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울생협 회원소개 순서8월 6일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을 생협회원들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였다. 오른쪽이 필자.
전희식
완주군 소양면의 어느 마을회관에서 숙박을 할 때였다.
조용하던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들자 몇몇 아주머니들이 문밖으로 나와서 구경을 하였다. 내가 걷기운동에서 나온 유인물을 나눠주었더니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혈육이라도 만난 듯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올해는 수매가가 12만원으로 떨어진다는데 어떻게 살아요? 하면서 하소연을 하자 옆 사람은 이장한테 들었다면서 10만원까지 내려간다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일화들은 걷기운동 사이트에 들어가면 생생하게 들어차 있다.
주는 것 보다 얻은 게 훨씬 많았던 날들
진안코스에서 배이슬이가 나타났을 때다. 실상사 작은학교 동급생들인 달이와 새날이가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은정이가 자기 엄마랑 1주일을 먼저 걸었으니 13명인 반 아이들 중에 4명이 걸은 셈이다. 방학 전에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우리쌀 지키기 100인 100일 걷기운동'에 참여하자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방학숙제가 전혀 없는 대신에 이런 교실 분위기를 만들어 준 그곳 선생님들이 참 고마웠다. 새날이 단식을 했는줄 알았더니 이슬이와 달이도 알고 보니 방학중에 5일에서 열흘간 단식을 하였다고 한다. 걷기를 하면서 난데없이 새날이 학교 선생님들에 대해 감사하게 된 것처럼 4일간 걸으면서 이 같은 일이 더러 있었다.
전주농업인회관에서 야마기시 동기들을 만난 것이 그랬다. 저녁시간에 ‘학교급식 조례제정 운동’특강 강사로 강화도에서 오신 김정택 목사님과 순창지역에서 농민운동 하는 이태영씨를 만난 것이다. 10년 만에 이렇게 만날 줄이야. 그런데 그날 저녁 뉴스에는 또 야마기시 동창이신 민주개혁국민연합 공동대표인 이해학 목사님이 병역비리 관련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나와 우리는 무슨 우연인가 하고 좋아했다.
내가 사는 고장의 농협조합장과 면장님이 내 요청대로 대형 현수막도 길가에 걸어주시고 음료수까지 준비하여 행진대열이 잠시 쉬어가도록 하였다.
내가 쓴 무거운 감투
걷기를 하면서도 나는 줄곧 단순한 참가자가 아니라 어떻게 이 걷기운동이 남은 두 달여 동안 성공적으로 될 수 있도록 ‘후원’ 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내가 이 걷기운동에서 어마어마한(?) 감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경남 진주코스에 하루 합류하였다가 얼떨결에 쓰게 된 감투. 이 감투의 이름은 ‘사이버 후원단장’이다. 그래서 걷기운동의 사이트도 만들어 냈다. (인터넷 주소 : refarm.or.kr). 사이버 모금운동도 내 몫이다.
발목과 무릎에 통증이 와서 치료해야 하는 사람. 먹는 것과 마시는 것들. 지원차량과 각종 회의나 강연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감투가 내겐 참 무겁다. 그들 얼굴이 하나씩 떠오른다. 걸으면서 구호도 노래도 안한다. 나는 길거리 행진을 숱하게 해 봤지만 이 사람들은 달랐다. 어디 세상이 한순간에 바뀌는 법이 있으랴 싶은지 항상 서두는 법이 없다. 나 외에 다른 한사람 바꿔 놓는다는 건 평생의 과제라고 믿는 사람들. 자기 내면의 성찰에 게으르지 않는 사람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들. 선 체조와 새벽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서림스님. 차를 달여 마시고는 조용히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
내가 걷기 대열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리워진 얼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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