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으로 하는 천연염색 갈옷 만들기

전희식의 <귀농일기> 오늘 내가 한 일 네가지

등록 2002.08.05 18:21수정 2002.08.06 14:35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새벽부터 해가 지기까지 하늘 눈치봐가며 여러 가지 일들을 했다. 종일 한 가지 일만 했으면 몸이 못 견뎠을지도 모른다. 누구 지시 받아가며 시키는 일 했어도 역시 몸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날씨가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준 덕이기도 하다. 아니 농촌에 산다는 것 자체가 '종합노동'을 하게 하는 맛이 있다.

모래와 자갈을 시멘트와 섞고나서 물을 부어 반죽을 한다.
모래와 자갈을 시멘트와 섞고나서 물을 부어 반죽을 한다.전희식
마당에 수도터를 만든 것이 오늘의 제일 고된 일이었지만 일의 성격상 제일 큰일은 아무래도 천연염색 작업이었던 것 같다. 귀농 6년 만인 작년에 내 손으로 집을 지었고 먹을거리와 건강, 집, 교육 등속에 최소한의 자급력을 갖고자 마음먹었던 귀농 때의 결심에 따라 이번에는 천연염색 옷 만들기를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부터 오늘 천연염색 작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서 생감들이 떨어지길래 이때다 싶어 시작했을 뿐이다. 새벽시간에는 밭에서 예초기로 밭두둑과 가을감자 심을 곳 풀을 베었다.

예초기의 진동으로 양팔과 어깨가 집에 돌아 와서도 얼얼하였다. 예초기 날이 나무 밑동이나 돌에 부딪히면 털컥하고 팔이 휙 돌아가기도 한다. 이때는 예초기 축베어링이 상하기도 한다. 몸이 다치면 마음이 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베고 돌아서면 술래잡기라도 하듯이 잡초는 다시 불쑥 자라있다. 앞으로도 두세 번은 더 베고 말복과 처서가 지나야 잡초가 시들해질 것이다. 오전 나절,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 나길래 서둘러 집에 와서 마당 수도터를 만들기로 했다.


작년에 짓고 있던 집 사진. 물을 다루는 욕실을 제외하고는 시멘트를 전혀 사용 하지 않았다.
작년에 짓고 있던 집 사진. 물을 다루는 욕실을 제외하고는 시멘트를 전혀 사용 하지 않았다.전희식
작년에 집을 지으면서 나름대로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생태집'을 만들겠다고 고집스레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흙과 나무로만 집을 지었지만 수도터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지금껏 버텨 오다가 시멘트로 하기로 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여름날인지라 해가 났을 때 하지 않으면 안된다. 마당 텃밭에서 당근 세 뿌리를 뽑아 씻었다. 깻잎을 따다 몇 토막씩 낸 당근을 된장에 찍어 쌈 싸 먹었다. 지난달 담구었다 걸러낸 매실효소 한 사발을 마시고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수도터 측량을 하여 말뚝을 박고는 집 짓고 모아두었던 판넬 조각들로 테두리를 짰다. 각목들을 주워다 못질을 하여 판넬을 고정시켰다. 아들 새들이를 불러내서 호스를 가지고 물수평을 잡았다. 마당 높이와 수도대의 바닥 높이를 물수평기로 정확히 잡기 위해서다.

이 물수평기는 작년 집 지을 때 아주 잘 썼었다. 긴 투명 호스에 물을 넣어 기준위치를 잡고 작업할 곳으로 호스를 갖다대어 물높이를 가지고 수평을 잡는 것이다. 새들이도 이제 물수평 잡는 일은 익숙하다.

보관해 두었던 모래와 자갈을 섞고 새들이더러 사진을 찍게 했다. 그동안 “이제 다 했어요?”라는 말을 새들이는 열 번도 더 했다. 컴퓨터 게임에서 떼어놓기 위해 굳이 자기를 불러냈다는 걸 대충 눈치로 아는 모양이다.

