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겪은 일일교사 체험기

<귀농일기>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등록 2002.05.16 23:39수정 2002.05.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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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엊그제 '스승의 날'에 우리 새들이가 다니는 S초등학교에 일일교사로 갔습니다. 이런저런 준비도 무색하게 꼬박 100분간의 공부시간을 정말 정신없이 보내다 나왔습니다.


공부를 했다기보다 터지는 봇물 막듯이 허둥지둥 겨우겨우 시간을 때우고 나온 편입니다. 다들 엄마 교사들이고 저만 아빠 교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일 학생수가 많은 4학년을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일교사 체험을 통해 제가 놀란 것은 학생수가 많은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보통 60명 70명이었으니 27명이라는 학생 수는 많은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놀란 것이 무엇인고 하니 모든 학생들이 입에 욕을 달고 산다는 것이고 일상화된 폭력문제였습니다. 의사표현의 통상적인 방법이 주먹과 욕설이었습니다.

일상화된 욕설과 폭력

4학년 담임선생님이 마침 중학생이 된 새날이 2년 전인 5학년 때 담임이었던 분이라 친숙한 안내에 따라 교실에 들어가서 제가 5학년 새들이 아빠라고 소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나가셔서 교실 문 밖에까지 배웅해드리고 들어오는데 대뜸 어떤 사내아이가 볼이 부은 소리로 처음부터 욕섞인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었습니다. "씨발 새들이 형이 나 좆나게 때려요. 혼 좀 내줘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준비한 수업을 잠시 뒤로 미루고 폭력 이야기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준비했던 수업을 시도 할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습니다.


새들이에게 한 번이라도 맞아본 사람 손들어 보라고 했더니 27명 중 18명이나 되었습니다. 개중에는 여자아이가 셋이나 있었습니다. 참, 쓴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아이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 우리 아이뿐 아니라 그 누구도. 그런데 우리 새들이가 누나하고야 거칠게 싸우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아래 학년 동생들을, 그것도 여학생을 때렸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상념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였습니다. 지금은 수업시간이니까 예기치 않은 상황전개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수업을 이끌어나가야 했습니다.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기분 나쁘다"

누구에게든 얻어맞아본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모든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때린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었습니다. 형, 엄마, 아빠, 심지어 동생에게 맞은 학생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한테서도 맞았습니다. 선생님, 동네 아저씨, 친구, 동네 형, 가게 주인 등등 아이들을 안 때린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맞을 때 나는 잘못했으니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단 한 사람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맞은 학생은 없었고 다들 억울했다. '죽여버리고 싶었다. 슬펐다. 너무 창피했다. 무서웠다'고 하였습니다. 다들 눈을 감게 해서 맞을 당시에 느낌이 어땠는지 한 5초 정도 느끼기를 하게 한 뒤에 듣게 된 이야기들입니다.

너무 놀라운 사실들이라 제가 누구에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때린 적이 있는 학생도 전원이었습니다. 눈을 감게 해서 때릴 당시에 기분이 어땠는지 떠올려 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물론 이런 진행이 시종 진지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닙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이긴 했지만 아이들은 무슨 진상조사단을 만나 진술하듯이 신나하면서도 제법 진지하게 말들을 하였습니다. 때릴 때 아주 신났다는 학생도 있고 속이 후련하다는 학생도 있었지만 어떤 한 학생은 즐겁거나 재미있지 않았고 화도 나고 겁도 나서 안 좋은 기분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좋은 기분은 아니라고 말들을 했습니다. 어떤 때 때렸냐고 하나마나한 질문을 했더니 스트레스가 나서 때렸다는 학생도 있고 먼저 때리길래 자기도 때렸다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다들 너무나도 정당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자기 탓은 하나도 없고 다 남들 탓이었던 것입니다.

준비했던 내용은 팽개치고 상황에 둥둥 떠다닌 두 시간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라 저는 별 수 없이 이야기를 매듭지어 나가야 했습니다. 언젠가 새들이와의 일화를 떠올리며 학생들에게 오른손을 다 들어보라고 했다가 다시 왼손을 들어보라고 했습니다. 다들 잘 했습니다. 자기 손이니까 자기 마음대로 잘 된다는 점을 함께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어 볼 사람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20여 명이나 손을 들었습니다.

남을 안 때리겠다는 그 마음은 자기 마음이니까 남 때문에 자기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잘 지키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손이나 발처럼 마음도 자기 마음먹은 대로 꼭 하자고 하였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해달래서 즉흥적인 귀신이야기를 꾸며서 했습니다. 기·승·전·결에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기억나는 모든 동화들을 짜집기하면서 최대한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몇 번씩이나 이건 진짜라고 강조하면 속는 건지 속아주는 건지 아이들은 더 바짝 다가와서 눈을 뎅그랗게 뜨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애들이 장난이 심하고 그 장난이 싸움 수준이라서 두 명이 수업시간에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장난 심한 아이를 나오게 해서 레슬링 시합을 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우는 아이가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이들은 제 볼 일들 보느라 바빴습니다.

우는 두 아이에게 왜 울게 되었는지 듣고 싶다고 했더니 한 아이는 잘 얘기를 했고 한 아이는 그냥 엎드려 더 울기만 하였습니다. 두 애 다 남자애한테 맞아서 우는 것이었습니다. 맞거나 때리는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다짐도 해보고 하는 순서였지만 그 순간에도 주먹다짐이 난무하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해결책을 묻다

선생님들의 애로와 수고를 겪어보고 이해해보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스승의날 일일교사제였겠지만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좋은 기회도 된 듯합니다. 기가 펄펄 살아 있고 무엇이든 과도할 정도로 당당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지지 않으려고 하고 뭐 좋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내가 선물로 가져간 연필을 나눠주고 수업을 끝내는 마지막 순서였는데 한 분단 아이가 6개의 연필을 제 가방에 다 넣고 안 나눠주었나 봅니다. 금세 싸움판이 벌어졌습니다. 밥그릇에 반찬 따르듯이 욕설도 난무했습니다. 주라고 해도 그 아이는 제가 다 갖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연필 6자루를 따로 사줄테니까 나눠주라고 해도 지금 갖고 싶다며 꼼짝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막막하데요.

애들에게 그랬습니다.

"... 얘들아. 수업 끝내고 나가야 하는데 참 난처하구나. 너희들이 선생님 처지라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니?"라고 물었습니다. 정말 아이들에게, 문제의 당사자들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네 명의 학생이 손을 들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줘 패라"는 의견이 있었고 "담임 선생님께 일러라", "담임선생님은 여선생님이라 안된다. 교장 선생님께 일러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마지막 의견은 "그냥 모른 척하고 냅 둬라"는 의견이었는데 그 의견을 낸 학생은 연필을 통째로 움켜쥐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지금 난처한 것은 연필을 나눠주지 못해서라기보다 너희들이 나랑 공부하는 게 재밌다고 하면서 다음에 또 공부하러 오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교무실로 가면 공부 어땠냐고 선생님들이 물어보실 텐데 이렇게 연필을 한 사람이 다 가져가서 서로 싸우고 다투는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다시는 너희들하고 같이 공부하러 들어오지 못할 것 같아 그게 난감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그 학생이 연필을 다 꺼내놓고 죄송하다면서 나눠주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 위로 휙휙 집어던지는 식이었지만.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 저는 교실을 나왔습니다. 팔자에 없는 선생노릇을 겨우겨우 끝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 정말 수고 많으시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제일 많이 연구하고 스스로를 계발하셔야 할 분도 역시 선생님이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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