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의 빗장을 열 때까지

"저도 아이들과 함께 달리고 싶었어요"

등록 2002.06.02 23:00수정 2002.06.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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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체력검사를 하던 저는 교무실 유리창 너머로 교정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서는 남학생들이 오래달리기를 하고 있었고, 다음 차례인듯 나무 그늘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교무실을 나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함께 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도 함께 뛸까 말까?"
"같이 뛰어요, 선생님"
"다른 선생님들 눈치가 보여서 말이야."
"그래도 뛰어요."

몇 아이가 적극적으로 제 손을 잡아끌었지만 그때까지도 완전히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담임들이 함께 나와 있는 상황에서 저만 유별나게 반 아이들과 오래달리기를 함께 한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동료 선생님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싶어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뛰고 싶은 마음은 누구러들지 않으니 딱한 노릇이었습니다.

"뛰실 거예요?"
이번에는 옆에 서 있던 예비교사 김송은 선생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조금 뜸을 들이다가 드디어 마음을 정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또 이렇게 말합니다.

"저도 뛰고 싶은데 하필 오늘 연구수업이라 정장을 입고 와서 아쉽네요."
저는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담임과 교생이 나란히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을 도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김 선생님은 4주전에 우리 학교로 교생 실습을 나오셨습니다. 과목은 일본어이지만 일본어 선생님이 학급 담임을 맡고 있지 않아 우리 반에 배정되어 저와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 교실에서 아이들을 매개로 함께 나눈 시간들이 가볍게 여겨지지만은 않았습니다.

체육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드디어 출발선을 넘어선 저와 반 아이들은 두 바퀴째까지는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함께 운동장을 돌았습니다. 하지만 세 바퀴째부터는 어쩔 수 없이 개인별 경주가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중간쯤에 서서 달렸습니다. 뒤에 처진 아이들은 많이 지쳐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겨놓고 저도 약간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 멋있어요. 힘내세요."
저도 뒤에 쳐져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자, 마지막 한 바퀴다. 힘내자."


오래달리기가 끝이 났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는 길에 두 아이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하고 함께 뛰기는 처음이다."
"나도."

저는 그 말이 참 듣기 좋았습니다. 여학생들과 보조를 맞추어 운동장 여섯 바퀴를 뛰는 일이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닌데도, 아이들은 그 하나만으로도 마음을 활짝 열고 맙니다. 이번에는 김 선생님의 한마디합니다.


"선생님, 대단하세요."
"뭘요? 어쨌든 기분이 참 좋네요."
"저도 아이들과 함께 뛰고 싶었어요. 체육대회 때도 함께 뛸 수 없어 아쉬웠거든요."
"나중에 교사가 되시면 꼭 함께 뛰세요. 아이들은 말보다는 몸으로 주는 사랑에 더 감동하거든요."

그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5년 전에 담임을 맡은 정민(가명)이라는 제자입니다. 바로 그해 그의 부친은 경운기 사고로 불행한 죽음을 당합니다. 결국 혼자의 몸이 된 그의 모친은 호구지책으로 간이주점을 경영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다가 남자를 가까이 하게 된 모양입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지 불과 얼마 안되어 생긴 일이라 그의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집을 나가버리고 맙니다.

가출 동기는 어머니였지만 집과 학교를 떠나 생활하다보니 거리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그마저 시들해져 집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모든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무기력한 아이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의 아픔은 어머니의 탈선보다는 가출한 자신을 찾지 않았다는데 있었습니다. 그의 모친은 그가 동생과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를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성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에게는 어떤 사랑의 언어도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집으로 찾아가 아무리 간절한 마음으로 얘기를 해도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은 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끝내 학교로 돌아올 의사를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저를 만나면 예의를 갖추고 고마움을 표현할 줄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를 학교로 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 지도 모릅니다.

그를 직접 만나서 나누는 대화가 아무런 효력이 없자 저는 매일 한 통씩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서 찬식이를 통해 전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편지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행동이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뜻하지 않게 맞이한 생의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제가 선택한 최후의 방법은 바로 몸으로 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저는 평소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첫날은 10바퀴, 다음 날은 11바퀴, 그 다음날은 12바퀴, 이런 식으로 정민이가 학교로 돌아오는 그날까지 한 바퀴씩 늘려가며 운동장을 돌았습니다.

11월 하순경이라 어둠 속에서 시작된 레이스는 먼동이 트면서 끝이 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사랑의 메신저인 찬식이를 통해 정민이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제가 찬식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전해받은 것은 운동장을 열 다섯 바퀴째 돌던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정민아, 어둠이 걷히면서 찬식이가 교문에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까지 나는 아무 말 없이 인사만을 하고 지나가는 찬식이를 바라보아야만 했구나. 그런데 승전보라도 전하듯이 네가 다음 주에 온다는 구나. 이렇게 기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정민아. 내일이 12월 1일인데 내가 깨뜨린 우리 반 무결을 네가 다시 이어볼 생각은 없니? 너를 기다리는 반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겠니? 물론 선생님에게도 그렇고. 결정은 네가 해라. 다만 선생님은 네가 명예로운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날 운동장을 열 세 바퀴째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둠이 걷히면서 교문 쪽에서 찬식이의 모습이 먼저 보이더니 뒤이어 검은 교복차림의 정민이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데 그가 달려와 제 품에 안겼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머지 세 바퀴를 함께 돌았습니다.

그해 12월, 우리 반은 무결을 했고 다음 해 정민이는 급우들과 함께 3학년으로 진급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민이는 저에게 생일축하시를 받지 못했습니다. 세 번의 가출 기간 중에 생일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해 가을 청소시간, 저는 정민이를 생각하면서 교정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낙엽줍기'란 한 편의 시를 얻었습니다. 저는 그 시를 정민이에게 나중에야 전해주었습니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는다
허리를 숙일 때의 천천한 동작을 즐긴다
땅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작은 것들이 커 보인다
겨울을 나려는 듯, 함께 먼길을 가는
땅에 사는 작은 생명들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다보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 같다
자연히 낙엽 줍는 손길이 늦어진다
성급히 쓸다보면 쓰레기가 되는 것들이
허리 숙여 천천히 주으면 낙엽이 된다.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에는 딱히 정해진 길이 없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 말에 감히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비교사이신 김 선생님을 지도하고 조언하는 선배교사로서 행여 제 방식만을 강요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비교사인 김 선생님께 두 가지만은 꼭 고집을 부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이들의 자유를 가능하면 억압하지 말아달라는 당부요,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관리하는 교사가 되지 말고 사랑하는 교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저는 교육에서 이 두 가지만은 꼭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비굴하지 않고 사랑이 넘치는 공명정대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교육의 왕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굳이 따진다면 왕도 보다는 정도라는 말이 더 적합한 말이겠지만.

교생 실습 마지막 날 김 선생님은 고맙게도 그 화답을 작은 쪽지에 적어 제게 전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선물로 주신 한 권의 귀한 책과 함께…

'4주 동안 마음이 참 따스했어요. "詩"를 쓰는 "少年"님의 덕분에∼ 식물이 자라는 데는 물과 햇빛만이 아닌 "거름'도 필요하죠. 항상 아이들에게 "거름"주기를 아끼지 않으신 "좋은" 선생님 모습 기억하며 저 또한 거름주기를 아끼지 않는 "좋은" 선생님이 되렵니다. 고맙습니다.'

김송은 선생님! 저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사가 되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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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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