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 초상조창완
이 와중에 쑨원은 상하이에 도착한 지 4일 후인 12월 29일 난징에서 열린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로 대총통에 당선된다. 1912년 1월 1일에 쑨원을 대통령으로한 중화민국이 탄생한 것이다. 베이징에서는 연일 비상회의가 열렸고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위안스카이(袁世凱)는 혁명군과 협의하에 청조를 몰락시키고, 대신에 쑨원으로부터 임시대총통직을 물려받았다. 이후 위안스카이는 선거에서 승리한 국민당의 당수 쑹자오런(宋敎仁)을 암살하고 다시 황제로 등극하려는 야심을 보였다. 쑨원은 다시 봉기를 일으켰지만 실패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쑨원은 일본과 중국에서 새로운 세 모으기를 지속했고, 장쩨스(蔣介石) 등이 이 모임에 참여했다. 그리고 위안스카이의 야망은 지속될 수 없었다. 광둥 등 남방에서 몰고간 반원(反袁)은 확장됐고, 그의 지지자였던 군벌(軍閥)들이 하나둘 손을 놓자 위안스카이는 절망했고, 1916년 6월 5일 숨을 거둔다. 쑨원은 다시 힘을 모았지만 차츰 각 지역에서 군림하던 군벌의 성장으로 인해 좌절할 즈음인 1919년 ‘5.4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중국에 대한 야심을 불태우던 일본에 대한 경계심도 커갔다. 하지만 쑨원에게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어려움이 계속됐다. 그는 국민당은 물론이고 공산당 장교들의 토대가 된 황포군관학교를 세워 힘을 모았다. 학교 내부는 국민당의 실질적 지휘자인 장쩨스가 주역이었지만 서서히 발원하는 공산당의 활동무대이기도 했다.
쑨원은 부인 쑹칭링(宋慶齡)등과 더불어 일본 국민에 불평등한 조약을 직접 호소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베이징도 방문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지병이 악화됐고, 1925년 3월 12일 간장암으로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그는 시양산 삐윈스에 안치되어 있다가, 1926년 6월 1일 난징 중산릉으로 무덤을 옮겼다. 그는 결국 중국 통일의 꿈을 이루자 죽게 된 것이다.
쑨원의 인생은 위와 같이 실패로 거듭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대만은 물론이고 공산중국에서도 영웅이 된 것은 공산당과 국민당 어디에도 확실한 지지를 남기지 않은 이유 때문이다. 거기에 새로운 중국 수립에는 맨몸으로 중국 건국을 끌어가던 쑨원의 정치적 자산이 필요했다. 결국 서로 쑨원이 자신들의 정치 사상을 지지한다고 믿은 두 세력은 각각의 쑨원을 만들어냈다. 쑨원은 동서인 짱제스와 의견이 맞았지만, 국민당과 연계된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소련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는 수많은 좌절을 겪으면서 군벌 뒤에 제국주의가 있다는 것과, 인민들과 단결하여 반제(反帝)·반군벌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혁명을 본받아 국민당을 개조한 뒤, 공산당과 제휴(국공합작), 노동자·농민과의 결속을 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그는 죽음 직전까지 정확한 정치적 입장을 피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당도 그를 추앙했다. 사망 당시 국민당이 장례를 준비했지만, 레닌이 그를 위해 관(棺)을 보내는 등 예우한 것만 봐도 그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그의 부인인 쑹칭링이 그가 사망후 국공합작을 이끌고, 항일전쟁을 선도한 후 공산중국의 성립후 역할이 지대해진데다 국민에게 덕망이 높아 중국에서 쑨원의 위상도 그 만큼 커졌다. 살아 생전에 쑨원은 별다른 영화를 누리지 못했지만 그는 죽어서 ‘중산능’이라는 절대 군주시대의 묘명(墓名)을 갖는 등 ‘중국 건국의 아버지’로 숭앙받았다.
쑨원은 근대 중국의 가장 풍운아였고, 흥미로운 삶을 살았다. 그는 수십차례의 봉기를 벌였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그 봉기로 인해 처형된 동지의 숫자만해도 엄청나다. 그가 삼민주의를 주창했지만 그의 국제관계는 일본에 가서 일본인들에게 동정을 구할 만큼 둔감했다. 그가 동정을 구하려 했던 일본인들은 그가 난징에 묻힌 후 약 10년뒤인 1937년 12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난징과 부근에서 35만명 가량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의 국제정세에 대한 감각은 그토록 미약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여전히 빛난다. 중국인들에게 그는 영원한 혁명가이고, 중국 성립의 투쟁철학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는 한족(漢族)의 중국이 지속되는 한 영원히 ‘건국의 아버지’로 숭앙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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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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