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한국의 미래가 밝다는데...

문화일보 7월 20일자에 실린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

등록 2002.07.23 16:53수정 2002.07.2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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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자 문화일보의 "과학 한국의 미래는 밝다"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는 한국인 출신 유학생들이 미국에서 이룩한 업적을 소개하였다.

이 칼럼은 세계의 정상에 우뚝선 한국인의 우수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긍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학한국의 미래'가 정말로 밝게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칼럼에서 황우석 교수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두 명의 학생이 미국에 유학가서 외국인 교수 밑에서 큰 일을 했다는 낭보를 전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과학한국의 미래'가 밝으려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한국 땅에서 한국인 교수 밑에서 큰 일을 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황 교수는 정말로 과학한국의 미래가 밝다는 징조를 보여줄 예를 잘못 선택한 것이 된다. 도대체 우리 한국 땅 안에서 이런 예를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일까?

황 교수는 또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하는 한국 학생들의 성실함을 과학한국의 미래를 보장하는 가장 큰 덕목으로 꼽았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성실함이 국내에선 어떻게 악용되고 있고, 또 결국 어떤 파국의 길로 인도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황 교수의 글엔 결핍되어 있다.

지금 온통 이 나라는 이공계 기피문제로 난리법석이다. 그래서, 최근 대통령 주재의 '제10회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심의'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황 교수에 묻고 싶다. 이렇게 성실한 학생들이 미래의 희망찬 과학한국을 짊어지고 묵묵히 나아가고 있는데 왜 이 난리란 말인가?

황 교수는 그의 칼럼에서 월드컵 4강에 진출한 히딩크 김독의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란 말을 인용하며 헝그리 정신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충분히 '배고픈' 이공계인들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별로 적절한 강조가 아닌 듯하다. 그보다 히딩크의 교훈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월드컵 4강에 진출한 우리 한국 선수들로부터 황 교수가 강조한 미덕인 성실성과 불굴의 도전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왜 그 동안 이런 자질을 가진 우수한 한국선수들이 히딩크 이전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것일까? 그것은 연고주의와 권위주의가 판치는 한국적인 풍토 때문이었다. 요즘 매스컴에서는 히딩크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4강기적을 이루어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이제 황 교수가 예로든 2명의 한국학생이 과연 한국땅에서 계속 공부를 했더라고 그런 뛰어난 업적을 냈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해보자. 여기에 대한 답은 과연 히딩크가 우리 축구팀을 맡지 않았어도 월드컵 신화를 이룩했을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한 답과 동일할 것이다.

필자는 유학시절에 한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유학온 한 학생과 대화를 나눈 것을 기억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앞에서 강조된 '성실하고 불굴의 도전정신'을 갖춘 훌륭한 인재였다. 그가 박사과정을 유학가기로 결심한 것은 교수와 실험실 선배들의 이른바 '시다바리'가 되기 싫어서였다.


이제 황 교수의 칼럼에 붙였어야할 제목은 자명하다. 그것은 "성실한 한국 학생을 국내에 붙잡아두지만 않는다면, 그의 미래는 밝다"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포럼>`과학 한국` 미래는 밝다

최근,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와 사회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의 복지 증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과학도들의 창의력과 성실성, 그리고 기술 개발에 ‘배고파’하는 불굴의 도전 정신이 요구된다.

학술 연구를 위해 외국의 과학자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들에게서 여유로운 자세와 넉넉함을 느낄 때가 있다. 호주나 독일, 캐나다 등과 같은 자원 부국의 학자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마치 대갓집 자녀들을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기품 같다고나 할까. 

그들은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실험실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은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 우리 나라 과학자들은 신새벽의 별을 보고 출근하며 한밤의 달빛 아래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일부 젊은이들은 실험실 한쪽에 놓인 야전침대에서 새우잠을 청하거나 인근에 숙소를 얻어 합숙을 하기도 한다. ‘주5일근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동료 후배 과학도가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말, 미국으로부터 두 가지 낭보가 들려왔다. 텍사스 A&M대학의 신태영 박사가 세계 최초로 고양이를 복제했으며, 미주리대학의 박광욱 박사는 최초로 노랑 돼지를 복제한 데 이어 특정 유전자 제거 복제 돼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재학 시절 빈약한 연구실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는 데 필요한 ‘헝그리 정신’을 익혔던 것 같다. 그들을 지도한 선배는 지금도 그들의 연구 자세를 칭찬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과학도들에게서도 그들처럼 성실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대한 과학의 발견과 기술의 진보는 창의력과 성실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지난 월드컵 대회중 우리 나라 팀이 16강 진입을 달성한 뒤 히딩크 감독이 기자들에게 던진 한 마디는 다른 분야 종사자인 나의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아직도 나는 승리에 배고프다(I’m still hungry.).” 굳이 우리식 표현으로 해 본다면 ‘허리띠 졸라매기’ 정도가 될 이 짧은 말 속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 사람들이 가슴에 담고 매진해야 할 ‘운명적 진리’가 들어 있을 것 같다. 

