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출두 수배학생과 출두 막는 경찰

한총련 소속 대의원 7월 19일에 이은 2차 출두 또 다시 무산

등록 2002.08.01 22:28수정 2003.11.22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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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공개출두 하겠다"는 400여명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을 경찰이 지하철 출입구에서부터 막아섰다.
1일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공개출두 하겠다"는 400여명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을 경찰이 지하철 출입구에서부터 막아섰다.오마이뉴스 김지은
"공개출두하겠다. 우리를 조사하라.”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붙인 피켓을 든 '공개수배(예정)자' 100여명과 한총련 소속 학생 400여명이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 한데 모였다. 경찰청으로 집단조사를 받으러 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 기동대는 지하철 출입구에서부터 이들을 막고 나섰다.

"버텨. 버텨. 버티라니까."

'출두하겠다'는 수배자들과 이를 '힘껏' 막는 경찰들. 아이러니한 상황은 게속 연출됐다. 낮 2시 30분, 30도를 웃도는 후텁지근한 날씨. 학생들과 기동대원들은 약 1시간 동안 서로 팽팽히 대치했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거리로 나선 한총련 학생들.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거리로 나선 한총련 학생들.오마이뉴스 김지은
1일 거리로 나온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의원들은 7월초를 전후해 전국 관할 수사기관(경찰청 및 경찰서)으로부터 일제히 출석요구서를 받았다.

한총련은 이중 한 대의원이 받은 출석요구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사유는 "국가보안법위반 피의사건에 관한 문의".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법적 판결이나 근거없이 한총련 대의원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하고 탈퇴할 것을 강요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97년 이적단체 규정의 근거가 된 '통일강령'도 개정한 상태다.


한총련에게 '이적단체'라는 멍에가 씌워져 있는 한 소속 학교 간부들은 '수배(예정)자'가 될 수밖에 없다. 1996년 이른바 '연대사태'와 '이석씨 치사사건'의 후유증으로 한총련에게는 딱지가 붙었다. 1997년 법원은 한총련이 이적단체임을 '선언'했다. 이후 매년 새로운 기수가 세워짐에도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1일 오전 11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총련 학생들이 "한총련은 정당하다"를 외치고 있다.
1일 오전 11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총련 학생들이 "한총련은 정당하다"를 외치고 있다.오마이뉴스 김지은
이 탓에 매년 새로 세워지는 한총련과 소속 대의원들은 '수배자 생활'을 하고 있다. 10기 한총련 의장인 김형주(전남대)씨도 지난 5월 28일 경찰에 연행돼 오는 8일 구형공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이날 공개출두에 나선 서총련(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 정종성(광운대·4)씨는 "나도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라며 "이미 10기 중상위 중 2명이 잡혔다"고 걱정스러워했다. 중상위 체포는 한총련 1년 사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 500여명과 경찰들의 대치상황은 약 1시간 동안 계속됐다. 학생들은 지하철 계단에서 경찰과 시민들을 향해 말했다.

"저희들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학생들입니다. 저희는 여러분과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다시 한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희 앞길을 막지 마십시오."

대치가 계속되는 동안 경찰과 학생들의 땀 냄새가 한데 뒤섞여 진동했다.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보였다. 또래 젊은이들의 힘은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결국 수배자들의 '경찰청행'은 무산됐다. 이들은 대신 시민들에게 발길을 돌렸다. 서울 경기대학교 앞 거리에서 오후 3시부터 '시민·한총련 한마당'을 열고 지나는 학생과 시민들에게 한총련 이적규정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선전전과 서명운동을 벌였다.

물로 4시간여를 버티던 한총련 '통일선봉대'(통선대)의 김승훈(가명, 시립인천대)씨는 "아침밖에 못 먹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한다"며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밝혔다. "통선대 활동은 처음"이라는 박영민(고려대)씨도 "한총련이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4시간여 동안 뜨거운 아스팔트를 누비는 학생들에게 물 한 대접은 생명수와 같아 보였다.

