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 최명희의 교사시절 꽁트 '오후'

30년 전 작가를 꿈꾸던 시절의 작품을 찾았다

등록 2002.07.27 20:36수정 2002.07.2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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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30년전 혼불 작가 최명희의 꽁트 '오후'가 실린 전북대신문.

30년전 혼불 작가 최명희의 꽁트 '오후'가 실린 전북대신문. ⓒ 황종원




최명희의 '혼불'은 내 생활이다. 말하고 나니 진정인가 하여 다소의 허풍이 느껴지지만 정녕 매일 내 책상의 책꽂이에는 '혼불'이 꽂혀 있다.

나는 작가 최명희 처럼 몽블랑 만년필로 혼불을 거의 매일 필사하고 있다. 혼불 하나를 17년 동안 집필한 작가에 대한 경외감과 그이의 노고에 대해 만분지 일이라도 내 손으로 체감하기 위해서이다. 2년 전부터 필사를 시작했는데 아직도 1권을 다 못 베꼈다.

책을 눈으로 볼 때와 입으로 읽을 때와 제각기 느낌이 다르다. 손가락으로 워드를 찍을 때와 또 다르다. 작가와 똑같이 쓰다보면 글을 써 내려갈 때의 작가의 마음이 펜 끝에서 느껴진다. 내가 필사하는 속도로 보아서는 10권을 다 베끼려면 20년은 걸릴듯하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행복할 것이다.

혼불에 묻혀 살다보면 작가의 소식에 늘 눈과 귀를 열고 있게 된다.
혼불에 혼신을 다했던 최명희는 다른 글을 쓰는 데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인지 다른 작품을 찾기가 힘들다. 그네의 글씨의 흔적을 얻기도 힘들다. 혼불을 펴낸 한길사 담당자에게 물으니 가족이 다 가지고 갔다고 한다. 언젠가 최명희의 기념관이라도 만들어지면 그때나 보게 될는지.

인터넷 다음의 '혼불 사랑' 카페 자료 방에 작가의 연혁이 실려 있다. 작가가 세상에 발표했던 신문이나 잡지 이름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문제는 그 글들을 시중에서는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제망매가' 같은 글을 찾아 잡지사를 찾아갈 수도 없다. 폐간되어 없어지고 말았으니….


다음카페에 작가가 전북대학을 졸업한 후에 전북대학신문에 글을 올렸다는 내용이 있다. 전주의 전북대학에 가던지 서울의 국립도서관에 가야 한다. 최명희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교대 역에서 나와 출구에서 나오니 숨이 금세 탁 막히는 더위가 덮쳐왔다. 국립도서관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닌데 나는 늘 길눈이 어둡다. 출구에서 나오면 검찰청 건물부터 보여야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낮은 건물들이다. 착각했구나. 잘못 내렸군. 어이없고 짜증이 난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서 서초역에서 내렸다.


이번엔 맞게 왔다. 햇살은 불송곳 같았다. 쨍한 인도에 서기가 무섭다. 프라타너스의 나무그늘은 차도와 인도에 걸쳐 있다. 숨어들듯 그늘 속을 징검다리 밟듯 갔다. 검찰청 위로 서초 경찰서를 지나 오르막길에서 지친 걸음에 짜증이 턱까지 찬다. 그래도 내가 만날 글만 있다면야.

점심시간이었다. 기다렸다가 1시가 지나서 사서를 만났다. 모니터로 보면 자료가 뜨지 않는다. 신문자료실의 탁자에 놓여 있는 특수신문명세를 보면 잘 안보는 신문들의 명세가 나온다. 그 틈에 전북대 신문철 이름이 나온다. 사서는 전북대신문을 몰랐다. 내가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전북대 축쇄판이 있을 겁니다."
바로 축쇄판이 내 손에 들어왔다.

다음카페의 내용 그대로 기전여고의 초임 교사 최명희는 그 곳에 있었다. 당신의 조각 하나를 또 찾았소. 내 가슴이 가득하게 차올랐다. 축쇄판의 글씨를 돋보기를 들여다보아야 했다. 글씨가 작은 개미의 머리만 했다.

복사 카드 한 장에는 5천원이나 했다. 한 장을 복사를 하건 두 장을 하건 5천원이다. 한동안 최명희가 중앙지에 연재를 했던 혼불을 복사를 할 때는 5천원도 모자랐다. 단 한 장 복사하는 데 5천원을 주기는 주저된다. 복사를 하는 사람 옆으로 다가가서 양해를 얻어 한 장을 복사하고 그 복사지 값만큼 주면 되겠지 하고 나는 용기를 낸다.

