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제수씨가 운전면허를 따던 날

등록 2002.04.20 06:14수정 2002.04.2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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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새벽의 '도로주행시험'을 끝으로 드디어 내 아내와 제수 씨가 자동차 운전 면허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기쁩니다. 두 여자가 도로주행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나는 힘껏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정말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합격 판정에 함박 기쁜 웃음을 짓고 차에서 내리는, 어린아이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인 두 여자에게 악수를 해주고 아프지 않을 만큼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아내와 제수 씨가 자동차 운전 면허를 딴 것을 나는 우리 가족의 일대 경사로 봅니다. 정말 우리 가족 모두의 감격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표현이 결코 과하거나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눈물겨운(?) 사연이 거기에는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일찍부터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싶어했지만, 우리 형편으로서는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의 '애용어'가 되어버린 '언걸먹다(남을 도와주다가 피해를 보다)'라는 말의 뜻이 가혹하게 실체화되어 버린 현실 속에서 참으로 어렵게 쪼들리며 살수밖에 없었던 까닭이었지요.

자신이 백묵가루 마시며 버는 월급으로 옷 한 벌 사 입어보지 못하고, 동료 교사들이 속속 자동차운전학원에 다니고 운전 면허를 취득하는 것을 보면서 아내는 속절없이 자동차 운전 꿈을 오래 접고 살아야 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도 컸습니다. 거의 무명에 가까운 삼류 작가의 알량한 고료 수입, 지방신문 연재소설 월정 고료까지 다 털어서 매월 수백 만원씩 빚잔치를 하며 수년을 살다보니, 아내를 운전학원에 보내주는 일은 희망 목록에도 넣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지요. 그 바람에 아내의 운전사 노릇은 충실히 했지 싶습니다.


그런데 역시 세월이 약인 듯싶습니다. 1억 수천 만원의 빚을 갚는 사이에 어언 세월이 흘러 나는 이제 반백의 길에 들어섰고, 아내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 세월 덕에 땅 속 굼벵이 기어 나오듯, 마침내 언걸먹은 빚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3백 수십 만원의 목돈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고로 지역의 인연지기들이 모여 만든 '상조회(喪助會)'에 참여를 했지요. 그리고 매월 3만원(상이 난 달은 5만원)씩 내왔는데, 내 노모께서 지난해 가을 대장암 수술을 받으신 연유로 내가 뒤늦게 '생재급'을 타게 되었답니다.


나는 상조회에서 3백 수십만원의 생재급을 타는 순간 맨 먼저 아내와 제수 씨의 자동차 운전 면허 취득을 생각했습니다. 우선 그 돈에서 1백만 원을 뚝떼어 내가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태안문학회>의 출판사 누적 부채를 말끔히 해결했지요. 그리고 아내와 제수 씨를 자동차 운전학원으로 데리고 가서 등록을 시키고 두 사람의 일차 등록금(학과 교육비와 기능교육비 및 보험료) 83만8000원을 기분좋게 척 냈지요.

제수 씨도 함께 내 돈으로 운전을 배우게 한 것은 형제들 중 맏이로서의 구실을 좀더 잘하려는 것이기도 하고, 동생의 어려운 처지를 돌보아주려는 것이기도 하지요. 동생이 자기 아내의 운전 면허 따위는 아예 생각조차 않는 실정이기도 해서….

동생은 자격증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용접 기술자지만 '일용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리함과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때는 일당이 15만원까지 간 적이 있지만, IMF 시절에는 무척 어려움을 겪었고, 지금은 일당이 12만원 선인 것 같습니다.

동생은 열심히 일했고, 고생해서 버는 돈을 알뜰히 모았지만, 동생도 그만 언걸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집이 법원 경매로 넘어간 상황에서 자신의 집을 두 번 사는 곤욕도 치르는 가운데 5천 수백만원을 날리고 말았지요. 동생은 그 돈을 만회해볼 요량으로 주식에도 손을 대었다가 손해만 보고 마음 고생만 실컷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제수 씨의 마음 고생 또한 여간이 아니었답니다.

