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농민도 쌀을 팔아야 할 판"

등록 2002.09.07 15:35수정 2002.09.0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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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내 피땀흘려 지은 농사를 태풍이 쓸어버려 이제는 농민도 쌀을 팔아서 먹어야할 판이다."
지난 5일 들판을 바라보는 흥순네 엄마(64)는 땅이 꺼질 듯 한숨지었다.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들녘은 황금 물결 대신 하얗게 말라 비틀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제15호 태풍 루사는 초속 30m가 넘는 강풍에 바닷물이 방조제를 넘어 2km 거리의 논에까지 날아들어 막 출수하던 벼가 여물지 못하고 하얗게 말라죽는 조풍 및 백수현상이 나타났다.

진도군 벼 피해는 6809ha의 전체면적 중 82%에 해당하는 5579ha가 피해를 입어 올해 농사는 손을 털게 됐다. 진도는 섬 지방 특성 그대로 바다에 방조제를 막아 논을 만든 간척논들이라 매년 태풍 때면 조풍피해를 입어 백수현상이 나타난다. 올해는 특히 태풍이 벼이삭이 패는 시기와 맞아 떨어져 피해가 더욱 컸다.

a 갈대처럼 말라버린 벼. 진도군은 80% 이상의 벼가 백수피해를 입었다.

갈대처럼 말라버린 벼. 진도군은 80% 이상의 벼가 백수피해를 입었다. ⓒ 김문호

백수현상이란 벼이삭이 패는 시기에 비와 강풍을 맞으면 벼가 하얗게 말라죽는 현상을 말한다.

전남 진도군 소포리 이장 임기현(50)씨는 "농업기반공사에서 농업용수를 늦게 줘 이 지경으로 농사를 완전히 망쳤다"고 농업기반공사를 원망했다.

주민들 역시 가뭄이 한창이던 지난 6월 초 농민들이 농업용수를 달라는 요청을 농업기반공사가 무시하고 늦게 물을 주는 바람에 모내는 시기가 늦어져 쌀 한 톨 건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포뜰은 전체 농가가 지난 6월 10∼20일 사이에 모를 냈다.
농업기반공사는 간척지 담수호의 염농도가 높아 염해 피해를 우려해 모내기가 장마와 겹치도록 물을 늦게 준 농업기반공사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a 초속 30미터의 강풍에 해안가 나무잎까지 말려 버렸다.

초속 30미터의 강풍에 해안가 나무잎까지 말려 버렸다. ⓒ 김문호

김덕춘(64)씨는 지난 5일 현장을 방문한 이정일 의원을 향해 "정치하는 놈들이 민생은 안 살피고 정쟁만 한다"면서 "현실보상이 될 수 있도록 법개정도 못하는 국회의원 놈들은 쓸모가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또 "정부가 대농을 권장하면서도 실제 보에서는 3ha이상 농가는 피해보상에서 빠진다"고 농정실패를 꼬집었다.

막바지 농약에 피살이 등 한창 분주해야할 들녘이 경운기 트렉터 소리도 없이 농민들의 발길마저 뜸해 백수현상으로 눈꽃이 핀 들녘은 삭막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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