사서 책상을 다시 살펴보니 복사에 대해 바뀐 내용이 붙어 있다.
" 복사카드를 사고서 남으면 돈으로 바꾸어 드립니다."
기분이 좋아졌다. 국립 도서관도 고객을 우선 하는구나.

개미 머리만한 글씨를 보려면 돋보기를 써야 했다. 다시 확대경으로 글자 하나씩을 보며 타자를 한다. 작가의 마음에 내게 전해온다. 찍으면서 나는 놀랐다. 꽁트의 내용이 너무 재미가 없어서….

꽁트란 깔끔하고 깜작 놀라는 맛이 있고 책장을 덮어도 감동이 와야한다는 내 생각과 달랐다. 최명희가 아니고 다른 사람의 글이라면 나는 첫 줄만 보고 젖혀 놓았을 것이다. 찍으면서 나는 다른 사람 글인가 하였다. 언어의 조탁을 생명으로 했던 최명희 글 같지 않게 지나치도록 평범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사의 길로 들어선 연륜은 느껴지지 않고 이제 막 습작을 하는 대학생이 쓴 글맛이었다.

나는 또 깜짝 놀랐다. 뛰어난 글을 쓴 것도 줄거리가 재미있는 글도 아닌 보통 여자 최명희가 평범한 글재주를 가지고 뛰어난 작품 ‘혼불’을 17년 동안 쓴 그 노고를 이해를 하였다. 생전의 최명희는 자신의 재주가 너무 없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하였다. 울음 속에서 최명희는 예술문학소설이라는 혼불을 생명을 다하여 썼다.

전북대신문에 실린 최명희 콩트 '오후'

참 끈질기고 집요한 울음소리였다.
억척스롭게 떼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잠오는 어린아이가 혼자 눈을 비비며 점점 어둠이 덮여오는 빈방에서 공포와 지루함과 욕망 때문에 칭얼거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나는 섬유질처럼 질긴 그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려 어느
곳에서 아이가 울고 있는가 찾기 시작했다. 도대체 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방향조차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어느 골목을 따라 한참동안 헤매다가 들판같이 휑한 공지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크고 작은 모랫더미가 무덤처럼 널려있고 그것들은 오후의 햇빛에 되쏘여 거울가루와 같았다.
어디서 아이가 울까.
이런 삭막하고 텅 빈곳에 어린아이가 있을 리 없는데.
쏟아지는 햇빛을 손으로 가리며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찾느라고 두리번거리다가 온통 하얗게 바랜 채 다른 빛도 소리도 없는 어느 커다란 모랫더미 뒤에서 여섯 달도 채 못되었을 어린아이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어깨를 들먹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얼굴과 머릿속, 목, 팔, 다리 할 것 없이 온통 땀과 모래로 범벅이 된 채 주저앉아 흡사 한없이 지루하고 무더운 여름 밤 마루에서 잠든 어린아이가 끊임없이 달려들어 물어대는 모기에 지치고겨워 우는 것처럼 훌쩍이고 있었다,
"아가 왜 울어?"
아이는 손을 눈에서 떼며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가 왜 울지? 응?"
아이는 여윈 팔을 내게 기대고 막막하게 모랫더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숨을 내 쉬고 들이 쉴 때마다 아이의 등뼈가 가슴에 닿았다.

"...심심해서 그래"
아이가 드디어 끈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모래더미가 태양열 때문에 더욱 하얗게 눈을 쏘았다.
" 심심하다고 울어 ? 바보같이 .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놀면 심심지 않을 거 아냐?"
나는 싱긋 웃으며 아이의 뺨을 꼭 찔러주었다.
" 재미있는 게 없어. "
아이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나 투정을 부리듯 혹은 쓸모없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물건을 다시 한번 주워들고 이리 저리 뒤집어 보는 것처럼 말했다.
" 저러언 - 모래성이라도 쌓고 놀면 되잖아? 이렇게나 모래가 많은데. 뭐든지 해보면 심심하지는 않아요."
나는 이것 보라는 듯이 손을 모래 속에 깊숙이 집어넣고 손 등위에 모래를 수북이 긁어 올린 뒤 두꺼비집을 지우며 다독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아이는 이 새롭고 놀라운 놀이에 금방 재미를 붙일 수 있겠지.
" 아침부터 그거만 했단 말야. 인제 그거 싫단 말야. 그거 말고 머 다른 거 해 쥐어-'
머릿속이 끈끈해져왔다.
"지이익-"
내 발밑에서 낮고 무기력한 쥐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부엌집
게로 집어 사과 궤짝으로 만든 쓰레기통에 힘껏 죽어버리라고 내던진 아침의 늙은 시궁쥐가 빛이 가물거리는 눈으로 멀그러미 자기 앞의 판자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햇빛이 누글누글 녹으며 쥐의 온몸에 엉겨 붙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기다란 집게를 잡았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밤이면 유달리도 수많은 쥐들이 천정과 찬장 뒤, 시렁 밑에서 , 고리짝 옆에서 태연스레 그것들을 갉았다.

