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논쟁은 정치적 문제이다

"고구려사 논쟁, 감정적으로 풀어선 안돼"에 대한 반론

등록 2003.12.19 09:16수정 2003.12.1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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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의 것이어도, 역사에 대한 해석은 현재의 것이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해석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새롭게 조망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사해석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재를 담보하고 있다.

18일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고구려사 논쟁, 감정적으로 풀어선 안돼"라는 제목의 역사문제가 보도되었다. 이 보도는 '동북공정'(중국에서 벌이고 있는 고대 중국 동북변방 역사 연구 사업)에 대해서 "한국의 분위기가 상당히 격앙"되어 있다면서, "중립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 학자들의 관점"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복단대학에서 한국 역사를 강의하고 있는 조선족 박창근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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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보도는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선 중국 내에서 조선족 교수의 입장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기자는 박 교수를 중립적이라고 전제하면서 그의 입장을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로 동북공정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조선족의 이탈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 대상에 서 있는 사람을 '중립적'이라고 전제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두 번째로 동북공정의 문제 자체가 결코 '중립적'으로 바라보면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학문적 영역'이나 혹은 '이론적 영역'에서의 논의구조가 아니다. 이미 위에서도 밝혔듯이 역사해석의 문제는 현실을 담보하고 있다. 특히 무리수를 두면서 이루어지는 해석에는 반드시 저의가 깔려 있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학문이나 이론의 구조에서 바라볼 수 있는 '중립적 해석'도 현실에는 어느 입장을 두둔할 수 있는 이론적 구도로 탈바꿈되기 쉽다. 실제 '중립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박 교수의 논조는 궁극적으로 동북공정의 역사 해석 방법을 중국의 다양한 역사 해석의 하나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귀결되고 있다.

특히 "물론 역사적 관점으로 봤을 땐 고구려사가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민감하게 갈릴 수 있는 문제이겠습니다만, 현실적인 영토 개념으로 봤을 때는 분명 중국 영토에 속한 유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박 교수의 말은 동북공정의 이론적 배경을 그대로 두둔하고 있는 말로,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현재 동북공정의 문제는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단순한 학문적, 혹은 이론적 논의가 아니다. 그것이 현실 해석으로 드러날 경우 한 쪽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또 다른 한쪽은 새로운 제국주의를 표방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게 된다. 학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정치적 문제에 학문적이고도 이론적인 방법을 차용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범정부적 대응 역시 늦었던 것이다. 이는 중국의 경제사정을 감안할 때, 단순한 역사적 재해석 작업에 우리 돈 3조원에 해당하는 거금을 투입할 수 없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의 동북공정에는 철저한 정치적 속내가 들어 있다. 이것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의 조선족 이탈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다.


동북공정에서 목표하는 지역은 동북 3성으로 길림성과 흑룡강성·요녕성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특히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으로, 대부분의 조선족 자치 구역이 여기에 분포되어 있다. 이곳에는 아직 한국의 언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문화적으로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적 요소가 짙다. 경제적으로도 지금도 연변조선족 자치주는 한국 경제의 재채기 한 번에 독감에 걸릴 정도이다. 그들은 지금 현재 한국 경제에 예속되어 있다.

지금 사정도 이러한데, 통일이 되면 이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행될 수 있다. 비록 국경은 두만강과 압록강으로 갈리고 있지만, 문화나 경제적으로는 한국쪽에 속하는 상당히 기형적 형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지금도 중국 정부는 조선족들에게 조국관·민족관·역사관에 대한 대대적인 사상교육을 시키고 있다. 한국은 고국일 뿐이지만, 태어나서 사는 곳은 중국이므로 그들이 충성을 바쳐야 할 곳은 중국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조선족들의 이탈을 방지하고, 자신들의 국경과 영토를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것과 연계시키지 않으려는 정당성을 역사해석에서 확보하려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둘째, 동북공정의 목표는 남북한이 통일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영토분쟁에서 역사적인 선점을 해 두려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과 한국의 영토문제는 분쟁의 소지가 있다. 원래 간도는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영토분쟁단계로 남아 있었던 곳이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의 형태로 고착화 된 것은 1909년에 체결된 간도협약을 통해서였다. 그 이전 간도는 중국의 땅도 아니고 조선의 땅도 아니었다.

간도협약은 잘못된 조약인 을사조약에 근거해서 당사자인 조선이 빠진 채 일본과 청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2005년까지 을사조약의 하자를 들어서 이것을 무효화 시키게 되면, 여기에 기반해서 이루어졌던 간도협약 역시 무효가 된다. 이렇게 되면 간도는 중국과 한국 사이의 엄청난 영토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영토분쟁의 가능성을 역사 해석을 통해 미리 막으려는 것이다.

동시에 동북공정에서 목표하는 대로 역사가 해석되면, 한국의 역사적 영토는 대동강 이남 혹은 최악의 경우 한강 이남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것은 결국 급변하는 역사적 소용돌이에서 중국이 한반도 문제, 특히 북한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실마리를 마련해 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였으므로 그에 대한 개입 역시 정당할 수 있다는 논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셋째,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서 중국의 신제국주의를 위한 역사적 근거를 확보하려고 한다. 중국은 그들의 역사를 한족 중심의 역사로 기술하면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족 팽창사'로 정리한다. 나머지 동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는 한족 팽창사의 주변사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도 역사 해석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불러올 현대적 파장에는 상당한 정치적 문제가 걸려 있다. 동아시아의 중심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규정하는 순간, 중국은 동아시아의 맹주자리를 되찾기 위한 역사적 근거로 이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새로운 신제국주의 정책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한족과 한민족을 포함한 만주족과의 교섭사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학자들의 역사 해석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프로젝트이다. 이렇게 보아야 그들이 거금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 역시 설명된다.

'중립적인 역사학자의 시각'이 결코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동북공정의 역사 해석이 다양한 역사 해석 방법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동북공정의 역사 해석은 새로운 역사 해석 방법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중국의 정치적 속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본적 빌미가 되며, 이 때 한국이 입는 피해는 너무나 심각하다.

동북공정을 이론의 다양성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자는 박 교수의 논지 자체가 이미 중국의 입장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치적으로 타협하거나 혹은 다양한 이론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 해석에 따라서 엄청난 정치적 파장이 예고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북공정의 정치적 속내에 '학문적 작업'이라는 껍질을 덮어놓은 중국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북 공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자긍심뿐만 아니라 우리의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요원해진다. 특히 문제는 앞으로 중국의 신제국주의 팽창 정책이나 같은 민족인 조선족 문제에 대한 우리의 발언권이나 제재의 역사적 근거를 완전하게 상실할 위험성이 너무나 크다. 그 때가 되면 단순히 돈 몇조원 투자해서 막아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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