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세상을 알고 있었다

<참된 세상 꿈꾸기> 연기문학회의 조촐하고 정겨운 행사

등록 2002.04.19 04:57수정 2002.04.1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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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오후에는 연기군의 길이가 십 리에 이른다는 고복저수지 근처의 한 농장에서 두세 시간 정도 머물렀습니다. 고향 연기 땅을 지키고 사는 장시종 시인의 농장에서 있은 <충남소설가협회> 회원 이길환 작가의 첫 작품집 (장편소설 「아르마딜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 이길환 작가에게 '기념패'를 주고 축사를 했지요.


이른바 '중앙문단'과 별 인연이 없어 아직 한 번도 조명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리고 순수문학의 위기 현상이 고조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도 문학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작가로서의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마흔의 나이에 첫 저서를 갖게 된 이길환 작가에게 진심으로 찬사와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그의 착한 성품과 작가로서의 성실성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실직의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그를 뜨겁게 위로하며 격려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책인 장편소설 '아르마딜로'가 좋은 성과를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348쪽의 책으로 꾸며진 장편소설 '아르마딜로'는 작가가 3년간의 산고 끝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과거와 현재가 정교하게 교차하며 미묘한 인연의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고, 이별, 절망, 슬픔, 사랑 등의 고뇌가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이 다가와 절절하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 소설이지요.

너무 사람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 탓에 건강을 다쳐 얼마 전 병원에 입원하여 동맥 수술까지 받았다는 장시종 시인은 오늘같이 좋은 날은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며, 누구보다도 즐거워하는 기색이었습니다. 그의 농장 마당 한 옆에는 몇 년 전 몽골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 가져왔다는 몽골 유목민 텐트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는 그 안에서 숙식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몽골의 드넓은 초원 풍경을 떠올리곤 하면서….

이길환 작가의 첫 장편소설 '아르마딜로'와 함께 현재 전의초등학교 교장이신 김동훈 님의 동시집 '반딧불 동네'의 출판기념회를 겸하고 있는 <연기문학회>의 이 조촐한 행사에는 30여 명의 회원들과 친지들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연기문학회 현 회장인 최광식 작가, 대전에서 <문경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강신용 시인, 조치원의 김일호 시인 등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나는 특히 동시집 '반딧불 동네'를 펴내신 김동훈 님의 얼굴을 자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저렇게 선량하게 생긴 얼굴이 또 있을까 싶으리만큼 그는 참으로 온화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긴 김일호 시인이나 최광식 작가 같은 이도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화 한번 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김동훈 님의 동시집 '반딧불 동네'의 그 표제로부터 더럭 정다운 느낌도 얻고 있었습니다. '반딧불'은 내가 그리워하고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내가 순수와 진실의 대명사로 파악하고 있는 자연 사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농촌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때로는 막막하게도 느껴지는 그리움의 대상이기에, 나는 스스로 늘 반딧불이 되고자 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작고 미약하되, 온 힘을 다해 진실과 순수와 옮음을 추구하고자….


기념패 전달과 축사 다음으로 김동훈 시인과 이길환 작가의 인사말이 있은 후 참석자들은 모두 넓게 깔아놓은 마당의 멍석 위에 둘러앉았습니다. 마당 한쪽에 마련된 화덕 위에서는 계속 돼지고기가 구워지고 있었고, 모두의 머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봄 햇살 속에서 간간이 미풍이 살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마당에 떨어지는 벚꽃 잎들이 좋은지 바람은 때때로 철없는 강아지처럼 땅바닥을 뒹굴며 꽃잎들을 멍석 쪽으로 보내 주기도 하였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정겨워지는 풍경이었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그저 곰살궂은 자연의 정취 속에서 나긋나긋 가벼운 덕담이나 나누고 싶었습니다. 동인들의 작품집 출간을 축하해 주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 지역에서 알아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자신의 생각들을 알뜰히 글로 갈무리하며 정신의 골을 좀더 깊고 명료하게 가다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순량한 표정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한없이 즐겁고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고 보니 오늘의 현실 상황에 대한 담론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 꽤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요즘의 내 동정을 얘기하고 나니, 거의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활용하며 산다는 연기문학회장 최광식 작가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조치원읍에서 <양지서점>을 오래 운영하면서 등단 형식을 탐내지 않고 아마추어 작가로 머물면서도 꾸준히 성실하게 작품을 써서 지방문학지에 발표하고 있는 그는 중견 사회인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예리하고도 정확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일보의 본질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자신의 서점에서 가장 많은 책이 팔린 소설가 이문열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과 관련하여 '조·중·동' 족벌 언론들이 최근에 보인 '광기'의 속내를 훤히 알고 있었고, 그리하여 그것을 회원들에게 재미있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무분별한 광기 발휘에도 불구하고 전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에 족벌 언론들이 당황하고 있는 속내까지….

또 그는 인터넷 언론 매체들의 영향력을 설명하면서 세상의 변화는 인터넷과 함께 시작되었다는 말도 했습니다. 지금도 '조·중·동' 족벌 신문을 보는 회원들이 있다면 당장 구독을 끊고, 족벌 신문들을 보던 그 시간만큼 인터넷 공간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유익하다는 말을 해서 여러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 작가에다가 수십 년 구독자였던 나도 진작에 동아일보를 끊었음을 말하면서 나는 동아일보에 대한 연민 속에서도 마음이 더없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6시 30분쯤 그들의 정다운 배웅 속에서 먼저 길을 따나면서 나는 마음이 한없이 가볍고 안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기문학회장 최광식 작가의 '중심'이 더없이 미덥게 느껴졌습니다. 지방의 한 작은 문학단체지만, 연기문학회에 우리 시대의 큰 희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깊이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지난주 토요일(4월 13일) 오후 연기군 땅에 몸을 놓고 있었던 두세 시간은 내게 참으로 소중한,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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