한낮의 해는 인정사정 없이 내리 쬐었다. 네가 보기에 일을 다 한 거 같으냐 어떠냐 했더니 "다 한 거 같은데요?"하고는 방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버렸다.

완성된 마당의 수도 터.
완성된 마당의 수도 터.전희식
작업을 마치기까지 두 시간 가량 걸렸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후둑후둑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수도터야 이제 지가 알아서 마를테고 감을 보니 벼르고 벼르던 감 염색 생각이 났다.

황토 천연염색은 여러 번 해봤지만 나는 꼭 감 염색을 하고 싶었었다.

진한 적갈색의 감 염색은 다른 천연염색과 달리 옷감을 코팅하는 효과까지 있어서 옷감이 질겨진다. 그래서 어부들이 질기라고 고기 잡는 그물에도 감물을 먹인다고 한다. 갈옷이라고도 하는 감 천연염색 옷은 제주도에 가면 많다. 감 염색 모자도 볼 수 있다. 작업복에서 고급 패션화까지 가능한 게 감 염색이다.

감의 떫은맛이 염료로 쓰이는데 바로 이때가 적기다. 7월 중순부터 감을 따서 즙을 내면 되지만 이때는 감이 너무 작아서 즙을 많이 만들지 못한다. 나는 소쿠리를 들고 감나무를 찾아다니면서 감들을 주워 모았다. 떨어져 깨진 감도 버릴 것 하나 없이 다 주워 담았다. 어차피 감을 4등분 또는 6등분으로 쪼개서 믹서기에 갈아야 하기 때문이다.

몇 토막씩 쪼갠 생감. 이 정도면 무명 반필은 물 들일수 있다.
몇 토막씩 쪼갠 생감. 이 정도면 무명 반필은 물 들일수 있다.전희식
천연염색 옷의 특징은 물이 날려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천연염색에 대한 책도 써내신 천연염색의 선구자 토벽 정옥기 선생(우리집 설계도 해 주신 분으로 나보다 6년여 먼저 귀농하였다)은 언젠가 천연염색한 옷이 물이 빠지더라고 했더니 물이 빠지지 않는 옷은 결코 좋은 옷이 아니라고 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세월 따라 쇠락해가는 것이 정한 이치라면서 짙푸른 나뭇잎은 그것대로 아름답고 엽록소가 빠져 단풍이 들면 그것대로 또 아름답지 않냐 면서 천연염색은 물이 빠져도 그것대로 아름답다고 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화학염색은 물이 빠지면 참 추해지지만 천연염색은 그렇지가 않다. 나이 들어 잘 늙어가는 사람에게서 풍기는 넉넉함과 비교된다.

감물 옷이 물이 빠지면 옆은 갈색으로 바뀌어 가는데 은은한 색이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오늘은 감 즙을 만들고 내일은 깊이 넣어둔 무명 옷감을 꺼내서 양잿물을 빼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몇 번씩 맹물에 빨아내야 옷감 만들면서 섞인 양잿물이 빠져 색이 잘 먹히게된다. 오늘 한 작업은 천연염색 감물 옷 만들기의 시작에 불과하다.

역시 하늘 눈치봐가면서 옷감 물들이기 작업을 쉬엄쉬엄 해 나가야 하는 첫 작업을 한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농(農)을 중심으로 연결과 회복의 삶을 꾸립니다. 생태영성의 길로 나아갑니다. '마음치유농장'을 일굽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연극인 유인촌 장관님,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2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울먹인 '소년이 온다' 주인공 어머니 "아들 죽음 헛되지 않았구나"
  3. 3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한강 '채식주의자'  폐기 권고...경기교육청 논란되자 "학교가 판단"
  4. 4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블랙리스트에 사상검증까지... 작가 한강에 가해진 정치적 탄압
  5. 5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이충재 칼럼] 농락당한 대통령 부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