원래부터 워낙 가진 것이 없고 이재에 어둡다보니, 나는 맏이로서 동생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습니다. 10여 년 전 23평짜리 연립주택을 마련할 때 5백만 원을 보태주고, 장가 들여주고나서 결혼 비용을 제하고 남은 축의금 3백만 원을 준 것밖에는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동생이 퇴직금 같은 것이 없는 일용직인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생이 한 푼이라도 아끼고 모을 수 있도록, 가족 행사에서 동생의 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려고 신경을 씁니다. 가족 나들이와 회식을 할 때도 대개는 비용 부담을 내가 맡고….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모두 아내 덕입니다. 아내는 내게 참으로 고마운 사람입니다.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만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내는 나보다 더 동생네를 챙겨줍니다. 어디서 케잌 한 상자를 선물 받아도 정확히 반을 갈라 동생네로 보내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자도 아닌 내가 제수 씨를 운전학원에 보내며 100만원이 들지도 모를 학원비 전액을 대준다고 하면 좋아할 마누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내는 오히려 더 좋아하면서 내게 생각 잘했다는 말까지 하더군요.

하여간 두 여자는 지난 1월 26일 운전학원에 정식으로 등록을 했고, 2월 21일 학과시험에 합격한 다음 2월 25일부터 기능 연습에 들어갔지요. 두 여자 덕분에 나도 꽤 바빴습니다. 매일같이 제수씨를 내 차에 태우고 퇴근 시간 무렵에 학교로 가서 아내를 태우고 운전학원으로 가서 차 안에서 독서를 하고 한 시간 후에 돌아오는 생활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두 여자는 4월 5일의 기능시험에서 모두 합격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수 씨는 3월 29일의 기능시험에서 너무 긴장한 탓인지 시동을 두 번이나 꺼트리고 불합격을 해서 재수를 해야 했지요. 그 바람에 기능 재교육비와 재검정료 10만원을 내가 초과 지출해야 했고…. 그날 나는 제수 씨가 당연히 합격을 할 줄로 알고 도로주행 교육비 20만원을 챙겨 가지고 갔다가 뜻밖에도 그 돈으로 기능 재교육비를 내고 말았는데, 10만원 초과 지출을 미안해하며 울상을 짓는 제수 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더욱 격려를 해주었지요.

두 여자가 기능 시험에 합격한 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두 여자에게 썩 좋은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했고, 두 여자의 도로주행 교육비 40만4000원을 기분 좋게 척 내주었지요.

그 후 4월 12일부터 도로주행 연습에 들어갔던 두 여자는 착실히 연습을 해서 19일의 시험에 모두 합격을 한 것입니다. 이거 또 도로주행 재교육비와 재검정료 13만원을 초과 지출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을 했던 나는 정말이지 큰짐을 벗은 기분이었습니다.

자동차운전학원에 처음 등록을 한 날로부터 근 석 달만에 아내와 제수씨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사십대 후반의 끄트머리 시절에, 그리고 제수씨는 삼십대 중반 시절에 드디어 운전 면허증을 소지하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된 겁니다.

19일 오후에 나는 자동차운전학원에 가서 16명 전 직원에게 두 개씩 돌아갈 수 있도록 빵과 우유를 선물하고, 운전면허증을 타 가지고 왔습니다. 먼저 아내에게 면허증을 주니, 아내는 그 걸 눈여겨보고 매만지고 하면서 "참 신기하다"는 말을 하더군요.

이어 연립주택 뒷동의 동생네 집에 가서 제수 씨에게 면허증을 주니, 제수 씨는 또 한번 감격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미 학교에서 '국가고시'에 합격하고도 그냥 말 수 있느냐고 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중국음식으로 '한턱'을 내는 등 우리 집은 하루종일 축제 분위기였지요. 저녁에 미사를 지내러 성당에 가는 발걸음은 더욱 가벼웠고….

나는 앞으로 며칠 동안 새벽에 아내와 제수 씨에게 '실전' 연습을 시켜줄 계획입니다. 두 여자 모두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기 때문에 내 승합차와 동생의 승용차를 모두 익히게 해줄 생각입니다. 운전 경력이 15년쯤 되는 내 경험 속에 내장되어 있는 모든 명심 사항들을 잘 주입시켜 주려고 합니다.

아내와 제수 씨 모두 운전 배운 것을 후회하는 상황이 앞으로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자동차가 우리 일상 생활의 진정한 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동차문화'에 대한 폭넓은 인식이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요.

오늘도 자동차운전학원에서 운전을 배우시는 분들, 시험에 합격하고 면허증을 취득하시는 모든 분들께 늘 하늘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내 아내와 제수씨에게 운전을 잘 가르쳐주신 자동차운전학원 강사진 여러분께 고마운 뜻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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