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죽음의 길을 밝혀 줄 불빛

책 속의 노년(34) : <인생의 황혼에서>

등록 2002.08.16 16:16수정 2002.08.2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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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누군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전혀 모르거나 잘 알지 못하는 분이라 해도 그 마지막 길이 어떠실지 생각해 보곤 한다. 남들이 복받았다고 말하는 죽음도 그 당사자에 이르면 그것이 정말 복이었는지 고통이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댁 쪽으로 90세를 넘기신 어르신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모두들 호상이라고 했다. 나 역시 사람이 한 평생 살다 가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했을 뿐 슬픈 감정을 느끼지는 못했다. 살가운 정을 주고 받을 새도 없었고, 그저 어렵기만 했던 분이어서 그랬을까.


말기암 진단을 받으신 후배 어머니께서 67세로 숨을 거두셨을 때, 조문객들은 모두 아깝다고 조금 더 사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상복 입은 후배를 위로하며 흘린 내 눈물 속에는 머지 않아 내가 고스란히 겪어야 할 육친과의 이별에 대한 서러움이 들어 있었다.

마흔 셋, 나와 동갑이었던 옛 직장 남자 동료 한 명은 독신인 채로 지내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가슴을 철렁 내려 앉게 만들었다. 혈육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다니 하는 마음 한 켠에는, 그렇게 일찍 갈 줄 알고 애끓는 사람 안남기려고 혼자 살았구나 하는 마음도 함께 있었다.

어느 죽음인들 애통함이 없을까마는 그래도 살만큼 살았고 자녀들 다 키워냈으니 그만하면 됐다 하는 죽음이 나을까, 아니면 생각보다 이른 죽음에 남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며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하고 아쉬워하는 죽음이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렇듯 죽음이란 늘 곁에서 우리를 일깨워 주며 삶의 근원을 돌아보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불쑥 불쑥 드러내곤 한다.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실천하며 소박하고 행복한 삶의 본보기를 보여 준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 남편 스코트 니어링이 100세 되던 해에 서서히 음식을 끊어 자발적으로 죽음에 이르고 난 후, 아내 헬렌 니어링은 그의 전기를 쓰려고 죽음에 관해 쓴 글들을 열심히 읽는다. 그냥 잃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글들이 있어 따로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나이듦보다는 죽음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훌륭한 노년〉에는 '아름다운 노년은 아름답게 살면서 오래도록 준비할 때만 가능하다'는 엘버트 허버드의 글에서부터 '삶이 스스로 잘 익어 땅에 떨어지도록 하라'는 노자에 이르기까지 나이듦에 대한 동서고금의 통찰들이 사이 좋게 자리 잡고 있다.

조화로운 삶을 산 헬렌 니어링 부부에게 있어 나이듦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깨어 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나이를 감추느라 허비한다'는 헬렌 헤이스의 말처럼, 우리에게 나이듦이란 곧 수치와 부족함이기에 조화로운 삶이나 진정한 자유와는 자꾸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이어서〈어떻게 죽을 것인가〉에는 인생의 한 과정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며 의연히 죽음을 준비할 것을 권하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는데, '죽음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거쳐 자발적인 종말을 맞은 스코트 니어링을 지켜 본 헬렌 니어링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죽음 역시 삶의 한 과정이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통해 모든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글들을 읽다 보면,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과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적극적인 의지로 '잘 죽는 기술'을 실천한 스코트 니어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죽음, 굉장히 좋은 일〉은 죽음이 결코 삶의 끝이 아니며 우리 생은 결국 단편을 통해 전체에 이른다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죽음이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며 보편적인 현상이기에 성장하는 것과 숨을 거두는 것은 똑같은 삶의 고비라고 강조하는 글들이 눈에 띈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우리들 삶이지만,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누구나 나이들어간다는 것과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잘 늙고 잘 죽기 위해서 우리는 나이듦이 우리의 삶과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또 죽음에 대한 준비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주위에 있는 죽음의 존재를 느껴봐야 한다.

나이듦과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잘 살아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발견하는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통찰은, 우리들 남은 인생의 길을 밝혀 줄 불빛을 만나는 것과 같다. 그 불빛을 따라 걸을 것인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이다.

(인생의 황혼에서 Light on Aging and Dying, 헬렌 니어링 엮음, 전병재·박정희 옮김, 민음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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