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총. 장군은 이제 47년째 불안한 셋방에서 분단의 아픔을 보고 있다.조창완
아내가 출산하기 위해 먼저 한국에 간지 일주일. 한국에서 찾아온 선배 형을 만나기 위해 옌지(연길)를 향한다. 대학 입학후 유난히 친하게 지내던 선배 형들이 있었다. 다들 가난했지만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갈망도 컸고, 깨어있었던 형들.
우리는 일년 방세가 다른 곳과는 비교도 안되게 싸서 스스로 ‘게토’라고 불렀던 곳에서 살았다. 남들은 할렘이라고 불렀지만 반년만에 그곳은 공식적으로 게토라는 지칭을 얻었다. 창권형, 종인형, 영식형 등이 그곳에 같이 있었다.
차가운 초겨울 형들의 졸업철이 오고, 나는 고기를 송송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정성껏 끓였고, 모두가 맛나게 먹었다. 우리는 그렇게 작별을 했다. 작별은 정말 작별일 수도 있었다. 그토록 친했지만 시간은 서로에게 알 수 없는 장애가 되었고, 이제는 연락조차 어려운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창권형이 거의 강권에 가까운 내 중국행 권유에 옌볜대에서 방학동안 교수로서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왔다. 형과 그 형 아래에서 지도를 받는 후배들을 만나러 간다.
선양(심양)의 서탑거리에서 반년전에 주재원인 남편을 따라 건너온 여자 동기 녀석과 오랜만에 만났다. 방문객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밥을 얻어먹고 급히 백두산 여행의 경유지이자 고구려 유적지인 지안(집안)의 입구인 통화행 밤 기차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