우리 연구팀 중에는 군의관 복무와 인턴 과정을 이수한 유능한 의학도가 수의학 석사과정에 합류, 기초의학 연구에 몰두하는 ‘미련한’ 젊은이가 있다. 그의 부인이 유명 대학병원의 고참 간호사라는 안정된 삶의 터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진에 들어와 24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또, 학부 과정을 두개씩이나 졸업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30대 미혼 여성들이 남자 친구 대신 현미경을 벗삼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전혀 유쾌하지 못한 냄새가 풍기는 돼지 사육장에서 몇년간 이종장기 개발 연구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개척해 나가고 있는 우리의 과학기술은 무엇이 두렵겠는가. 어떤 어려움도 묵묵히 헤쳐나가는 이들이 있는 한 우리 나라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과학기술 예산만은 인색하지 않다. 정부 부처마다 나름대로 비전을 가지고 연구·개발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의 창문으로는 환한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다. 이를 ‘삼위일체 과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창의력의 계발, 성실성의 고취, 애국심의 발휘를 통해 과학 한국의 밑바탕을 튼튼히 다져 나가는 일은 당연히 과학자들의 몫이다.

머리띠를 졸라매고 연구에 매달리는 과학도들이 있고, 그들이 오직 과학 연구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학정책이 뒷받침되며, 깊은 관심과 애정어린 국민의 성원이 있는 한 10년 이내에 선진 8위, 과학기술 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일도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자원이 빈약하다고 하여 포기하지 않고, 뛰어난 창의성과 성실성으로 과학기술 개발에 몰두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

덧붙이는 글 <포럼>`과학 한국` 미래는 밝다

최근,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둘러싸고 정부 부처와 사회 각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점은,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류의 복지 증진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과학도들의 창의력과 성실성, 그리고 기술 개발에 ‘배고파’하는 불굴의 도전 정신이 요구된다.

학술 연구를 위해 외국의 과학자들과 교류하다 보면 그들에게서 여유로운 자세와 넉넉함을 느낄 때가 있다. 호주나 독일, 캐나다 등과 같은 자원 부국의 학자들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마치 대갓집 자녀들을 만났을 때 느끼게 되는 기품 같다고나 할까. 

그들은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실험실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흔치 않은 것 같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은 취미 생활을 하거나 가족과 더불어 여가를 즐기는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 우리 나라 과학자들은 신새벽의 별을 보고 출근하며 한밤의 달빛 아래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일부 젊은이들은 실험실 한쪽에 놓인 야전침대에서 새우잠을 청하거나 인근에 숙소를 얻어 합숙을 하기도 한다. ‘주5일근무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동료 후배 과학도가 때로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믿음직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지난해 말, 미국으로부터 두 가지 낭보가 들려왔다. 텍사스 A&M대학의 신태영 박사가 세계 최초로 고양이를 복제했으며, 미주리대학의 박광욱 박사는 최초로 노랑 돼지를 복제한 데 이어 특정 유전자 제거 복제 돼지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했는데, 재학 시절 빈약한 연구실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는 데 필요한 ‘헝그리 정신’을 익혔던 것 같다. 그들을 지도한 선배는 지금도 그들의 연구 자세를 칭찬하느라 침이 마를 지경이다. 세계 어느 나라의 과학도들에게서도 그들처럼 성실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대한 과학의 발견과 기술의 진보는 창의력과 성실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지난 월드컵 대회중 우리 나라 팀이 16강 진입을 달성한 뒤 히딩크 감독이 기자들에게 던진 한 마디는 다른 분야 종사자인 나의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아직도 나는 승리에 배고프다(I’m still hungry.).” 굳이 우리식 표현으로 해 본다면 ‘허리띠 졸라매기’ 정도가 될 이 짧은 말 속에는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분야 사람들이 가슴에 담고 매진해야 할 ‘운명적 진리’가 들어 있을 것 같다. 

우리 연구팀 중에는 군의관 복무와 인턴 과정을 이수한 유능한 의학도가 수의학 석사과정에 합류, 기초의학 연구에 몰두하는 ‘미련한’ 젊은이가 있다. 그의 부인이 유명 대학병원의 고참 간호사라는 안정된 삶의 터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진에 들어와 24시간을 쪼개 쓰고 있다. 

또, 학부 과정을 두개씩이나 졸업하고 연구에 매진하는 30대 미혼 여성들이 남자 친구 대신 현미경을 벗삼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전혀 유쾌하지 못한 냄새가 풍기는 돼지 사육장에서 몇년간 이종장기 개발 연구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개척해 나가고 있는 우리의 과학기술은 무엇이 두렵겠는가. 어떤 어려움도 묵묵히 헤쳐나가는 이들이 있는 한 우리 나라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에서도 과학기술 예산만은 인색하지 않다. 정부 부처마다 나름대로 비전을 가지고 연구·개발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대학과 연구소의 창문으로는 환한 불빛이 밤을 밝히고 있다. 이를 ‘삼위일체 과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창의력의 계발, 성실성의 고취, 애국심의 발휘를 통해 과학 한국의 밑바탕을 튼튼히 다져 나가는 일은 당연히 과학자들의 몫이다.

머리띠를 졸라매고 연구에 매달리는 과학도들이 있고, 그들이 오직 과학 연구에만 종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과학정책이 뒷받침되며, 깊은 관심과 애정어린 국민의 성원이 있는 한 10년 이내에 선진 8위, 과학기술 대국의 반열에 오르는 일도 결코 꿈만은 아닐 것이다.

자원이 빈약하다고 하여 포기하지 않고, 뛰어난 창의성과 성실성으로 과학기술 개발에 몰두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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