"몰르겄어. (학생들이) 왜 그런지 나는 잘 모르지. 그래도 목마릉 게 물이라도 줘야재. 날이 이렇게 더운디. 정치 잘 허라는 거겠지. 학생들이 뭔 잘못이여."

3년째 경기대 앞에서 분식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복순(55)씨는 "그저 자식같은 학생들이 안스럽다"며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럴 때면 우리만 하는 집회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죠." 아주머니의 물을 마시고 대접을 다른 이에게 돌리며 한 학생이 말했다.

전국에서 모인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6시간이 넘도록 거리에서 "한총련은 정당하다"를 외쳤다. 한총련이 '이적단체' 딱지를 붙이고 있는 한, 이들은 거리에서조차 불편한 처지일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의 젊음'은 여름의 태양아래 그렇게 작열하고 있었다.

"한총련은 정당하다'
한총련, "대의원 소환장 발부 규탄" 기자회견 열어

▲ 1일 오전 명동성당 소환장 발부 규탄 기자회견장.
ⓒ오마이뉴스 김지은
한총련 소속 학생들은 같은 날 오전 11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법원의 이적단체 규정 철회와 검찰의 근거없는 한총련 대의원 탈퇴종용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통일연대 상임대표 한상열 목사와 불교인권위원회 대표 진관 스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소속 어머니 등 사회단체 10여명의 인사와 한총련 소속 학생 약 500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회견이었다.

한상열 목사는 "이적규정 자체가 한시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며 "한총련이 우리 민족에 헌신한 공을 생각해서라도 민족과 대중을 위한 책임있는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보장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명동거리를 지나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다시 거리로. 이들은 시민들에게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의 부당함'을 알리는 전단을 나눠주고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후 계획은 경찰청으로 출두. 공개수사를 받기 위해서다.

지난 달 19일에 이은 두 번째 '경찰청행'이다. 그러나 경찰청이 있는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진로가 가로막혔다. 기다리고 있던 기동대 소속 약 800여명이 경찰이 이들을 막고 나선 것이다.

서울시 지방경찰청 경비과의 한 관계자는 "'공개수사 받겠다'고 온 게 아니라 '수사를 거부하기 위해 경찰청을 방문한 것이기 때문에 막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 안에 '수배학생'도 있었느냐"며 되물었다. 한총련 학생들의 보안 및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청 학원반의 한 직원도 "오늘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출석요구서)발송 해당 수사기관으로 가야지 경찰청으로 올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경찰청도 받아주지 않는 한총련 수배자들의 집단출두는 또다시 무산됐다. / 김지은 기자

"내 신념과 양심을 지키고 있다"
한총련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수배학생 정종성씨

▲ 정종성씨
ⓒ오마이뉴스 김지은
"집요? 글쎄요. 작년부터 못 들어갔으니까…."

집에 간 게 언젠 지 정확하게 꼽을 수가 없다.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한 게 지난 해 부터니까 1년이 넘은 셈이다. 올해는 서총련(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의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만난 광운대 총학생회장 정종성씨는 긴급체포영장이 발부된 '공개 수배자'다. 그 탓에 자신의 이름으로 된 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 흔한 핸드폰도 없고, 밥도 혼자 먹으러 갈 수가 없다. 그나마 집에 가끔 하는 전화도 '한적한' 공중전화를 찾아서 한다. 전화할 때마다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우시는지. 그렇지만 항상 "니가 무슨 잘못이냐"며 "몸조심하라"고 힘을 북돋아주신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이 '든든한 빽'이다.

"잘 말씀은 안하시지만 경찰들이 귀찮게 하나보더라구요. 아버지 회사까지 찾아가고 전화하고. 아버지가 원래 고혈압이셨는데 저번엔 스트레스로 실핏줄까지 터지고 그러셨대요."

이같은 고초를 겪고 있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그는 "민족의 희망인 한총련"의 대의원이라는 게 자랑스럽단다. 수배생활이 언제 끝날지 그 자신도 모른다.

"지금 이 일은 제 신념과 양심을 지키는 문제죠. 나아가 한총련, 더 크게는 조국과 민족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나중에라도 자랑스러울 거예요."
대학생 수배자의 미소는 티없이 맑았다. /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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