그 쥐들이 사방에서 나무와 딱딱한 것을 갉는 소리, 천정지를 부욱부욱 찢어내는 소리 때문에 거의 잠을 못 이룬 날들이 그렇게 많았지만 한번도 내 힘으로 쥐를 잡아보겠다고 생각한 일은 없었다.

나는 조심조심 발걸음을 죽이고 늙은 쥐에게 다가갔다.
쥐는 아까와 꼭 같이 쓰레기통 안에서 무기력한 몸짓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집게의 그림자가 커다랗고 길게 쥐를 덮었다. 쥐는 집게 사이에서 바드럭거렸다. 나는 물큰하게 느껴지는 쥐의 몽뚱이를 꽉 잡아 쥐면서 집게를 타고 손가락 끝으로 온 몸으로 신경의 가느다란 줄기마다 무기력한 버드럭 거림이 흘러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쥐의 늙은 몸뚱이를 변소 밑바닥에 내동댕이쳐버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떨어진 쥐는 지이직하더니 아무 소리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려다말고 다시 돌아서서 바닥을 굽어보았다.
쥐는 온몸을 둥그렇게 우그리고 있었다.
(죽은 것일까?)
허리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던 나는 그의 꼬리가 다시금 서서히 꿈틀거리고 오그러 붙었던 발목이 앞쪽으로 뻗는 것을 보았다.
울컷 구역이 솟는다. 진저리가 났다.

수도간에 가서 대야에 물을 그득하게 길어들고 다시 들어가 어느 새 두어 뺌이나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 쥐의 몸뚱이 위에다 주르르 물을 쏟았다. 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엎드린 쥐의 첨벙 젖은 털이 다시 내게 진저리를 있으켰다. 쥐는 몸을 부스스 떨더니 부옇게 풀린 막막하고 던적스로운 눈으로 모진 바닥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섬짓하며 소름이 돋았다. 덜컷 겁이 났다. 나는 밖으로 튀어 나오고 말았다. 늙은 쥐의 끈적거리는 울음소리가 모래투성이의 손으로 눈을 비비며 울기 시작하는 아이의 소리에 엉겨들어 나는 그 소리를 분별할 수 없게 되었다. 아이의 음절이 한 음절 끝날 때마다 모래성을 쌓고 부수고 또 같은 모래성을 쌓고 했다. 모래성은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쌓이고 부서졌다.

어깨가 저려오고 팔목과 다릿목이 뻐근해졌다.
"아가 뭐 색다른 놀이 없을까? "
아침부터 아이가 헤젓거려 파헤쳐 놓은 모래를 내가 또 한나절이나 성을 쌓노라고 헤쳐 놓아 허옇게 바랜 체 뒤집힌 모래에 다시 한번 손을 박고 아이를 애원하듯 바라보았다.
"아가 ....뭐 다른 놀이...없을까....이렇게 심심하면 ...죽어...뮈든지 좀 새로운 것이...새로운...아가 뭐 없을까?"
아이는 땀과 모래에 범벅이 되어 자기를 올려다보는 나를 무기력한 늙은 쥐처럼 바라보았다.

[전북대신문 지령 409호 1972년 10월 6일 p8 동문문예특집에서 발췌]

덧붙이는 글 | 혼불 최명희의 바람이 불어 주기를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 받는 이상으로. 최명희를 찾는 모임도 활발했으면 하고 바란다. 어린 시절의 모습과 그때의 글과 유년의 생가를 보고 싶다.

최명희를 서울에 있는 내가 찾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 올린 글이 저작권과 관련이 있는지 검증을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혼불의 책 표지에도 나와 있지 않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찾아서 올리는 이유는 가족이든 최명희 기념사업회든 고인의 작품을 찾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독자의 수고이니 관계지들은 또 내 선의에 돌팔매를 던지지 말아달라.

덧붙이는 글 혼불 최명희의 바람이 불어 주기를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 받는 이상으로. 최명희를 찾는 모임도 활발했으면 하고 바란다. 어린 시절의 모습과 그때의 글과 유년의 생가를 보고 싶다.

최명희를 서울에 있는 내가 찾아다니는 일은 쉽지 않다. 여기 올린 글이 저작권과 관련이 있는지 검증을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혼불의 책 표지에도 나와 있지 않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을 찾아서 올리는 이유는 가족이든 최명희 기념사업회든 고인의 작품을 찾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독자의 수고이니 관계지들은 또 내 선의에 돌팔매를 던지지 말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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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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