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을 노숙자로 만들지 마라"

안암동 철거민들 50일째 천막에서 노숙..구청에선 '나 몰라라'

등록 2002.08.26 07:10수정 2002.08.26 11:59
0
원고료로 응원
a 지난 7월 9일 용역회사 직원들의 침탈로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린 안암동 재개발지구

지난 7월 9일 용역회사 직원들의 침탈로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린 안암동 재개발지구 ⓒ 석희열

지난 7월 9일 새벽 경찰 7개중대 1천여 병력과 신한환경용역 직원 3백명에 의해 삶의 터전을 침탈 당한 이후 안암동철거민대책위원회(안암동철대위, 위원장 이영철·54) 주민들이 김병철 성북경찰서장과 서찬교 성북구청장 그리고 삼성물산의 공개사과와 사퇴를 촉구하며 50일째 천막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동원한 침탈이 금명간 예고되고 있어 주민들의 인명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25일 오후 기자가 방문한 안암동철대위 사무실 주변은 산산조각난 벽돌들과 부서진 가재도구들이 뒤엉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사람이 걸어다니기조차 힘들 정도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아직도 곡괭이와 쇠파이프, 해머 자국이 곳곳에 남아 있어 당시 용역직원들의 폭력이 얼마나 무차별적이고 살벌하게 저질러졌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a 천막에서 50일 가까이 주민들이 함께 생활하며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

천막에서 50일 가까이 주민들이 함께 생활하며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 ⓒ 석희열

쉴만한 공간조차 하나 없는 주민들은 50일째 밤낮으로 천막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용역직원이 던진 낫의 칼날에 찔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도움으로 간신히 수술을 받아 겨우 걸어다닐 수 있게 됐다는 안암동철대위 이영철 위원장의 발등의 상처는 아직도 움푹 패인 채였으며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고 처절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그날의 상황에 대해 안암동철대위 주민들은 "용역깡패들이 던진 낫에 찔려 위원장님의 발등에서 피가 마치 분수처럼 솟아올랐다"면서 "얼마나 상황이 긴박했으면 위원장님은 발등에서 피가 얼굴까지 치솟아 오르는데도 이를 악문 채 일선에서 투쟁대오를 지휘하고 있었다"고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영철 위원장은 "그날 용역깡패들은 주민들을 내쫓고 집을 부수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온 살인마들이었다"이라면서 "용역깡패들이 이처럼 무법천지를 넘어 살인에 가까운 만행을 가능하도록 방조하고 비호하고 있는 서찬교 성북구청장과 김병철 성북경찰서장은 이제 더이상 주민들에게 필요없다"고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냈다.

a 수배중인 이영철 위원장은 이날 밤 다른 곳에서 기자와 만나 '더이상 우리같은 철거민을 양산해서는 안된다'고 정부측에 촉구했다

수배중인 이영철 위원장은 이날 밤 다른 곳에서 기자와 만나 '더이상 우리같은 철거민을 양산해서는 안된다'고 정부측에 촉구했다 ⓒ 석희열

그는 또 "7월 9일 침탈과정에서 연행한 주민 9명에게는 죄인 취급을 하면서 함께 연행한 용역깡패 3명에 대해서는 마치 상전 모시듯 식사를 시켜주고 샤워까지 다녀오게 했다"면서 "심지어 용역깡패들이 주민들을 심문하고 경찰은 뒤에서 구경하고 있는 희한한 풍경이 연출되었다"고 흥분하며 "성북경찰서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용역깡패들의 지팡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황애경(51) 부녀부장은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날 새까맣게 들어찬 용역깡패들의 난동이 너무도 끔찍해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폭력 만행을 그들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르고 있었다"고 전하면서 "그들은 경찰이 연행해가는 학생들의 등을 심지어 뒤에서 담뱃불로 지지기도 했다"고 치를 떨었다.


