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호러라구?, 지적 공포다!

공포 만화 작가 [이토준지]의 인간 광기에 대한 고찰

등록 2002.04.30 17:55수정 2002.05.0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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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어도 만화를 할 일이 없어서 보진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만화가들의 인고의 과정 끝에 탄생한 ‘만화’라는 예술 작품에 대한 모독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화를 내가 꼭 ‘인고의 과정 끝에 탄생한 예술 작품’이라고 표현 하고 싶은 이유는 어릴 적부터 나의 아버지가 갖은 애를 쓰시며 4칸이고 8칸이고 그려내던 풍경이 뇌리에 가득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 만화란 것은 그림만 잘 그려서도 안 되고 스토리 라인만 잘 써도 안 되는 그림과 문장의 복합 예술이라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여전히 남아있는 ‘만화란 그저 시간 때우기 기에 적절할 뿐’이라는 편견을 가지는 이른바 ‘지적’인 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일본이 부럽다. 일본은 적어도 만화를 가지고 그것이 단지 시간 때우기 식의 가벼운 매체라는, 만화를 깔보는 듯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그네들에게는 만화가 책이 되었든 애니메이션이 되었든 간에 그 것은 그 자체로써 작품인 것이다.

어쩌면 만화, 애니메이션의 왕국이라 칭송받는 일본과, 고작 만화 하청왕국이라는 멍에를 쓰게 된 한국의 차이는 이렇듯 단순한 인식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필자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진정 만화를 투자 가치가 있는 미래 산업으로 선정하여 그 질적인 발전을 꾀하고 싶어 한다면 이러한 만화에 대한 인식의 차원에 대한 문제부터 고쳐나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취지에서 만화를‘작품’으로 여기고 이 '작품'에 대한 좁은 견해를 밝혀 가고자 한다.

이토준지?, B급 호러 작가!


이토 준지, 그의 이름이 한국에 알려 진 기간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또한 그 알려진 대상도 대개 만화방을 자주 출입하는 만화 애호가들에게나 알려지거나 혹은 겨우 영화화 된 몇 편의 일본영화를 통해서 영화 팬들에게 알려 졌을 뿐, 일본에 비해서는 명성이랄 것도 없다.

궁극적으로 90년대 후반에 처음 한국에 소개된 그의 작품도 ‘이토준지의 공포만화 컬렉션’ 16권과 ‘소용돌이’ 3권이 전부라 하겠다. 여하튼 짧은 기간, 제한된 독자층, 비교적 적은 작품의 양으로 인하여 한국에서의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그저 B급 호러 만화 일 뿐’이라는 다소 편견에 찬 인식이 지배적인 듯 하다.


이토준지 작품의 지향점

이토 준지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우선적으로 그의 작품을 통해 느껴지는 공포에 대한 일련의 끌림 보다는 그의 독특한 그림체로 인한 거부감을 먼저 느끼게 될 것이다.

굳이 표현을 해 보자면 언젠가 출처를 밝히지 않고 날아온 메일을 열었을 때 짓궂게도 삽시간에 모니터 화면을 덮고 새빨간 눈을 부라리는 그로테스크한 인물군상이 출현했을 때의 일반적 거부감이라고나 할까나? 이렇듯 그의 그림 체는 거부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작은 한칸, 한칸 가득한 섬세한, 인물 하나하나에 서린 창백함과 광기에 대한 묘사, 징그러운 인체 왜곡과 그림에서 풍겨져 나오는 어두움은 그의 작품이 흑백만화라는 것이 매체적 한계로 인한 단점이라기 보단 공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장점으로 까지 부각되게 한다. 또한 탄탄한 실력으로 그의 그림체는 리얼리티를 풍긴다.

이렇듯 탄탄하고 치밀한 그림 체와 조화를 이루는 스토리 라인 또한 세련되었다.

우선 공포를 자아내는 스토리 라인의 기본적 소재가 종래의 공포 물들 즉, 괴기 영화라든지 괴담, TV의 여러 괴기 프로 물들의 속성(대개 비일상적인 상황설정 하에서 주인공들이 처하게 되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를 지향)과는 그 방식에 있어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하겠다.

[학대] (이토준지의 공포만화 컬렉션 中)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어릴 적 같은 동네에 사는 한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돌보아 줄 것을 이웃으로부터 부탁받지만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 여자는 급기야 귀찮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그 사내아이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것으로 해소한다. 날이 갈수록 사내아이를 괴롭히는 정도는 더 해 가던 어느 날, 집안 사정으로 인해 여자는 그 동네를 떠나고 수 많은 세월이 흘러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정도로 성장한 여자는 다시 그 동네를 찾아간다. 그런데 자기가 그리도 괴롭히던 그 사내아이를 보게 된 여자는 사내아이가 멋진 남자로 성장해 있음을 보고 반한다. 그렇게 여자는 어릴 적 자기가 괴롭히던 그 남자와 아무렇지 않게 결혼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 둘은 행복하기만 한 듯 보였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그 남자의 아기까지 생긴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일상 속에서 남자가 떠나간다. 남자가 아무런 이유 없이 사라지자 여자는, 남자가 어릴 적 자신이 그를 괴롭혔음에 대한 복수로 떠나간 것임을 알고 그 충격으로 남자의 아이를 심하게 괴롭히기 시작한다.

위의 작품을 통하여 이토준지는 일상성에 가려진 보통 사랑의 약자를 괴롭히는 이상 심리와 그것에 대한 모호한 욕망을 극적인 상황을 통하여 표출해 내는 방식을 통하여 피 한 방울 그려내지 않았음 에도 불구하고 섬뜩한 공포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밖에도 공포만화 컬렉션에 수록되어 있는 [악령의 머리카락]의 경우만 보아도 예뻐지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심리에 대한 무감각함을 그 만의 방식을 통하여 섬뜩함으로 이끌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토준지의 다수의 작품에서 나타난 특성은 이렇듯 위의 예로써든 작품과 공통적이라 할 수 있다. 즉 그는 그림 체 통하여 이끌어 내고 있는 공포 뿐만 아니라 스토리 라인의 긴장감으로 인해서 또한 독자의 공포감을 자극할 줄 아는 것이다.

이렇듯 이토준지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지향 점은, 평범한 일상의 기괴한 변형 ,즉 일상성을 왜곡하여 가는 과정을 통하여 부각되는 인간의 비정상적인 욕망이나 그로 인한 광기, 추악함에 대한 그의 고찰과 그러한 고찰을 싣고 있는 그의 작품의 스토리 라인에 그 주체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그러한 지향 점을 그로테스크 적 그림체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이토준지의 다수의 작품을 통하여 필자가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자신만의 개성에 충실하고 또 이에 당당한 공포 만화 작가 이토준지의 작품을 보며 그는 그 만의 작품세계를 통한 당당함으로, 이땅에 만화에 대한 편견에 대해 '이제는 당신네 들의 인식을 바꾸어도 될 때'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종래의 고전적 공포물에 진물이 난 사람들이라면 그의 '작품'(만화)을 통해 지적인 공포를 느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램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아 난 시험이 싫다.

덧붙이는 글 아 난 시험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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