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노쿠데타'인가,'노풍재점화'인가

[분석] 한화갑의 '백지신당론'...그 정치적 의미는?

등록 2002.07.30 17:32수정 2002.08.0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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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불안한 동거? 노무현과 한화갑의 '찰떡궁합'은 옛말이 되었다. 둘 간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불안한 동거? 노무현과 한화갑의 '찰떡궁합'은 옛말이 되었다. 둘 간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필자는 이틀 전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한화갑 대표의 관계를 '가깝고도 먼 관계', 그러니까 '협력과 긴장이 교차하는 관계'라고 표현하였다. 때마침 두 사람 사이의 이 미묘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 30일 발생했다.

한화갑 대표는 30일, 8·8 재보선 이후 '헤쳐모여식'의 신당을 창당하여 대통령후보를 다시 선출하자는, 이른바 '백지(白紙)위의 신당창당'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물론 "8·8 재보선 이후 당에서 진지하게 논의해 결론을 도출할 것"이라는 전제가 따르기는 했지만, 한 대표의 이번 발언은 강력한 신당추진 의사를 담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 대표는 자신의 발언이 노무현 후보와의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이번 발언의 배경과 향후 양자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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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는 왜 지금 이 시점에서 '백지 신당론'을 내놓은 것일까. '백지 신당론'은 노무현 후보를 밀어주기 위한 승부수일까. 아니면 그를 끌어내리려는 쿠데타일까. 그 정치적 의미를 잘 뜯어볼 필요가 있다.

한 대표의 설명대로 이번 신당론은 노 후보와의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보선의 와중에 당대표가 느닷없이 신당론을 꺼낸 것은 특별한 정치적 의도 없이는 있기 어려운 일이다. 그 의도는 한마디로 향후 민주당 변화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8·8 재보선 이후 어떤 형태로든 노무현 후보가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어 왔다. 그 방식이 재경선이든 신당창당이든, 자신의 기득권 포기 용의를 전제로 한 결단으로 대선판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 노 후보의 구상이었다.

이러한 예상을 놓고 보면, 한 대표의 이번 신당론은 일종의 선공(先攻)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향후 민주당의 변화를 노 후보의 주도가 아닌 자신의 주도로 이끌고 나가겠다는 의사가 여기에는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재보선이 끝나기를 기다리지 않고 굳이 이 시점에서 그같은 발언을 하고 나선 데에는, 노 후보를 젖히고 신당창당론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음이 분명하다.


이같은 한 대표의 행보는 일단 노후보를 당혹스럽게 만들 것이 예상된다. 노 후보로서는 신당창당론을 선점당함으로써 재보선 이후 자신의 결단을 통해 민주당의 변화를 가져오는 기회를 일단 제약받게 되었으며, 자칫 떠밀려서 신당창당에 동의하는 모양새가 될 위험마저 부담으로 의식하게 되었다.

노 후보의 입장에서는, 심하게 표현하자면, 믿었던 한 대표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노 후보가 한 대표의 신당창당론을 거부한다면, 자칫 자신의 기득권에 연연한다는 시비거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노 후보에게 한 대표의 '백지 신당론'은 버릴 수도 없고 쥘 수도 없는 물건이 되고 있다.


한 대표의 백지 신당론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노(親盧)와 반노(反盧), 그리고 정몽준, 박근혜, 이한동... 누구든 가리지 않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반대하는 세력이면 다 모여서 신당을 만들고 거기서 대통령후보를 새로 뽑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했던 과정은 일종의 무효가 되는 셈이다. 이제까지 한 대표가 '노무현 후보 중심'을 일관되게 말해왔던 점에 비하면 상당한 변화이다. 노 후보의 '후보사퇴 불가' 입장과도 거리가 있다.

쉽게 말해 그렇게 해서 신당을 만들고 거기서 노 후보가 패배를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노무현 후보를 도와주기 위한 신당이라는 전제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 대표의 '백지 신당론'은 노 후보를 겨냥한 일종의 준(準) 쿠데타적 성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한 대표의 구상은 노 후보를 유인할 수 있는 동기 또한 갖고 있다. 이대로 그냥 가서 패배할 바에는 헤쳐모여식 신당창당을 통해 거기서 다시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노풍을 재점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분당의 위기가 공공연히 거론되는 민주당 상황에서 이같은 제안은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한 대표의 '백지 신당론'은 노 후보를 비롯한 당내의 모든 세력들에게 외견상 기회균등의 동기부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 만한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대표는 재보선 이후 이 구상을 가지고 당 안팎의 여러 세력간의 접점을 찾음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조정력의 승부를 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장 한 대표와 노 후보간의 긴장이 조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대표의 신당론 선점으로 이미 그의 정치적 의도가 드러난 상태이고, 더욱이 그가 말한 신당의 성격은 노 후보가 그려온 신당과는 상당한 거리를 갖고 있다.

노 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반창(反昌)의 기치만 들면 누구든 다 손잡자는 신당론이, 자칫 과거회귀적 신당론이 될 위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설혹 그같은 신당에서 다시 대통령후보로 선출된다 해도, 구 정치세력들과의 무원칙한 연합이 과연 노풍을 재점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제 한 대표의 입장에 대한 노 후보의 대응이 또 하나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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