지난 7월 9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152번지 일대 재개발지역에서 벌어진 용역회사 직원들의 위압적인 폭력 침탈 이후 당시 40~50가구가 남아있던 철거주민들은 현재 10가구 9명(구속 3명, 수배 1명 제외)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99년 8월 안암동으로 이사왔다는 한 주민(남·31)은 "7월 9일 신한환경용역회사의 안암동철대위 침탈과정에서 몸싸움을 한 주민 3명과 학생 2명이 구속되었다"며 "그 많던 주민들이 용역깡패들의 위협적인 폭력과 욕설에 기겁을 하고는 뿔뿔히 흩어지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다 빠져나갔다"면서 힘들고 고단했던 그간의 여정을 떠올리며 쓸쓸히 웃었다.


a 철거민의 주거생존권을 위협하는 삼성물산을 비난하는 현수막

철거민의 주거생존권을 위협하는 삼성물산을 비난하는 현수막 ⓒ 석희열

작년 10월 재개발 공고가 나간 후 삼성 래미안아파트가 들어서기로 결정된 안암동 152번지 일대의 재개발조합 신한환경용역회사는 올해 초 철거대책반을 구성한 뒤 주민들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어왔다. 재개발조합은 98년을 기준으로 주민들을 해당자와 비해당자로 구별하여 해당자의 경우 4인 가족 기준으로 676만원의 이주비와 13평형 임대아파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재개발조합의 이같은 결정에 대해 주민들은 "삼성물산의 건설자본에 매수된 용역직원들이 수 십년을 살아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아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면서 "재개발조합을 사주하는 삼성물산은 세입자들을 가수용시설(임시거처)로 옮겨주고 이후 2년 단위의 재계약 임대아파트가 아닌 영구 임대아파트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안암동재개발조합측과 9월말까지 모든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경우 계약금 14억원과 함께 5억원의 인센티브를 추가로 지불하기로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한편 삼성물산측에서 안암동 재개발지구에 임대아파트를 짓지 않기로 방침을 세운 것과 관련 주민들은 "세입자에 대한 대책은 법으로도 명시되어 있다"면서 "재개발지구에 건설되는 아파트는 반드시 임대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선례를 남기고 안암동철대위가 그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도 끝까지 건설자본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해 쉽게 타협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a 안암동철대위 주민들은 서찬교 성북구청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안암동철대위 주민들은 서찬교 성북구청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석희열

지난 7월 9일 용역 직원들에 의해 안암동 재개발지구가 침탈당한 이후 매일 고려대, 경희대, 한성대 등 인근 대학생 수십명이 안암동철대위에 결합하여 자체 규찰을 강화하고 있다. 25일 오후에는 경희대 사회과학부 남녀학생 8명이 안암동철대위를 방문하여 자체 규찰계획과 대책수립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영철 위원장은 학생들의 규찰대 지원 방문에 대해 "학생들의 결합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난번 용역깡패들이 침탈하여 쌀포대와 심지어 김치통까지 다 가져가버려 학생들에게 끼니때마다 늘 미안하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학생들이 자기들이 먹을 것을 직접 들고 오기도 한다"면서 송구스러워 했다.

안암동철대위 주민들은 지난 4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이후 다니던 직장과 생업을 모두 그만 둔 상태이며 더우기 지난번 용역직원들의 침탈과정에서 쌀과 음식들을 강탈해간 뒤로는 은행빚을 얻거나 주민들의 신용카드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편 안암동철대위를 비롯한 황학동철대위, 서초동철대위, 도봉동철대위, 방배동철대위, 부천소사철대위 등 7~8개 철대위는 기존의 전철연과는 별개로 민중철거민연대(의장 정성래)를 이달 31일 정식 발족시킬 것으로 알려져 전철연과의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민중철거민연대는 "발족식 직후 의정부에서 열리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만행 규탄 제6차 범국민대회'에 합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안암동철대위: 016-256-9816, 02-925-0444

덧붙이는 글 안암동철대위: 016-256-9816, 02-925-0444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