렇게 화분들의 아우성과 판넬들의 상처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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